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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곡성’ 나홍진, “그래서 ‘감히’ 이렇게 대드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권영탕 기자)
(사진=권영탕 기자)

나홍진 감독이 창조한 이 지독한 영화를 보고 잠시 뭔가에 희롱 당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방금 본 게 뭐지?’ 그것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당혹스러움보다는, 생경한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체험에 가까웠다. 강렬하고, 박력 넘치고, 무시무시한데, 유머까지 머금은 괴력의 영화를 만난 느낌이랄까. 물론 ‘곡성’은 취향에 따라 이견이 홍해처럼 갈라지는 영화다. 영화를 향해 쏟아지는 극과 극의 반응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기획성 영화들이 활개 치는 최근 한국 영화판에서 이토록 예측불가능하고 뜨거운 기운의 영화를 본 적이 있었던가. ‘곡성’은 하향 평준화된 한국영화의 평균점수를 끌어올려주는 보기 드문 야심의 영화라고 생각한다.

‘흡수율’이 높은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많은 것들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피해자가 피해자가 된 원인을 찾아 들어가고자 이 영화를 기획했다”는 나홍진이 그 끝에서 찾은 것은 희망보다는 허무에 가까워 보인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근원적인 나약함 혹은 모호함. 나홍진을 만나 그 힌트들을 들어봤다.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돼 있습니다.)

Q. ‘곡성’은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지대한 작품이었습니다. 촬영이 끝난 지 꽤 지났는데도, 관련 정보가 거의 노출되지 않아서 궁금증을 키우기도 했죠.
나홍진:정보 노출이 최대한 안 되길 바랐어요. 보통의 영화들이 개봉일은 미리 잡아 놓고 시작하잖아요. 저는 그 지점이 제일 싫었어요.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면서, 촬영도 전에 개봉일을 잡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최소한 편집본이라도 보시고, 감독이 ‘후반작업을 통해 어떻게 완성시키겠습니다’하는 설명이라도 들으신 후에 순차적으로 관객 분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제가 폭스와 ‘곡성’을 하기로 하면서 내 건 조건 중 하나였어요. 다행히 동의해 주셨죠.

Q. 글은 마감이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만.(웃음) 편집의 경우는 어떤가요. 사실 만족에는 끝이 없잖아요.
나홍진: 죽도록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결국 1년여의 시간이 걸렸죠. 긴 시간이라고들 하는데, 제 생각은 달라요. 최소한 1년의 시간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1년간 편집실에 갇혀서 비명소리를 들은 셈이네요. 같은 편집실을 사용했다는 다른 영화 관계자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곡성’ 편집실에서 새어나오는 비명 소리에 간담이 서늘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나홍진: 아우~ 저는 어땠겠어요. 힘들었죠. 진짜 지옥 같았어요. 귀가 남아나질 않더라고요. 굿 편집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진=권영탕 기자)
(사진=권영탕 기자)

Q. 많은 영화가 그렇겠지만, ‘곡성’은 특히나 찍어둔 소스를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오겠다 싶었어요. 초반 생각했던 것과 비교해서,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게 있나요?
나홍진: 사실은 지금보다 더 느린 호흡을 생각했어요. 더 극적이었으면 했고요. 그런데 씬들을 붙어놓고 보니까 안 되겠네 싶더라고요. 너무 느리니까, 지루한 감이…(웃음) 이렇게까지는 아닌 것 같다 싶어서, 호흡을 조금 더 빠르게 편집했죠.

Q 최근 많은 배급사들이 ‘암살’의 러닝타임(139분)을 마지노선으로 잡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곡성’의 경우 그보다 긴 156분으로 최종 편집이 됐는데요.
나홍진: 시나리오가 완성됐을 때 “이 영화는 러닝타임은 2시간 40분이 될 것 같습니다”라는 이야기가 된 상황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 편집본은 대부분이 길게 나오잖아요. 결국 편집은 계속 압축시켜 나가는 작업이죠. 하지만 편집이 단순하게 러닝타임을 줄인다가 목적이 될 수는 없어요. 영화의 가장 적합한 속도감을 찾다보면, 어떤 씬은 또 늘려서 확장시켜야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곡성’은 분명 짧은 러닝타임의 영화는 아니에요. 줄였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죠. 하지만 여기에서 더 자르면 영화가 손상을 입겠다 싶었어요. 제 나름의 마지노선이 있었죠. 그게 지금의 이 지점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Q. 흡사 한편의 게임 같다는 생각도 드는 영화입니다. 게임의 주체는 미끼를 던진 감독과, 그것을 받아든 관객이죠.
나홍진: 이 영화에는 복합적인 플롯들이 존재합니다. 메인 플롯은 명확해요. 하지만 그 하위에, 누군가에게는 느껴지고 누군가에는 안 느껴질 은유의 플롯들이 몇 개가 있어요. 그러다보니 ‘그럼 이건 뭐야?’ 라는 생각이 드시는 것 같아요. 아마 모든 것이 명확하게 정리되고 은유가 없는 영화에 익숙하신 분이라면, 이런 은유가 어렵게 느껴지실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겁니다. 작가의 의도를 굉장히 중시하는 분들이 계신데, 너무 개의치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것. 왜냐하면 제가 의도한 것은 “여러분들이 해석하세요!”거든요. 그게 제 의도이니, 작가의 의도에 너무 빠져서 고민하시면 찾을 수 없을 거예요.(웃음) 여러분이 느끼신 대로 정리를 해주세요.

Q. “피해자에 어떤 관심에서부터 이 영화가 비롯됐다”고 하셨습니다.
나홍진: 제가 기존에 찍었던 영화 속 피해자라든지, 실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 피해자들을 생각해 봤어요. 어떻게 해서 피해를 입었는지는 알겠는데, 왜 피해를 입었는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의문이 들었죠. ‘이 피해자들은 왜 지금껏 살아계셨던 것인가→이렇게 살해를 당하려고 살아 계셨던 것인가→피의자를 징역 보내고 사회적 이슈를 만들기 위해 이 사람은 태어난 것인가→그럼, 이 사람 존재 이유는 그것이 되는 것인가’ 점점 생각이 커졌어요. 이걸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시야를 확장시켜보니, 존재 근본에 대한 문제까지 가 닿게 되더라고요. ‘누군가가 죽어야 했던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존재해야 할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게 아닌가→인간 존재의 이유가 없다면, 인간을 창조했다는 무슨 신, 무슨 신, 무슨 신…종교 역시도 존재의 이유를 지금 위협받는 상황이 아닌가’ 식으로 생각이 확장됐죠.

▲'곡성' 촬영현장(사진=20세기폭스 제공)
▲'곡성' 촬영현장(사진=20세기폭스 제공)

Q. 그 의문을 영화 안에서 여러 형태로 제기하신 거군요.
나홍진: 그렇죠. 그 과정을 여러 플롯을 빌어 얘기해 나가다가 결국에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해명하시라!”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드러내고 증명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라고.

Q. 아…엄청난 질문이군요.
나홍진: 아마 영화가 끝나면 관객 분들이 이런 의문을 품으실 겁니다. 저 사람은 선입니까, 악입니까. 존재하시는 겁니까, 아닙니까, 존재한다면 왜 방관합니까. 그 궁극적인 질문의 대상은 제가 아니라고 봐요. 결국 신에게 여쭙고 싶은 질문인 거죠. 저 역시 이 영화를 통해 하는 겁니다. “이젠 증명하시라”고.

Q. 그 질문을 찾아 한두달 가까이 무속인들과 지내기도 했다고요.
나홍진: 무속인들과만 지낸 게 아닙니다. 의문을 풀기 위해 절도 가고, 네팔도 가고, 일본도 가고. 진짜 여러 나라의 종교를 찾아다녔어요. 제가 직접 체험하고 느낄 시간적 여유가 없다보니, 대신 여쭤본 거죠. 신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인지, 성직자의 입을 통해서 대신 듣고 싶었던 겁니다. 그게 6년이 걸렸어요. 어떤 분은 6년이 길다고 하시는데, 저에게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어요. 만약 실제 체험을 통해 얻으려면 60년도 부족했을 겁니다. 그래서 여쭤볼 수밖에 없었고, 그 시간 안에서 바쁘게 움직였던 거죠.

Q. 영화를 보니, 뚜렷한 해답을 찾으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홍진: 맞아요. 지금의 엔딩이 그에 대한 대답이죠. 이게 다예요. 각 성직자분들을 만나서 제가 경험하고 느낀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쭤봤어요. 각자의 대답을 들었죠.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납득이 되지 않더라고요, “죄송합니다. 너무 완벽한 교리인 것은 인정하고, 해석인 것도 인정하고, 입장인 것은 인정합니다만, 납득이 안 되네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영화에서 이런 결론을 내린 거죠. “더 보여주셔야겠습니다. 선한 것을 누구인지, 악한 것은 누구인지 다들 혼란스러워 합니다”라고요. ‘곡성’은 그런 영화입니다.

Q. 세계 여러 나라의 종교를 찾아다니는 경험이 흔한 건 아닙니다. 그런 생활이 나홍진 개인의 삶에도 많은 영향을 줬을 것 같네요.
나홍진: 그럼요. 사람이 뭐랄까. 아주 많이 유해졌어요.(웃음) 네. 많이 유해진 것 같아요.

(사진=권영탕 기자)
(사진=권영탕 기자)

Q. 여러 종교가 담겨 있지만,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 것은 가톨릭적인 테마입니다.
나홍진: 성경을 보면 부활한 예수가 직접 자신이 예수라고 밝혔는데, 제자들은 믿지 않고 의심을 합니다. 왜 예수임을 인정 못했느냐. 유령인 줄 알았대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의 모습과 그 비주얼이 달라서 의심했던 거죠. 그래서 예수께서 계속 말씀 하시죠. “나를 만져 봐라. 난 유령이 아니다. 난 예수가 맞다, 나의 제자들아.” 영화 속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마지막은 그 플롯을 착안한 게 맞아요. 외지인이 악마의 형상을 하고 이야기 할 때, 부제/이삼(김도윤)가 “주여!”라고 읊조려요. 저는 여기에서 관객들에게 두 가지 선택을 드린 겁니다. “자, 지금까지 믿음과 의심을 보셨습니다. 영화가 이렇게까지 보여드렸는데 믿으시겠습니까, 의심하시겠습니까! 이 일본인은 메시아입니까,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선택하시겠어요?”라고 말이죠.

Q. 선택에 따라 외지인은 완전히 반대로 읽힙니다.
나홍진: 네. 이 외지인은 악마인데 예수의 흉내를 내는 것일 수 있어요. 그렇다면 부제가 내뱉은 “주여!”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드리는 것일 수 있겠죠. 반대로 일본인은 겉모습은 악마일지라도 실제 메시아일 수 있어요. 그래서 부제가 이 외지인에게 “주여!”하고 경배하는 것일 수도 있는 거고요. 결국 믿음과 의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걸 가지고 관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드리는 거지요.

Q. 어떤 해석을 해도 상관없다고 하셨지만, 그럼에도 나홍진의 마음에는 외지인과 무명(천우희)의 정체에 대한 나름의 정리가 돼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홍진: 의도 자체가 선택을 드리자는 것이니, 어떤 쪽으로 받아들이셔도 상관없어요. 그럼에도 질문을 주신 부분에 대해 인간 나홍진으로서 말씀을 드리자면, 일본인이 악이라고 믿고 싶죠. 무명이 선이라고 믿고 싶고요. 그리고 무명은 지금 방관하고 계신, 혹은 위협받고 계신 신의 어떠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피해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이 영화는 엔딩에서 ‘어떤 책임’을 다 하려고 해요. 바로 위로입니다. 누구를? 남은 자를. 그래서 제목도 곡성, ‘누군가가 죽었을 때 소리 내어 운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죠. 그렇다면 어떻게 위로해야 하나. 피해자의 아픔을 감히 짐작도 못하는 제가, 단순한 대사 하나로 위로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의 결론을 마지막 종구(곽도원)의 클로즈업에 담은 겁니다. “내가 당신의 아픔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당신은 처절하게 지키고자 최선을 다했다. 매순간 옳은 판단을 하려고 했고, 진정으로 구하려고 했다. 당신의 행동에는 일말의 잘못도 없었다. 당신은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일을 겪었고, 그 안에서 늘 최선을 다했다. 그러니, 아파하지 말아라.”

(사진=권영탕 기자)
(사진=권영탕 기자)

Q. 그래서 이런 영화를 만든 당신도 위로를 받았는지 궁금하군요.
나홍진: VIP 시사회 때 영화를 10일 만에 봤어요. 수정에 대한 압박 없이, 불 꺼진 극장에서 집중해서 보는데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음…(깊은 한숨) 사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제 영화를 보면서는 더욱 그런 일이 없는 사람인데…그땐 뭔가 다르더라고요.

Q. 말씀을 들어보니,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에서 찍은 영화가 ‘곡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 이유에서든 죽기는 하잖아요. 인생이라는 게 허무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럼에도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나홍진: 마련을 해야겠죠. 위기입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들, 그것을 단순히 어떤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을 해서 안 좋은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아져야죠. 나아지길 바라고요.

Q. 희망을 바라고 계시군요.
나홍진: 그렇게 돼야죠. 그렇게 되길 바라고요…그러니까 ‘감히’ 이렇게 대드는 영화를 만든 거죠.(웃음)

Q. ‘추격자’(2008) 이후 한참 스릴러가 붐이었습니다. 많은 영화들이 ‘제2의 추격자’이길 희망하며 등장했죠.
나홍진: 개봉하는 순간 그 영화는 해부를 당해요. 그 해부는 영화를 만들 때까지의 나홍진에 대한 해부와도 같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그런 해부가 일어나면 그 양분을 가장 효과적으로 섭취한 누군가가 더, 더, 더 좋은 뭔가를 내놓게 되는 게 당연한 그림 같아요.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더 많은, 그런 판이 되는 거죠. 그럼 저는 그것을 보고 또 자극을 받을 테고요.

Q. 그런데 그 양분을 더 효과적으로 섭취한 누군가가 나타났는지는 의문이군요. 아류들도 상당했으니까요.
나홍진: 음. 그곳으로 제가 다시 회귀를 한다는 것은… 저를 해부한 누군가가 훌륭한 결과물을 내놓고, 제가 그 사람을 해부하기 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제가 아무 해부 없이 다시 그 시장으로 회귀하는 건 그리 좋지 못한 그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 같아요. 어쨌든 ‘곡성’이 또 해부를 당하겠죠. 그럼 저는 이런 류의 영화를 당분간 찍으면 안 된다고 봐요.

▲'곡성' 촬영현장(사진=20세기폭스 제공)
▲'곡성' 촬영현장(사진=20세기폭스 제공)

Q. 영화 내내 ‘절대 현혹되지 마라’고 외치는데, 다른 의미에서 나홍진이라는 감독은 어떤 사람에게 현혹/매혹당하는 편인가요.
나홍진: 저는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워요. 만약 영화라면, 필름메이커의 어떤 필모나 후광이 그 영화 안에 담겨질 텐데 저는 그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영화만 봐요. 그것이 거장의 영화든 신인의 영화든 개념이 없어요. ‘이 영화, 너무 좋다’라고 느끼면 그냥 그 영화가 좋은 거예요. 그 영화가 존경스럽고요.

Q. 최근 당신을 현혹시킨 사람이 있다면요.
나홍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만든 ‘레버넌트’라는 영화를 극장에서 봤어요. 보고 화가 너무 났어요. 아주 많이 났어요. 급기야 1주일동안 이냐리투가 너무 미운 거예요.(일동 웃음) 이전까지는 그 감독님을 되게 존경했는데, ‘레버넌트’를 보고 나서는 미워졌어요. 영화가 너무 좋아서 말이죠. 그 영화가 마침 폭스에서 수입한 영화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 양반 다트라도 만들어야겠다. 그 양반 사진 좀 줘라”고 했죠.(일동폭소) 그런 농담을 할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Q. 그런 자극이 당신의 작품에 영향을 주나요.
나홍진: 그 영화를 본 게, 제가 ‘곡성’ 후반작업을 할 때였는데요, 화가 너무 나서 2-3장짜리 시놉시스를 다음 날 밤에 바로 써버렸어요. 그러곤 폭스에게 던졌죠. “나 약 올라서 안 되겠다”하면서.(웃음) 그랬더니 폭스에서 보고는 “생각을 조금만 더 해보시라”고.(일동폭소) 나중에 제가 쓴 걸 다시 봤더니, 말도 안 되더라고요.

Q. 제작보고회 때 “폭스와의 작업이 이전 배급사들과의 작업과 어떻게 달랐는가”를 묻는 질문에 “폭스가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고 편집에 관한 자율성을 존중해줬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나홍진: 서로 관례가 다르잖아요. 그러다 보면 충돌이 생기는 거죠. “우리 관례에 맞춰요.” “그건 안 돼요. 여기서 찍으니까 우리 관례를 맞춰주세요” 그걸 조율하는 시간이 꽤 걸렸어요. 6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그런 갭이 많이 줄었죠. 이젠 많이 수월해진 것 같아요.

Q. 한편의 영화를 내놓기까지 6년. 하지만 길게는 1-2달, 짧으면 몇 주 만에 영화의 모든 것이 결단이 나죠. 허무할 것도 같습니다.
나홍진: 가장 무서운 게 그거죠. 이렇게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빨리 사라지면 어쩌나. 그에 대한 공포가 어마어마해요. 특히 ‘곡성’은 제가 너무 오랜 시간 빠져 있어서 객관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다행히 많이들 응답을 해 주시는 것 같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어요. 그러니까 사는 거죠.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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