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서현진 기자]
김곡 감독은 주로 편안하지 않은 것들을 스크린으로 옮겨온다. 포돌이라는 정치적 상징물을 내세워 현 사회와 정치를 풍자한 영화 ‘자가당착’(2012)이 그랬고, 불안한 사회를 매춘 등의 현상을 빌려 꼬집은 ‘고갈’(2008)이 그랬다.
김곡은 쌍둥이 동생인 김선 감독과 함께 관객들에게 각성의 메시지를 전한다. “‘누가 안하니까 내가한다’는 싸구려 사명감은 없다”고 말하는 김곡 감독은 그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한다.
이처럼 현실의 모순을 영화에 녹이는 김곡 감독의 재주가 ‘무서운 이야기3: 화성에서 온 소녀’에서 또 한 번 발휘됐다.
이 영화는 총 세 편의 에피소드가 서로 다른 공포의 콘셉트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 중 ‘기계도 원한을 가질 수 있다’는 가정에서 시작된 마지막 에피소드 ‘기계령’은 유독 섬뜩하다. 사회에 만연한 인간 중심적 사고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지적하면서, 우리 역시 사물의 원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색다른 공포를 가능하게 한 김곡 감독의 상상력을 살짝 엿봤다.
Q: ‘무서운 이야기3‘는 옴니버스 영화다. 세 에피소드인 ‘여우골’ ‘로드레이지’ ‘기계령’의 순서는 촬영 전부터 정해졌나.
김곡: 촬영 전에 이미 정해졌다. 마지막에 배치된 만큼 관객들에게 잔향을 안겨야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관객들은 장편영화 보다, 짧은 단편을 연달아 두 편 보는 것을 더 피곤하게 느낀다. 그래서 타이트하게 끝내려고 편집실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Q: 영화의 ‘잔향’을 주기 위해 고민한 부분이 구체적으로 뭔가.
김곡: ‘무서운 이야기’가 그동안 축적해 온 룰들이 있기에 장르에 충실하려 했다. 그래도 나름 스피드하게 편집을 했고, 전개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시선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기계 귀신이 탄생된 거다. 사실은 이게 와이프 아이디어였다. ‘로봇 귀신 어때?’란 아내의 한 마디에 ‘좋은데?’하고 침대에서 누워있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2시간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Q: 로봇 귀신을 내세워 표현하고 싶은 게 있었다면.
김곡: 로봇 귀신인 둔코는 우리의 모습을 시사한다. SF라는 겉피를 입고 있는 것 일뿐. 세상이 진화하면서 너무 자주 버려지고, 새로운 것들의 회전도 빠르다. 우리에게 기계는 일회용이나 마찬가지다. 일회용이 무서운 이유는 우리들이 ‘일회용으로 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땅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는 둔코다.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 ‘나 역시 둔코가 될 수 있다’란 생각에 더 오싹함을 느끼길 바랐다.
Q: 짧은 단편인데, 인간혐오 세태에 대한 메시지도 담았다.
김곡: 집약적인 요약본처럼 나왔다. 이걸 의도했다면 난 천재지(웃음). 의도한 것은 없다. 내가 잡은 주제는 공포영화니까 공포가 메시지다. 영화 속 둔코의 죽음과 부활, 원한을 관객들이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에피소드는 성공이다. 거창한 사회악적 함의나 존재론적인 분석은 이후의 일이다. 보고난 사람들의 몫이고.
Q: ‘기계령’ 뿐 아니라 ‘무서운이야기3’ 에피소드 전반에 ‘인간 혐오’가 자리한다. 인간 중심적인 세태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인가.
김곡: 맞다. 요즘은 참 무서운 세상이다. 길가는 사람을 왜 찌르는지 모르겠다. 이건 ‘현상’이 아닌 사회적인 ‘증상’이다. 분노를 표출할 데가 없는 것 같다. 무기력함이 불안으로 전환되고 있다. 무력함이 팽배하니까 여분의 분노가 축적되고, 분출 돼 전염병처럼 퍼진다. 원한은 인간의 오작동이다. 화나는 건 에러다.
Q: 극중 주인공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이웃집을 찾지 않는 건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
김곡: 위급상황에도 이웃집에 연락하지 않고, 센터부터 찾는다. ‘기계령’에서 내가 그리고 싶었던 세계가 바로 그거였다. 이웃집이 있어도 더 멀리 있는 센터에 연락하는 것. 유령국가 같은 고립감을 형상화하고 싶었다.
Q: 작품들을 보면 ‘자가당착’ ‘고갈’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에 집중하는 느낌이 든다.
김곡: 튀고 싶어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건 아니다. 정치는 딴 게 아니다. 우리가 버려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정치다. 노동자, 비정규직들이 너무 쉽게 쓰이고 버려진다. ‘자가당착’ 일반개봉을 위해 법정투쟁을 했는데(5년), 표현의 자유의 벽을 실감했다. 물론 상업영화를 왔다 갔다 하니까 좀 무뎌졌다. 하지만 잊지 않으려고 내 자신을 다독인다. ‘누가 안하니까 내가한다’는 싸구려 사명감은 없다. 그냥 내가 느끼는 걸 표현할 뿐.
Q: 공포영화가 인기를 끌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마니아를 위한 영화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곡: 인정하는 부분이다. 과거 70년대, 영화 ‘한’ 시리즈를 시작으로 공포영화 붐이 일었다. 이후 ‘링’ ‘여고괴담’ 등이 연달아 흥행하던 르네상스 시기가 있었다.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공포영화 시장이 많이 위축됐다. 그렇다고 색다름을 추구하는 게 내 목적은 아니었다. 공포영화는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묘사한다. 현실의 불안을 장르적 표현으로 인격화하거나 실체화하는 장르라고 할까. 공포물은 색다름을 위한 실험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공포’가 뒷전이면 안 된다.
Q: 공포 영화는 주로 리얼함을 살리기 위해 현실과 밀접한 배경을 찾는다. 그런데 '기계령'은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생경한 미래가 배경이다.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은 어떻게 잡았나.
김곡: SF와 호러를 결합한 만큼 ‘어떻게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거리감 없게 보이게 할 것이냐’가 관건 중의 하나였다. 어색하면 안 되고, 우리 삶과 똑같게 보이도록 노력했다. 낯설음은 별로 무섭지 않다. 친숙함에서 오는 게 더 공포스럽다.
Q: 그래서일까, ‘기계령’은 어릴 적 처키를 봤을 때 공포가 떠올랐다.
김곡: 그랬다면 성공이다. 처키를 넘기 쉽지 않은데. 기분 좋다(웃음). 의상이랑 머리스타일을 결정하는 게 괴로웠다. 처키라는 너무 강력한 적이 있더라. 여러 가지 시도를 했는데, 솔직할 때는 솔직해야한다. 내가 가장 인형이라고 생각한 걸 옮겨야하는데, 처키가 있다고 바꿀 수는없다. 색다름이 아니라 공포라는 메시지를 충실하게 따라갔다.
Q:로봇 귀신 둔코로 나온 아역배우가 여자 아이란 사실에 좀 놀랐다. 영화에서는 남자처럼 느꼈는데.
김곡: 첫 시나리오는 누가 봐도 남자인 아이로 묘사된 시나리오였다. 연출 회의를 하다 ‘둔코가 남자냐, 여자냐’는 말이 오갔는데 중성적으로 성별을 뒤집자고 했다. 남자도 아닌 여자도 아닌, 사람도 기계도 아닌, 어른도 어린애도 아닌 상태로 뒀다.
Q: 아역 이재인의 로봇 연기가 대단했다.
김곡: 재인이가 너무 고생했다. 내가 웬만하면 배우들에게 미안해하지 않는데 무덤에 묻을 때는 너무 미안했다. 정말 앞으로 두고 볼 물건이다. 리허설 할 때도 엄청 났다. 오디션으로 건져낸 건 우리지만 플레이를 한 건 이재인이다. 형용사를 던져주면 애가 독해하고 표현한다.
Q: 엄마 역으로 나온 홍은희 씨는 이 영화를 통해 첫 스크린에 진출했다.
김곡: 처음이라는 게 아직도 못 믿겠다. 칭찬 많이 해드리고 싶다. 이 영화를 살려주신 분이다. 10년간 가족처럼 함께한 둔코와의 관계 변화가 극적인 영화다. 그래서 배우의 감정 조절이 중요한데 홍은희 씨가 훌륭하게 해줬다.
Q: 공포영화 주인공을 캐스팅할 때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뭔가.
김곡: 일단 소리를 잘 질러야한다(웃음). 감정의 수도꼭지를 잘 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잠그는 게 중요하다. 분위기 감지력이 뛰어나야 유리하다. 관객들이 ‘저 장면이 무섭다’고 느끼는 건 그 전에 엄청난 분위기를 축척했기 때문이다. ‘링’에서도 귀신이 나오는 장면은 실제 2번 정도뿐이다. 걸음걸이, 표정, 말투 등으로 분위기를 잘 표현하는 게 유리하다. 분출형 배우보다 응축형 배우가 그래서 더 적합하다.
Q: 어쨌든 ‘세계 최초로 로봇 호러’의 스타트를 끊었다.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
김곡: 둔코를 슬퍼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무서우면 된다. 극장에서는 무섭고, 나오면서는 왜 무서웠나를 돌이켰을 때 ‘아 내가 저러고 있구나, 내 이야기였어!’라고 관객들이 느낀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