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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Z컬] 서태지 음악은 시대 관통, '페스트' 플롯은 시대 역행

▲뮤지컬 '페스트'
▲뮤지컬 '페스트'
서태지. ‘문화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서태지란 이름이 국내 대중문화사에서 갖는 무게는 실로 대단하다. 그의 영향력은 음악, 패션, 정신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뻗어나갔으며, 문화 전반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유의미한 현상을 이끌어 냈다. 때문에 서태지의 노래를 엮은 쥬크막스 뮤지컬, 속칭 ‘서태지 뮤지컬’의 탄생은 국내 뮤지컬 제작사들에겐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을 테다.

‘페스트’는 제작사 스포트라이트가 지난 2007년부터 일곱 개의 대본을 쓰고 버린 끝에 완성한 작품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각색해 ‘저항’과 ‘연대’를 키워드로 서태지의 음악과 버무렸다. 150분에 가까운 러닝타임동안 21개의 넘버가 무대에 흐른다. ‘컴백 홈(Come back home)’, ‘난 알아요’ 등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히트곡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작곡가’ 서태지의 재능은 시종 빛을 발한다.

▲뮤지컬 '페스트'(사진=스포트라이트)
▲뮤지컬 '페스트'(사진=스포트라이트)

서태지의 음악은 원작자의 품을 떠나서도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관객들에게 다가간다. 1막 초반 등장하는 ‘테이크 원(Take One)’, ‘휴먼 드림(Human Dream)’은 앙상블들의 합창을 통해 웅장하고 폭발력 있게 재탄생된다. 여기에 화려한 퍼포먼스가 더해지면서 일찌감치 관객들의 시선을 붙드는 데에 성공하다. 각성한 시민들이 부르는 ‘죽음의 숲’, ‘라이브 와이어(Live Wire)’, ‘코마(Coma)’는 그 자체만으로도 저항과 연대의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서태지의 음악이 ‘보석’이라면 음악감독 김성수는 훌륭한 세공사의 역할을 해낸다. 클래식한 편곡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하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드럼과 화려하게 유영하는 오케스트라는 앙상블들의 합창과 어우러져 시원하게 질주한다. ‘휴먼 드림(Human Dream)’에서 마이크 이펙터를 활용해 미래적인 분위기를 더한 것이나 가곡 형태로 편곡한 ‘이너비리스너비’로 긴장감을 더한 것 역시 영리한 선택이다.

▲뮤지컬 '페스트'(사진=스포트라이트)
▲뮤지컬 '페스트'(사진=스포트라이트)

그러나 완성도 높은 음악이 작품의 소구력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페스트’는 저항과 연대의식을 끈질기게 외치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다소 지루하다. 리유, 타루로 대변되는 정의의 사도들이나 코다르, 리샤르 등의 악인들 모두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주인공들의 사고와 행동이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으니, 흥미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지사. 반면 랑베르와 시민의 각성은 그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아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

‘미래 도시’ 오랑에 대한 상상력 또한 빈곤하다. 기억제거장치와 욕망해소장치가 개발돼 국가가 시민들의 행복을 통제한다는 것 외에는 도저히 ‘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쥐도 새도 모르게 시민들을 길들일 만큼 치밀하다는 오랑 시는, 통제의 측면에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아둔하다.

70여 년 전 프랑스에서 쓰인 작품이 2016년의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메르스 사태를 목도하고, 정부의 무능 (혹은 무관심)을 경험한, 혐오와 단절이 일상화된 2016년의 우리에게, ‘페스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작품이 매력을 잃으면서 ‘페스트’가 가질 수 있었던 의미도 함께 약해졌다. 그것이 가장 안타깝다.

이은호 기자 wild37@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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