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김래원의 ‘로코’(로맨틱 코미디) 복귀작이 된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실로 엄청났다. 중장년층까지 브라운관 앞에 집결시키며 침체됐던 SBS 월화극의 구원투수로 급부상했다. 1회부터 20회까지 단 한 번도 월화극 시청률 1위 자리를 뺏긴 적이 없다. 올림픽 기간을 통해 마의 벽으로 통했던 시청률 20%도 돌파했다. 파죽지세로 나아갔던 두 달 동안 ‘닥터스’는 그렇게 많은 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이토록 ‘닥터스’가 뜨거운 화제를 얻은 것에는 김래원 박신혜의 케미도 한몫했다는 목소리가 크다.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사제지간의 사랑이 김래원 박신혜를 만나 안방극장을 설렘으로 물들였다. 극 중에서도, 또 실제로도 상당한 나이차를 보이는 만큼 김래원도 이에 대해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어려 보이려고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피부 관리도 꾸준히 했다”던 그는 이내 자신의 연기 철학에까지 입을 열었다. 솔직한 김래원의 마음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봤다.
Q. 그러고 보니 상대역이었던 박신혜와 나이 차이가 꽤 났지.
김래원: 난 잘 모르겠다. 의식한 적도 없고. 음… 8살 차이였던가?
Q. 9살 차이였지 않나.
김래원: 아, 한 살이라도 줄여보려 했는데(웃음). 하지만 정말 나이차를 의식하진 않았다. 후배들도 나를 그렇게 대하지도 않았고. 그냥 편한 오빠처럼 대해줬는데 그게 또 맞는 거지 않나. 그리고 작가님 대사가 가진 힘도 있었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케미가 살아나는 장치들이 심어져있어서 배우들이 잘 할수록 시너지가 많이 났거든. 감독님도 분위기를 잘 만들어주셨고.
Q. 현실뿐만 아니라 극 중에서도 나이차도 꽤 났고, 심지어 사제지간이었다. 연기하면서도 의식이 됐을 것 같다.
김래원: 오히려 사제지간인 걸 너무 의식하면서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대본에 모든 장치들이 숨어있는 거니까. 하지만 연인이 된 뒤 스킨십을 하는 장면에서는 조심하긴 했다. 키스신에서 내가 너무 적극적으로 하면 징그럽지 않았을까? 사제지간이니까. 내가 수줍어하는 모습도 사실 대본엔 없었지만, 그렇게 해야 거북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보였을 것 같았다.
Q. 두 사람의 커플 연기 중 춤추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빗속댄스가 좋다는 반응 속에서 오글거린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김래원: 안 그래도 종방연 때 감독님이 “춤추는 건 다신 안 할 거다”라고 했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 장면은 실수였다(웃음). 처음부터 연기하기가 힘든 장면이었다. 부담스럽고 이상하고… 그래서 감독님께 편집으로 커버되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감독님이 걱정말라고 했었다. 하지만 편집으로 살리기가 힘들었지. 사전에 춤 연습도 없이 느낌만으로 연기해서 더 망친 것 같다. 선곡이 미스였나 싶기도 하고. 촬영 시간도 별로 없었고… 뭐, 감독님도 본인 실수라고 하셨다(웃음).
Q. 전화박스 앞에서 뽀뽀할 때도 자세가 엉거주춤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김래원: 그렇게 이상했나? 내가 보고나서 느낀 건 그 장면이 이상했지 나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웃음). 난 그냥 상황에 맞게 한 거니까. 스승과 제자로 십몇 년 만에 만나서 너무 자연스럽게 딥키스를 했다면 그게 진짜 위험했을 것 같다.
Q. 생각해보니 박신혜와 스킨십 장면이 꽤 많이 나왔네. 몰입을 위해 노력한 게 있을까?
김래원: 알게 모르게 정말 노력을 많이 했지. ‘어떻게 할까?’ 보다는 설레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내 스스로 최면을 많이 걸었다. ‘저 여자 너무 예쁘고 지켜줘야 해’ 등의 생각을 하다 보니 실제로도 얼굴이 빨개지고 그랬다.
Q. ‘닥터스’에는 특별출연자도 정말 많았다. 혹시 그 중에서 기억에 남던 출연자가 있나.
김래원: 정말 다 좋으셨고 기억에도 많이 남았다. 특히 탐나는 역할도 있었다. 조달환 씨가 한 사이코패스 집착남이 너무 괜찮더라. 배우로서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작가님께도 “나중에 이런 역할 진짜 하고 싶다고. 쓰시면 나 하겠다”고 아예 말씀을 드렸다(웃음). 조달환 씨가 그 역을 너무 잘 해주셔서 드라마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 조달환 씨께도 직접 고맙다고 했었다.
Q. 전작 ‘펀치’에서의 박정환 캐릭터를 생각할 때, 홍지홍은 뚜렷하게 밝은 캐릭터다. ‘닥터스’가 사람이 사람을 만나 변화하는 것을 다룬 작품인 만큼 당신도 뭔가 변화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은데.
김래원: 나는 배우를 오래 해서 역할들의 장점만 가져가려 한다. 어두운 역만 하니까 내가 정말 어두워져서, 밝은 것만 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다. 내가 너무 고생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좀 알고 하는 것 같아서 편해졌다. ‘닥터스’에서 내레이션으로 인과응보를 이야기할 때, 내레이션으로만 흘릴 게 아니라 좀 더 힘을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는 중요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10대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나눴었다.
Q. 인터뷰를 하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배우라는 직업에 정말 열의를 갖고 임하는구나.
김래원: 열정이 없어지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감독님이 그랬다. 배우는 잘 하면 근사하고 멋있지만, 잘못하면 천박한 직업으로 남는다고. 그래서 20대 중후반 때 이 직업에 대해, 팬들로부터 받는 사랑의 의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런 고민들의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고. 분명한 건 그거다. 연기가 점점 더 재밌어진다. 잘 하고 싶다.
Q. 당신의 욕심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펼쳐질 건지 궁금하다.
김래원: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톰 행크스나 ‘터널’처럼, 어떤 상징적인 공간 안에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실적이지만 보는 사람들이 울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 사실 영화를 더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드라마도 할 계획이다. 재밌으니까. 종방연 때 그런 이야기도 나눴다. 4부작이나 8부작 드라마를 완성도있게 해보는 건 어떨까 하고. 영화 ‘강남 1970’같은 강한 역할은 가끔 할 거다. 내 베이스를 진정성 있고 인간적인 걸로 풀어내고 싶거든. 하지만 사이코패스를 넘나드는 연기도 가끔은 하고 싶을 것 같다.
Q. 사이코패스라니, 듣기만 해도 기대가 된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택한 로코, ‘닥터스’가 김래원이라는 배우에게 남긴 건 뭘까.
김래원: 표현하다는 게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걸 홍지홍을 통해 정말 많이 배웠다. 그래서 요즘 정말 행복하다. 광고도 찍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