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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심은경 “이런 나를…있는 그대로의 나를”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심은경. 데뷔 13년차 배우.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 입문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여타 10대 소녀들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써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써니’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 그리고 ‘수상한 그녀’로 이어지는 흥행을 거치며 심은경은 원하든 원치 않든 대중의 관심 한가운데 놓였다. 이른 나이에 원톱 주연으로 영화의 흥행을 이끈다는 것은 분명 특기했고, 희귀했다. 그런 외부의 시선에 대해 그녀가 느끼는 변화의 체감 속도는 더욱 빨랐던 것 같다. ‘걷기왕’으로 돌아온 심은경이 가장 많이 꺼내는 단어가 ‘힐링’인 걸 보면 말이다.

인터뷰로 마주한 심은경은 예상대로 독특한 개성과 뚜렷한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반면, 의외의 ‘애어른’ 다운 면모도 강했다. 그것은 너무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얻게 된 인간관계에 대한 조숙함 때문만은 아닌 듯 보였다. 자신을 정확히 꿰뚫고자 하는 면모가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은 치열했던 시간들이 그녀에게 안긴 선물일 게다. 심은경은 느리게 걷는 법을 아주 명민하게 터득해나가는 중이다.

Q. 낯을 많이 가리네요?
심은경:
제가 좀… 원래 그래요. 친해지면 농담도 하고, 장난도 많이 쳐요.

Q. 영화가 만든 사람들을 닮았네요. 백승화 감독님도 은경씨처럼 낯을 가리는 것 같던데.(웃음)
심은경:
네. 감독님이 재미있고 독특한 아이디어도 많이 가지고 계신데, 저와 조금 비슷하세요. 감독님과 처음 미팅했을 때,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러고 끝. 한 참 있다가, “시나리오 잘 읽었습니다”, “아, 네…” 끝.(웃음) 아직까지도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면 ‘마’가 자주 떠요.(일동 웃음)

Q ‘걷기왕’은 어떻게 봤어요?
심은경:
언론시사회 때 처음 봤어요. 제가 출연한 영화여서가 아니라 한 명의 관객으로 봤을 때도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진심으로 위로받는 느낌이었달까…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동안 내가 너무 여유 없이 지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나려하지 뭐예요. 민망해서, ‘울면 안 돼’ 꾹 참았죠.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감동을 잘 받는 편인가요?
심은경:
제가 나온 영화를 냉정하게 보는 편이에요. 이 장면에서 연기가 어땠는지, 감정 연결선이 잘 맞는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디테일하게 봐요. 그런데 ‘걷기왕’은 디테일보다 영화 전체를 보게 되더라고요. 촬영 때도 그랬어요. 뭔가를 만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편하게 보여주자라는 생각으로 임했어요. 저에겐 새로운 경험이었죠. 촬영하면서 심적인 여유를 많이 얻었어요. 연기에 대한 제 생각을 바꾸게 해줬죠. 여러모로 의미가 큰 영화에요.

Q. ‘걷기왕’ 제작보고회 때도 힐링과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사실 은경 씨는 큰 논란 없이 온 케이스잖아요? ‘써니’ ‘광해’ ‘수상한 그녀’ 등 작품적으로 승승장구했는데, 그런 성공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심은경: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아요. 특히 ‘수상한 그녀’ 이후에 고민이 많았어요. 예상치 못했던 흥행이었죠. 칭찬도 받았어요. 그에 대해 감사하고 행복한 반면, 혼란이 왔어요. 저 자신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이전에는 어떤 기준에서 작품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확고한 중심이 있었거든요. 그 중심이 어느 순간 흔들리는 걸 느꼈어요. 연기를 13년 했고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더라고요. ‘연기라는 게 도대체 뭐지?’ 고민하는 와중에 ‘걷기왕’ 시나리오가 들어왔어요. 공감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참여하게 됐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를 생각하며 임했던 것 같아요.

Q. 만복이에게 ‘진짜 심은경’이 투영됐다고 봐도 될까요?
심은경:
제가 멀미 증후근은 없으니까(웃음), 그것만 빼면 실제의 제가 많이 이입됐다고 보셔도 될 것 같아요. 제가 겪었던 10대 때의 경험과 감정들을 살려서 만복이 캐릭터에 녹여내려 했어요. 그러다보니 연기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필모그래피를 보면 독특한 구석이 있어요. 시나리오는 소속사에서 한 번 걸러져서 은경씨에게 가나요?
심은경:
회사 차원에서 거르는 건 없어요. 결정은 제가 해요. 물론 주위의 권유도 있고, 추천도 있지만 선택은 결국 제 몫이에요.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언제부터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했어요?
심은경:
아역 때부터 어머니께서 그런 능력을 많이 키워주려고 하셨어요. 시나리오를 주면서 항상 그러셨어요. “네가 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해도 돼. 억지로 하지 말라”고. “커서 해도 되니까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읽고 스스로 판단하는 기준을 세웠던 것 같아요.

Q. 시나리오 선택의 가장 큰 기준은 뭔가요?
심은경:
제가 하고 싶은가, 아닌가. 이 캐릭터에 끌리느냐, 안 끌리느냐. 어떤 기준이 명확하게 있는 건 아니지만, 마음에 끌리면 하게 되더라고요.

Q. 그렇다면 스릴러 ‘널 기다리며’는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렸던 건가요? 연기 변신 면에서 뭔가 목표가 정확히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심은경:
스릴러 장르에 도전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그 시기에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서 참여하게 된 작품이에요.

Q. 복수를 꿈꾸는 희주(심은경)는 확실히 기존과 다른 캐릭터이긴 했어요.
심은경:
사실, ‘널 기다리며’에서의 제 연기가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워요. 과연 캐릭터와 감정을 잘 표현했을까… 너무 보여주는 데에만 치중한 게 아닌가… 제가 해 보고자 했던 연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움이 남아요. ‘널 기다리며’를 촬영하고 나서 많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Q. 반성을 많이 하는 스타일 같아요.
심은경:
‘반성을 해야지!’ 하는 건 없는데, 저절로 그렇게 돼요.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어서 주위 분들도 “너는 고민이 너무 많다. 너의 인생과 나이를 즐길 필요가 있는데, 왜 그렇게 안 하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세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또 “왜 나는 사서 고생을 하지?”라는 생각을 또 해요.(웃음) 한동안 그런 저를 바꿔보려고도 했는데 그럴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내린 결론은 ‘내가 원래 이런 천성의 사람이구나. 이런 나를 그냥 받아들이자. 고민도 그냥 끝까지 하는 게 나은 것 같다’에요.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이른 나이에 득도를…(웃음)
심은경:
하하하. 어쩌겠어요. 그게 저인데. 걱정을 해도, 안 해도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죠. 그래서 지금은 고민이 있으면 그 고민을 끝까지 해요. 저 스스로를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않아요. 그 시간 자체가 나중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믿어요.

Q. 고민이 많아 보이지만 그게 행복한 사람도 있어요. 그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
심은경:
그런 것 같아요. 당시에는 괜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이니 오히려 편해요. 그게 ‘걷기왕’ 메시지와도 비슷하게 맞물리죠.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라는. 그래서 ‘걷기왕’을 선택한 것도 있을 거예요.

Q. ‘걷기왕’에 만화 ‘하니’의 나예리-하니 캐릭터가 등장하잖아요?(웃음) 혹시 나예리와 하니를 아나요?
심은경:
저는 만화도 알고, 나예리와 하니도 알아요. 촬영 때 너무 웃겨서 ‘어떻게 이런 코드를 넣으셨지?’했어요. 그런데 이걸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세대가 나뉜다고 하더라고요. 어린 친구들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캐릭터라고 들었어요.

Q. 은경 씨도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인데.
심은경:
아, 그게…(웃음)

Q. 평소, 주로 누구와 어울리나요?
심은경:
감독님들이나 스태프 언니 오빠들, 그리고 PD님들과 주로 어울리고 얘기해요. 최근에는 또래 친구들도 만나요.

Q. 그 분들은 은경 씨에게 어른스럽다고 해요?
심은경:
종종 들어요. 애어른 같다고. “너는 어떻게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니?” 하세요. 상상하고 생각하는 게, 저의 습관인 것 같아요.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스스로가 ‘난 아직 어리구나’를 느낄 때는 언제에요?
심은경:
부모님이 그러세요. “우리 은경이는 한쪽으로는 되게 어른 같은데, 한쪽으로는 또 너무 아이 같다”고.(웃음) 제가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해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해요. ‘멍’ 때리고 있거나. 친구들과 있을 때는 엉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주위에서 “은경이 그렇게 안 봤는데, 특이한 것 같아” 이러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내가 그런가? 난 평범하게 살고 있는데’ 싶죠. 저는 한 번도 제가 특이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Q. 그런데 인생 자체가 평범하지는 않았어요. 일찍이 연기를 했고, 주목을 받았죠. 연기에 애정이 유난히 깊어 보이고요.
심은경:
사실 회사 대표님 만나도 “앞으로 제가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요” “다음 영화는 어떤 작품이 좋을까요?” “요새 이런 영화가 재밌다던데요~” 류의 이야기만 해요.(웃음) 대표님이 그런 저를 다 받아주세요. 일적인 부분에 대해 믿고 다 털어놓을 수 있어서 감사하죠.

Q. 고등학교 때 유학을 갔잖아요? 연기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었죠.
심은경:
그때는 의외로 쉽게 결정을 내렸던 것 같아요. 제가 과감할 때는 또 확실하게 밀고 가는 스타일이거든요. ‘여기가 끝이 아니다. 더 멀리 보자. 당장 필모를 쌓을 수 있겠지만, 나는 아직 어리니 학교생활도 해 봐야한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유학을 떠났죠.

Q. 유학생활은 어땠어요?
심은경:
복합적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다양한 것들을 알게 됐어요. 주위에 클래식 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 덕분에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됐죠. 여러 공연도 접했고요. 영감을 얻는 폭이 넓어진 기회였어요. 한편으로는 아무래도 타지다보니, 다른 언어를 쓰면서 지내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어요. 낯을 많이 가리는 바람에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도 몰랐고요. 유학시절에 사춘기가 한 번 크게 왔던 것 같아요. 뭐랄까. 큰 도시 속에 홀로 있으니까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지?’ 하는 회의감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시절이 제게 연기를 해 나가는데 밑바탕이 돼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Q. ‘걷기왕’은 심은경이 선택한 첫 다양성 영화라는 점에서도 주목받았어요.
심은경:
다양성 영화들이 관심이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만듦새 좋은 상업영화도 많죠. 하지만 조금 더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져야 한국영화가 발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요새 상업영화를 보면 장르가 많이 겹치잖아요? 스릴러가 특히 많죠. 저 또한 어두운 스릴러로 관객들을 찾아뵙긴 했지만, 장르가 계속 겹치다보면 관객들이 어느 순간 지칠 거예요. 소소하고 밝은 영화들도 나오고, 사회에 물음을 던지는 영화도 나와야 영화 산업이 건강해진다고 봐요. 그래야 배우들도 조금 더 다양하게 도전할 수 있고, 연기적으로 고민하면서 발전할 테고요. 그런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심은경(사진=윤예진 기자 yoooon@)

Q. 은경 씨는 안티가 없는 것 같아요.
심은경:
안티요? 저…저도 안티가 있어요. 댓글 같은 걸 보면.

Q. 댓글은 안티가 아닙니다.
심은경:
아, 그런가요? 저를 싫어하는 분도 분명 있다고 생각을 해요. 어떻게 모든 분들이 저를 좋아해주시겠어요.(웃음)

Q. 영화 마니아들의 집결지로 유명한 사이트 ‘익스트림 무비’(줄여서 ‘익무’)에서 ‘익무여신’으로 추앙받고 있어요.(웃음) 두터운 지지를 보내주는 영화 팬들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심은경:
그건 정말이지,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익무 편집장님을 ‘헨젤과 그레텔’ 때 처음 만났어요. 그때부터 저를 지지해 주셨어요. 제가 출연하는 작품마다 응원해주셨죠. 지금 익무에 ‘심은경 갤러리’가 있는데 괜히 쑥스럽고 그래요. 하지만 저를 지지해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되죠. 이 분들을 위해 좋은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Q. 연기에 대한 고민이 남다른 심은경에게 하는 마지막 질문이에요. 연기는 ‘걷기왕’처럼 하다가 지치면 그만 할 수도 있다는 쪽인가요?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인가요.
심은경:
어릴 때는 ‘나는 평생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요즘은 사실 잘 모르겠어요. 마음을 조금 편하게 먹었어요. ‘끝까지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순간을 즐기자’로 마음을 바꿨어요. 그러니까 이전에는 ‘연기를 끝까지 할 거야’에 매달렸다면, 이제는 그런 부담들을 내려놓았다는 의미인 거죠. 미래를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내가 행복한 게 우선인 것 같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해요.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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