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더 이상 아이돌 출신 배우는 인기를 등에 업고 무임승차한 존재가 아니다. 타고난 끼를 바탕으로 웬만한 신인배우보다 인상적인 연기력을 선보인 일부 ‘연기돌’들 덕분이다. 그 최전선에서 대중의 편견을 지우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가 도경수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될 성 부른 떡잎임을 증명했던 도경수는 영화 ‘카트’로 스크린에 승선하자마자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가 그룹 ‘엑소’ 멤버인 줄 모르는 관객들로부터 “어디서 나온 신인배우야?” 라는 평가가 이어졌으니, 그에게 연기는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형’은 배우라는 수식어가 전혀 낯설지 않은 도경수가 ‘순정’에 이어 두 번째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다.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도경수는 ‘순정’ 개봉 당시보다 더 단단해져 있었고, 긍정적이었으며, 행복해 보였다.
Q. 많이 바쁘다고 들었어요.
도경수: 네. 최근까지 웹드라마 ‘긍정이 체질’을 찍었어요. 지금은 엑소 활동과 영화 ‘신과 함께’ 촬영을 병행중이고요.
Q. 그 와중에 1년 전 찍은 ‘형’으로 팬들과 만나게 됐네요.
도경수: 네. 영화를 본 소감은요↗ 너무 재밌었어요. 보면서 계속 울고 웃었어요.(웃음)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죠. 말씀처럼 ‘형’은 1년 전 찍은 작품이에요. ‘긍정이 체질’과 ‘신과 함께’를 찍으면서 고두영(도경수)을 연기했다면 조금은 더 깊게 인물을 표현하지 않았을까란 아쉬움이 있어요.
Q.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요?
도경수: 표정 변화라든지, 목소리 톤이라든지, 대사 전달력이라든지…그런 부분들이 아쉬워요. 촬영 때 (조)정석이 형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마음으로는 분명 100% 이해하고 연기한 것 같은데, 스크린으로 보면 그게 다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랬더니 형이 “네가 2를 보여주고 싶다면, 5~7 정도로 크게 표현하라”고 얘기 해줬어요. 그 말의 의미를 이제 정확히 알 것 같아요.
Q. ‘순정’에 이은 두 번째 스크린 주연 작품이에요.
도경수: ‘형’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시나리오였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어요. 흥분됐죠. 두영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은 욕심도 컸어요. 두영은 초반엔 어둡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밝아지는 캐릭터에요. 그동안 제가 어두운 면을 많이 보여드렸었는데, 두영을 통해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희망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Q. 두영은 후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게 된 인물이죠. 시각장애 연기는 베테랑 선배들도 힘들어 하는 부분인데요.
도경수: 시각장애인의 마음을 제가 100%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 거예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방법을 찾아보니 시각장애 체험관이 있더라고요. 그곳에서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을 열어두는 경험을 했어요. 그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제가 항상 음악을 틀어놓고 자요. 볼륨 한 칸으로요. 눈을 뜬 상태에서 그 음악을 들으면 거의 안 들려요. 그런데 눈을 감고 집중하면 그 한 칸의 음악이 굉장히 크게 들려요. 실제로 작은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기도 해요. 그 느낌도 연기에 투영했어요.
Q. 문득 도경수는 청각이 발달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드는데, 특별히 열려 있는 감각이 있나요?
도경수: 노래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청각은 아니에요. 그런데 청각만 모든 사람이 똑같지 않나 싶어요.
Q. 그래요? 뮤지션들을 보면 스피커에 굉장히 민감하던데요. 이어폰에도 돈을 많이 쓰고요. 음질 차이 때문에 그런다고 들었어요.
도경수: 그런 차이에 민감한 건 뭐랄까…타고나신 분들?(일동웃음) 절대음감을 지닌 분들이 그런 차이를 느끼시지, 저는 아니에요. 사람마다 노래를 듣는 방식의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멜로디를 먼저 듣는 분이 있고, 가사를 먼저 듣는 분이 있고, 목소리를 먼저 듣는 분이 있죠.
Q. 도경수는 어떤 걸 먼저 들어요?
도경수: 저는 가사가 아예 안 들려요. 북클릿을 읽으면서 보지 않는 이상, 가사는 안 들어와요. 첫 번째로 들리는 건 멜로디. 그 다음에 가수의 목소리라든지 창법들이 들리죠.
Q. 두영은 어떤 아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어요?
도경수: 3살 터울의 친형이 있어요. 후반부는 실제 느낀 형제애를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두영이 친형 두식(조정석)에게 마음을 닫은 초반부에는 제 개인 성향이 조금 투영돼 있어요. 어릴 때의 저는 타인을 경계하는 성향이 강했거든요.
Q. 과거형이네요? 지금은 경계하는 게 많이 없어진 건가요?
도경수: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 제가 원래 제 이야기를 안 하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을 신뢰하게 되면서 마음이 많이 열렸어요.
Q. 어쩌면 어릴 때 말을 안 했다기보다, 잘 들어 줄 상대가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네요.
도경수: 맞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Q. 소중한 사람들이라 함은 친하게 지내는 형들이겠죠?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를 통해 만난 조인성 이광수 등의 형들과 친분을 이어가고 있어요.
도경수: 네. 조인성 선배는 저에겐 진짜 친형 같은 존재에요. (이)광수 형도 저를 잘 챙겨주시고 소중하게 생각해 주시는 형이죠. 지금 함께 촬영 중인 ‘신과 함께’의 하정우 선배에게도 배울 게 참 많아요. 진짜 대선배이신데 대사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게 많죠. 많이 공부하고 있어요.
Q. ‘형’에서 함께한 조정석 씨는 어땠어요?
도경수: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는데, 너무 익숙했어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느낌이 들었죠. 현장에서 많이 닮았다는 말도 들었어요. 둘 다 눈썹도 시커멓고.(웃음) 살아온 느낌이 닮아서 그런 걸까요? 둘 다 집에서 막내거든요. 이번에 ‘긍정이 체질’에서 밝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정석 형 생각을 진짜 많이 했어요. 형을 보면서 느낀 지점들이 연기에 큰 도움이 됐거든요. ‘내가 정석 형에게 영향을 참 많이 받았구나’ 싶었어요.
Q. 형들을 많이 따르는 것 같아요. 상대를 잘 흡수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도경수: 저보다 어른이면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동생들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고 믿고요. 마음이 잘 통하고 신뢰가 가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편이에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노래 듣고 따라 하는 걸 좋아했어요. 비슷해요. 형들이 말하는 걸 귀 담아듣는 거죠. 골라 듣긴 하지만요.(일동웃음)
Q. 다행이네요.(웃음) 골라 듣는 기준이 있어요?
도경수: 그건 본능적인 것 같아요.(웃음) 딱히 확실한 기준은 없어요. 다만 형들도 힘들 때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때는 반대로 제가 듣고 응원을 해 주기도 해요.
Q. 형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반대로 누군가의 형인 도경수는 어때요?
도경수: 동생들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나는 너에겐 어떤 형이니?”(웃음)
Q. 형 앞에서의 도경수와 동생 앞에서의 도경수는 달라요?
도경수: 다른 것 같아요. 제가 형들에게 보고 배운 게 있잖아요? 그걸 동생들에게 고스란히 하는 것 같아요.
Q. 어떤 형의 자아가 동생들 앞에서 많이 나와요?(웃음)
도경수: 전체가 나오는 것 같아요.(웃음) 형들을 합친 모습이.
Q. 형들의 단점이 나오기도 하나요?
도경수: 단점이 진짜 없어요, 형들은!
Q. 에이, 그럴 리가요.(웃음)
도경수: 있기는 한데~!(일동웃음). 정말 좋은 형들이에요. 섬세하게 챙겨주세요. 형들에게 받은 만큼 동생들에게 돌려주려고 해요.
Q. 아마 엑소 팬들이 ‘형’을 보다가 도경수의 노출신에서 비명을 지르지 않을까 싶어요. 아, 쇄골도 있더군요.(일동웃음)
도경수: 으하하하하. 그걸, 언제 또. (웃음) 저는 무대에서 막 벗는 게 싫더라고요.(웃음) ‘형’에서는 목욕탕 장면이 있어서 상체를 탈의하게 됐는데, 노출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안 썼어요. 왜냐하면 그 신이 감정적으로 굉장히 중요했거든요. 형과 마음을 털어놓는 첫 계기가 되는 장면이어서 감정에 더 신경 쓰느라 노출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은 안했어요. 다만 유도선수 역할이기 때문에 당시엔 운동을 열심히 했죠. 목욕탕 신 찍을 당시엔 복근도 있었어요. 지금은 ‘똥배’가 됐지만.(웃음)
Q. 같은 소속사 최민호가 찍은 영화 ‘두 남자’가 일주일 간격을 두고 개봉해요. ‘두 남자’에서 최민호는 절도를 일삼는 가출팸 리더를 연기했어요. 민호의 기존 이미지를 깬 작품이라는 평들이 나아고 있는데, 도경수도 본인의 이미지를 깨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도경수: 그건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해 주시느냐에 달린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담배 담배피우는 캐릭터를 연기해도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요. 저에 대한 믿음ㆍ자존감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음…(잠시 생각하다가 불쑥) 어색하게 보일까요? 제가 그런 캐릭터를 맡으면 변신으로 볼까요?
Q. 단순히 아이돌이 음주와 흡연 장면을 찍는다고 해서 변신으로 본다는 생각은 안 해요. 그리고 아이돌은 그러지 말란 법 있나요? 어떤 아이돌은 평소에 정말 잘 놀 것 같거든요.(웃음) 다만, 도경수는 뭐랄까. 엑소 내에서도 모범적인 이미지가 강한 게 사실이에요. 그런 면에서 변신으로 보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본인을 믿고 있으니 어색하지 않게 잘 할 것 같아요.
도경수: 그렇다면, 열심히 한 번!(웃음) ‘형’ 찍으면서도 두식 캐릭터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두문자 쓰고, 음주와 흡연도 하는 캐릭터! 어떤 특정 이미지에 저를 가두고 싶지 않아요. 다양하게 연기해 보고 싶어요.
Q. 어떻게 보면 ‘긍정이 체질’에서의 환동(도경수)도 팬들 입장에서는 나름의 변신으로 보일 것 같아요. 극중 아빠에게 막 애교도 떨고 그러잖아요.
도경수: 그 장면은 힘들기는 했지만 진짜 재밌었어요. 평소에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어떤 모습들, 내면에 지니고 있었지만 표현하지 않았던 면들을 ‘긍정이 체질’에서 다 내려놓고 꺼낸 게 아닌가 싶어요. 어두운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 오다가, ‘긍정이 체질’을 만났는데 연기하면서 너무 행복한 거예요. ‘밝은 에너지라는 게 이런 거구나’ 새삼 까달았죠. 이번 경험을 통해 밝은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Q. 두영은 고난을 겪으면서 식음을 전폐하는 등 약한 모습을 보여요. 물론 극복하기는 하지만요. 도경수는 고난 앞에서 어떤 편인가요? 오히려 강해지는 사람도 있는데요.
도경수: 저는 강해지는 쪽인 것 같아요.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어떤 어려움이 와도 극복을 하면 그만큼 강해진다고요.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다고, 그 두 가지가 상호보완하면서 쌓여간다고 믿어요.
Q. 와, ‘긍정이 제질’ 이네요.
도경수: (웃음) 긍정적이려고 항상 노력해요.
Q. 뭐랄까. ‘순정’으로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여유로워진 인상이에요.
도경수: 그때는 진짜… 진짜 긴장 많이 했습니다.(웃음) 아직도 기자간담회나 언론시사회에 가면 긴장을 많이 해요.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하얘지죠. 준비해 간 말도 제대로 못해요. 극복해야하는데…
Q. 처음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에서는 경력이 많은 선배 연기자들도 모두 긴장해요.
도경수: 진짜요? 저를 제외하고는 다들 긴장을 안 하는 것 같던데~ 말도 너무 잘 하시고.
Q. 그건 연륜?(웃음) 그런데, 그 많은 관중 앞에서 춤도 추는데, 기자간담회 자리가 그렇게 떨려요?
도경수: 그건 다른 것 같아요. 노래하고 춤추는 무대는 제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게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짜여 진 극본이잖아요? 그건 흡사 연기와 같아요. 연기할 때도 떨리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작보고회나 쇼케이스 자리에서 저는 말을 말 안 해요. 최대한 가만히 있죠.(웃음)
Q. 엑소 디오로서의 활동과 연기자 도경수로서의 활동은 어때요?
도경수: 마음가짐은 같은 것 같아요. 항상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죠. 느끼는 건 다른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제가 가지고는 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나와요. 저는 평소, 소리 지르거나 윽박지르거나 슬프게 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연기라는 간접경험을 통해 저도 몰랐던 저의 모습을 발견하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순간들이 너무 행복해요. 무대에서 춤출 때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죠.
Q. 지금 삶의 만족 게이지가 높아 보여요.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도경수: 저는 진심입니다! 있었다면 티가 났을 거예요. 지금 굉장히 행복해요.
Q. 행복의 근원은 뭔가요?
도경수: 요즘, 개인적으로는 힘든 일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가까이 계신 분들이 다 행복하니까요. 그래서 저도 힘이 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