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5분이면 충분했다. 배우 조인성에 대해 규정해 놓고 있었던 어떤 장막이 완전히 걷히는 데에는. 하늘거리는 봄의 기운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조인성은 강렬한 에너지를 품은 여름에 가까웠다. 어투엔 시종 힘이 넘쳤고, 확고했으며,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자리를 쥐락펴락하는 입담도 상당했다. 그것은 일찍이 거대 쇼비지니스 세계에 들어온 탓에 여러 관계를 맺으며 무의식적으로 터득한 ‘자생력’은 아닌 듯 했다. 아마도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지나온 이가, 그리고 그 선택들이 지니는 의미를 간파한 자가 얻게 된 삶에 대한 유연한 태도 같았다.‘더 킹’은 선택에 관한 영화다. 조인성이 연기한 박태수라는 인물은 권력을 선택함으로서, 권력에 끌려간다. 그런 태수가 선택의 키를 비틀어 주도권을 쥐려할 때부터, ‘더 킹’은 완전히 변모한다. 영화에 진짜 희망이 깃드는 것도 바로 이 순간. 그래서 ‘더 킹’은 영화가 끝난 후 더 흥미로워진다. 태수의 선택이 가져 올 파장을 상상하게 되니까.
태수가 그랬듯, 조인성 역시 많은 선택지들을 통과해 왔다. 그 모든 선택들이 찬란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들을 지나오며 단단하고 옹골차진 조인성의 지금이 있다. 그의 다음 선택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Q. 계획대로였다면 제대 후 첫 행보는 스크린이어야 했습니다.
조인성: 네. 영화 ‘권법’이 될 뻔 했죠.
Q. ‘더 킹’ 박태수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듯이, 당신 인생도 의도와는 다른 길로 흐른 셈이네요.
조인성: 맞아요. 그런데 내가 원하는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상대가 원하는 걸 다 해 줄 수도 없고요.
Q. 확고한 말투에서 뭔가 큰 깨달음이 느껴지는군요.
조인성: 그렇더라고요, 실상이! 모든 게 계획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죠.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면 그건 독재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Q. 독재까지는 아니지만, ‘더 킹’의 인물들은 권력을 통해 원하는 걸 얻으려 하죠.
조인성: 하하. 그렇네요. 시사회 날 영화를 보는데 많이 떨렸어요. 내가 민폐가 되면 어쩌나 싶었죠. 영화가 거의 박태수고, 박태수가 곧 이 영화니까요. (화면에)너무 많이 나오는 거 아닌가, 그만 좀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내내 했던 것 같아요.
Q. 지금의 분량을 예상 못했던 건가요?
조인성: 예상은 했는데, 그게 시나리오로 볼 때와는 또 다르더라고요.
Q. ‘쌍화점’ 이후 9년 만에 만나는 스크린이니, ‘사이즈에 대한 압박’도 있었을 겁니다.
조인성: 확실히 있었죠. 숨어 있다가 신비롭게 조금씩 나오는 작품도 있는데, 이건 너무 대놓고 ‘저 주인공입니다!’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크게 혼나거나, 고생했다고 칭찬을 받거나 둘 중 하나겠다 싶었죠. 그런 생각도 있었어요. 요즘은 멀티캐스팅 작품이 많고, 딱딱 각자의 몫을 하고 쫙 빠지면 되는 세상이 됐잖아요?
Q. 굉장히 옛날 사람처럼 이야기하시네요?
조인성: 저, 옛날 사람 맞아요.(웃음) 제가 ‘비열한 거리’를 100회, ‘쌍화점’을 120회 촬영했어요. 그런데 이번 ‘더 킹’도 104회. ‘나는 왜 영화를 찍을 때마다 100회가 넘는 작품을 선택하지?’ ‘나는 왜 또 이런 게 끌리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Q. 이유, 찾았나요?
조인성: 네. 영화를 한다면 드라마에서 다루지 못한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서인 것 같아요. 영화가 제시형태라면 드라마는 공감형태라고도 볼 수 있어요. 이왕 영화를 한다면 새로운 뭔가를 제시해 주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거죠. ‘더 킹’이 그런 작품이었기에 끌린 거고요.
Q. 아주 오래 전에 “정우성이 출연하는 ‘아스팔트의 사나이’를 보고 정우성처럼 멋지게 TV에 나오고 싶어서 배우를 하고 싶었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영화에서 고시생 태수는 TV뉴스에 나오는 검사 한강식(정우성)의 활약을 보며 한강식처럼 힘 있는 검사가 돼서 TV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죠.
조인성: 그래서 저는 이 영화에 감정이입이 굉장히 빨리 됐어요. 실제로 우성 형을 동경했기에 그 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오면 제 캐릭터가 완성됐으니까요. 시작부터, 딱 정리가 된 거죠.
Q. ‘더 킹’은 태수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쭉 진행됩니다.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통해 오수(조인성)의 내레이션을 먼저 들어서 일까요? 이물감 없이 익숙하게 다가오더군요.
조인성: 휴. 천만 다행이네요.
Q. 동시에 뭐랄까. 딕션이 이전보다 또렷해지고 차분해진 느낌을 받았어요. 그 이유를 찾아보니, 역시 노희경 작가가 있더군요. 노희경 작가와 여러 작품을 하면서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짐작해 봤습니다.
조인성: 정확하게 보셨어요. 우리는 회의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노 작가님과 삥 둘러앉아서 한 씬 한 씬 치열하게 토론했죠. 선생님은 젊은 배우들이 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우린 서로가 창피할까봐 자기의 단점을 숨기는데, 단점을 이야기하는 순간 가장 편해진다고 하셨죠. 선생님도 타인의 의견을 흡수하는데 주저하지 않으세요. “선생님. 그런데 이건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가 안 돼?” “네. 여기부터 여기까지는 감정 선이 잘 안 잡힙니다” “아, 그래? 그건 내 문제!” 하시고는 다시 글을 쓰시곤 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굉장히 많은 걸 배웠어요. 무엇보다 힘 빼는 걸 배웠죠. 선생님 대사가 주옥같잖아요? 대사를 보면 욕심이 나요. 그걸 다 살리고 싶어서 힘을 주면 선생님이 또 그러세요. “인성아, 이건 이거는 다 버려. 난 이 한마디를 하려고 쓴 거야. 다른 건 안 들려도 상관없어”라고. 제겐 자연스러움을 찾아가는 재미있는 과정들이었어요.
Q. ‘더 킹’을 보면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조인성: 우리는 풍자를 하려고 한 건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관객들이 ‘합리적인 의구심’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됐어요. 웃자고 만든 이야기에 실제 의구심이 들어서니까, 웃을 수만은 없게 된 거죠. 화제가 됐던 굿 장면도 그래요. 저희는 촬영 때 “이거 너무 웃겨!” 하면서 찍었거든요. 가장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할 인물들(검사)이 개인의 사리사욕으로 샤머니즘을 만난다? 설정이 웃기잖아요. 게다가 조인성과 정우성이 굿을 하는 모습이라니. 관객들이 많이 즐거워 할 거란 생각으로 촬영했는데, 결과적으로 다른 뉘앙스의 그림이 됐어요. 시국 때문에 웃음의 한 포인트를 놓치고 가는 느낌이 없지 않아요.
Q. 반대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또 다른 의미에서 흥미로웠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조인성: 대포 카메라!(웃음)
Q. 네. 팔짱은 끼고 ‘황제조사’를 받는 단 한 컷의 사진. 검사의 권력을 의미심장하게 보여주는 그림이었죠.
조인성: 안 그래도, 우리 영화에도 우성 형과 (배)성우 형이 밀크 커피를 들고 창밖을 바라보며 ‘씨익’ 웃는 장면이 있잖아요? 우린 좋다고 찍었는데, 비슷한 게 나와서…(웃음) 안타까운 게 있습니다.
Q. ‘더 킹’이 제작과정에서 검찰 측의 감시를 당했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조인성: 그건 잘 모르는 일이에요. 저는 받은 적이 없는데 만약 ‘더 킹’ 이후 감시를 받게 된다면, 관객들이 지켜주시지 않을까요?
Q. 정치에만 권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에도, 사람 사이에도 권력은 존재하죠. 연예계 역시 권력의 힘이 크게 닿는 곳이고요. 이러한 권력을 어떻게 대응하며 달려오신 것 같습니까.
조인성: 제가 가진 힘이 있다면 그건 아마 대중의 사랑일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대중을 움직인다는 게 뭘까’에 대해. 스타? 물론 힘이 있죠. 단 조건이 있어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냈을 경우 우리의 가치를 내세울 수 있는 거지, 작품 퀄리티가 별로인데 내가 출연한다고 해서 대중이 움직여 줄까요? 그런 생각을 한다면 교만이죠. 그게 맞다면, 한 번 스타는 영원히 스타여야 하고요.
Q. 공감합니다.
조인성: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배우를 왜 하지?’ 라는 질문까지 가더라고요. 주목받고 싶어서, 사랑받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도 분명 있겠죠. 그런데 어느 순간 알았어요. 그냥 연기를 하고 싶은 거였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더 킹’을 보고 처음 든 느낌도 이거에요. “아, 살았다! 다음 작품을 또 할 수 있겠다!”
Q. 영화에서 한강식이 그러죠. “사람은 라인을 잘 타야한다”고. 사회생활을 하는 입장에서 묘하게 설득되는 말이었죠.
조인성: 기자님은 어떤 라인을 타셨나요?(일동웃음) 이거냐, 저거냐! 우린 선택 앞에서 고민을 하지만, 어느 쪽이든 단점은 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단점이 덜 보이는 쪽을 선택하는 것일 뿐인 거죠. 선택에 대해 스스로를 믿고 모험을 하는 것일 뿐이고요
Q. 그런 선택을 해 오셨나요?
조인성: 그랬던 것 같아요. ‘더 킹’이 그런 경우죠. ‘굉장히 재미있겠지만 못하면 욕은 두 배로 먹을 수 있다! 그래도 해보자!’였거든요. 안전하게 가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그에 따르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겁니다.
Q. 다시 한 번 영화 속 대사를 호출하게 되네요. “하리 리스크 하이 리턴!”
조인성: 맞아요.(웃음)
Q. ‘더 킹’은 일견 선택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연기하면서 태수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부분은 없었나요.
조인성: 음…가치관. 제게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것 같잖아요? 사실 가치관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발목 잡히지 않아요. 그리고 조금 더 자유롭고요. ‘나는 이래야 해! 이러고 싶어!’ 하는 취향을 많이 줄였어요. 그러다보니 시비가 많이 안 생기더라고요. 취향이 심하면 사람에 대한 호불호도 갈릴 텐데, 그것도 없고요.
Q. 말씀에 의하면 후천적 노력에 의함인데, ‘내 취향’을 줄이는 게 좀 슬퍼 보이기도 하거든요. 괜찮은가요?
조인성: 괜찮아요.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아요. 활동을 하다보면 ‘내 취향’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보니 괴롭더라고요. 뭔가가 막 부딪히기도 하고, 내 안에 싸움도 일고. 그래서 버리기 시작했죠.
Q. 자칫 물렁물렁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요.
조인성: 그럴 수 있죠. 그래서 확실하게 아닌 것,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는 또 이야기를 합니다. 반면 싫은 일을 용감하게 해내는 법도 배웠죠. 싫어도 해야 할 때가 있잖아요? 그땐 기꺼이 해요.
Q. 싫은데 해야 하는 건, 예를 들어 어떤 거죠?
조인성: 가령 영화를 처음 공개하는 시사회.(웃음) 참 가기 싫어요. 제 연기를 보는 게 두렵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그런 자리는 기꺼이 가야죠. 다행인 건, 취향을 줄이면서 터득한 게 있다는 거예요. 저와 다르게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난 좋은데 왜 넌 싫어’하면 본인만 힘들어져요. 그냥 인정하는 거죠. 모든 관객의 마음에 드는 영화는 있을 수 없잖아요? 취향을 버리면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아요.
Q. 태수를 통해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대한민국 30년 현대사를 투사했습니다. 어려운 지점은 없었나요?
조인성: 태수가 어린 시절 교련복을 입고 나왔을 때 빼고는 모두 제가 지나온 시대에요. 88올림픽, 호돌이, 만국기를 보며 컸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제가 현대인걸요.(일동웃음)
Q. 9년 만에 돌아 온 영화 현장은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던가요?
조인성: 가장 크게 달라진 건, 표준근로제계약서. 덕분에 현장이 합리적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촬영 시간도 정확하게 엄수하고요. 이전에는 스태프들을 대변하기 위해 배우가 나서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권리를 스태프들이 먼저 찾는 모습이었어요.
Q. 안 그래도 이전에는 스태프들이 주연배우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었어요. 주연 배우가 스태프를 대변해주지 않으면 현장에서 정말 힘드니까요. 과거, 나서서 스태프들을 도와주는 편이었나 봐요.
조인성: 그랬죠. 태현이 형, 우성 형 등에게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제가 ‘옛날 사람’이어서 좋은 게 있어요.(웃음) 요즘은 개인주의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는 단합을 좋아합니다. 뭐 하나를 먹어도 스태프들과 같이 먹고, 촬영이 없을 때도 현장에 나와서 또 맛있는 걸 사서 함께 나누죠. 이런 건 스태프들 입장에서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웃음)”
Q. ‘터 킹’에 5살 동생인 류준열과 고향 친구로 등장합니다. 류준열 씨가 “인성이 형이 편하게 대해줘서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요.
조인성: 제게도 선배들과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어릴 때, 현장에서 늘 얼어 있었거든요. 생각해보세요. 전도연 선배(‘별을 쏘다’), (고)현정이 누나(‘봄날’), ‘피아노’에서는 조재현 선배와 만났어요. 처음엔 얼마나 어려웠었겠어요. 그런데 그 분들이 따뜻하게 해 주셨어요. 덕분에 편안함을 느꼈고 비로소 연기할 수 있었죠.
Q. 인터뷰 중 농담으로 ‘옛날 사람’이라고 하셨는데요…
조인성: 어! 저, ‘짤’(온라인 신조어) 이런 건 알아요!(일동웃음)
Q. 위에 든든한 선배들이 아직 활동 중이고, 능력 있는 후배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그래서 당신이 역할이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또래 배우인 강동원, 공유 등과 함께 말이죠. 그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
조인성: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저랑 우성이 형이 8살 차이가 나요. 저랑 우빈이랑 8살 차이가 나고요. 제가 우성이 형을 자연스럽게 본 건, 태현이 형이 계셨기 때문이에요. 중간다리가 있었던 거죠. 그런 면에서 저 역시 중간다리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또 이어지거든요. 어쩌면 5년 후엔 시상식이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어 질 수 있어요. 지금은 서로가 모르니까 엄숙하고 자기 검열을 하는데, 친목이 넓게 두터워지면 그런 자리에 흥이 넘칠 것 같아요.
Q. 당신에게도 어려운 선배가 있나요?
조인성: 있죠! 차태현, 고현정!
Q. 엇! 차태현 씨요?
조인성: 태현이 형, 카리스마 있어요. 화면에서 보여 지는 이미지는 마냥 사랑스럽지만, 실제로는 되게 카리스마 있어요. 그건 말로 설명이 안 돼요.
Q. 고현정 씨는요?
조인성: 아시잖아요?(일동웃음) 굳이 제가 설명을 안 해도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사실 오늘 좀 놀랐어요.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조인성에 대한 기존 인상이 완전 바꾸었거든요.
조인성: 아, 정말요? 이상한 쪽으로 바뀌었나요?
Q. 아니요.(웃음)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뭐랄까. 수줍음도 있고 낯도 가릴 줄 알았는데, 그와는 반대로 거침없고 솔직하고 유머까지 있어서요. 원래 그랬나요, 변한 건가요?
조인성:이전엔 나를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저도 제가 조용한 줄 알았거든요. 그러다가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때의 제 진짜 모습을 봤어요. 굉장히 밝은 사람이더라고요. 나이가 주는 어드밴티지도 분명 있어요. 조금 더 용기를 내게 됐죠. 그러면서 자기 방어 기제를 하나 정도 연 게 아닌가 싶고요.
Q. ‘쌍화점’ 때에는 달랐나요?
조인성: 네. 그때는 무서운 게 많았거든요. ‘쌍화점’ 때가 스물여덟이었어요. ‘비열한 거리’로 스크린에 입성해서 사랑을 받았고, 영화배우라는 자리를 잃고 싶지 않은 불안감에 놓여 있었죠. 이젠 아니에요. 이젠 절 무엇으로 부르든 상관없어요. ‘탤런트 조인성’, ‘영화배우 조인성’, 상관없어요. 같은 맥락에서 보면 결국 다 연기하는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