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김예슬 기자]
‘학교 2013’부터 ‘푸른 바다의 전설’까지, 약 5년의 시간동안 이지훈이 출연한 작품은 영화 3편, 드라마 9편이다. 연기에 매력을 느껴 ‘직진’ 행보로 값진 데뷔를 일궈낸 그는 배우로 발돋움을 시작함과 동시에 장편드라마 ‘최고다 이순신’과 ‘황금무지개’, ‘육룡이 나르샤’ 등은 물론 ‘블러드’, ‘마녀보감’,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 ‘전설의 셔틀’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왔다.
그러면서 이지훈은 다양한 경험을 얻게 됐다. 코미디, 사극, 학원물 등 한 장르에 편중되지 않으며 차츰차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갔다. 다소 지질한 캐릭터도 서슴지 않았다.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는 지질함의 끝을 보이는 구남친 캐릭터를 맡았고, ‘전설의 셔틀’에서는 비밀을 간직한 ‘짱’을 연기했다.
다양한 캐릭터를 맡았던 그는 매 배역마다 자신만의 매력을 듬뿍 담았다. 장르 편중, 캐릭터 편식 없이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혀가던 그는 ‘푸른 바다의 전설’을 만나 입체적인 악역 캐릭터로 또 한 번의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직진’해나가는 이지훈은, 더할 나위 없이 성공적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Q. ‘푸른 바다의 전설’ 종영한지도 꽤 시간이 지났어요. 잘 지내고 있었나요?
이지훈: 요즘은 인터뷰 하며 지내고 있어요. ‘푸른 바다의 전설’은 제가 진심으로 행복하게 촬영한 작품이어서, 이제 그때의 분들과 똑같이 모여서 촬영할 수 없게 돼 허전하고 서운해요. 그러면서도 얼른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찾아서 좋은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고요.
Q. 데뷔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드라마로서는 9번째 작품을 마친 셈이에요.
이지훈: 맞아요. 드라마를 정말 쉬지 않고 한 것 같아요. 하지만 마음은 계속 똑같아요. 드라마도 하고 싶고, 영화도 하고 싶고, 연극도 하고 싶어요.
Q. 연극은 라이브로 진행돼서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
이지훈: 해보지 않아서 제게 신선하게 느껴지는 영역이에요. 사실 그런 마음도 있어요. 물 들어왔을 때 바짝 노를 저어서(웃음), 그 물을 어느 정도 저장해두면 연극도 해보면서 새로운 곳에서 수영도 하고 싶고요.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연기를 많이 경험하고 싶어요.
Q. 지난해에는 ‘육룡이 나르샤’ 마무리와 동시에 참 많은 물이 들어온 셈이에요(웃음). ‘푸른 바다의 전설’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이지훈: ‘마녀보감’을 찍고 있을 때 회사를 통해서 작품 미팅 제안을 받았어요. 저는 박지은 작가님 작품을 꼭 하고 싶었는데, ‘마녀보감’ 촬영 날짜와 미팅 날짜가 겹쳤죠.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해야 하니까 그냥 ‘이건 내 일이 아닌가보다’하고 어쩔 수 없이 포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드라마 끝날 때쯤 감독님이 절 보고 싶다고 따로 연락을 주셔서 미팅을 갖게 됐죠. 그래서 제가 정말 하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어요. 그 자리에서 대본 받은 걸 연기도 해보고, 박지은 작가님께 영상편지도 썼어요.
Q. 영상편지 내용이 궁금해지는데요?
이지훈: “이 역할, 너무 매력적이어서 제가 꼭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하면 확실히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강하게 어필했어요.
Q. 감독님이 다시 연락을 주신 이유는…
이지훈: ‘마녀보감’에서 제가 선조 역할을 맡았었어요. 그런데 ‘마녀보감’의 촬영감독님이 ‘푸른 바다의 전설’ 촬영감독님이셨거든요. 진혁 감독님이 촬영감독님 촬영 스타일을 보고 싶어서 ‘마녀보감’을 트셨는데, 운 좋게도 틀자마자 제가 나온 거죠. 선조가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었거든요. 감독님이 보시고 박지은 작가님께 전화해서 “‘마녀보감’에서 선조 연기하는 친구가 있는데 봐보세요”라고 했는데, 작가님도 그걸 보셨어서 잘 됐다고, 절 만나보라고 권해주셨대요. 운이 잘 닿은 셈이죠.
Q. ‘푸른 바다의 전설’ 속 허치현 캐릭터는 착해보였다가 의뭉스럽고, 그러다가 악역이 됐어요. 쉽지만은 않은 연기였을 것 같아요. 준비한 부분이 따로 있었나요?
이지훈: 시놉시스에 작가님이 친절하게 다 설명을 달아주셨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저만의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니까 허치현의 일기마냥 글을 써봤어요. 그 중에 필요한 부분은 취하고, 아닌 부분은 걸러내고 그랬죠. 초반에 연기할 수 있는 소스들도 찾아봤어요.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느낌도 보고, 외형적으로는 의상이나 헤어도 체크하고 살도 좀 찌워야겠다고 생각했고요.
Q. 이 캐릭터가 이렇게 변화를 겪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
이지훈: 작가님이 “중간지점에 사연도 생기고 변화가 있을 거니까, 연기할 때 너무 닫아놓지 말고 다양한 부분을 열어놓고 연기하면 좋겠어요”라고 미리 언질을 주셨어요. 그래서 사실 조금 혼란스러웠죠. 당시에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1달 정도 있었는데, 고민도 해보고 촬영장 가기 전에 연기를 좀 해보고 나서 이런 식으로 풀어가도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어요.
Q. 회를 거듭할수록 캐릭터가 네거티브해지고, 결국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요. 감정선을 따라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이지훈: 연기함에 있어 힘들지는 않았어요. 허치현의 악행이나 그의 감정선이 변화하는 부분들이 제가 보기엔 명확했거든요. 이유 없이 심적 변화를 보인 게 아니라 분명한 이유가 있어서 변화를 겪은 거니까요. 그래서 연기할 때 힘든 건 없었어요. 다만, 날씨가 굉장히 추워서 내복을 아무리 껴입어도 평창동의 날카로운 바람이 차갑게 파고들었죠(웃음). 제가 더위는 잘 안 타는데 추위를 정말 많이 타거든요.
Q. 사실 많은 시청자들이 심청(전지현 분)과의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결국은 아무 로맨스도 없었어요. 그 부분이 아쉽진 않았나요?
이지훈: 아쉬웠죠. 다른 분들이 강동원·공유 선배님 좋아하듯 저는 어릴 적부터 전지현 누나를 좋아했거든요. 처음 부딪혔던 장면이 에필로그로 나왔었는데, 그때 반응이 꽤 좋았어요. 케미스트리가 붙는다는 말이 많아서 저도 로맨스가 되는 줄 알았거든요. 스스로도 좋게 생각돼서 작가님께 여쭤봤는데, ‘가능성을 90% 열어놓고 있다’는 답을 얻었어요.
Q. 90%라니, 정말 낙관적이었네요.
이지훈: 그래서 부모님, 친구들, 회사 등 많은 분들께 전지현 누나와 로맨스를 할 수도 있다고 자랑을 했어요. 하지만 나중엔 로맨스가 없어지더니, 제가 총으로 전지현 누나의 등판을 쏘더라고요(웃음).
Q. 전지현 씨에게 누나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데, 극에서 가장 많이 붙어있던 황신혜 씨와의 호흡은 어땠어요?
이지훈: 어휴, 황신혜 누나도 정말 사랑하죠.
Q. 황신혜 씨도 ‘누나’였군요(웃음).
이지훈: 엄마 역할로 나오시기도 하고, 가까이서 연기하는 만큼 제가 누나라고 부르면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가 냅다 누나라고 불렀어요. 처음엔 얼굴도 빨개지시고 많이 당황하셨는데, 제가 계속 그렇게 부르니 적응하셔서 나중엔 친구처럼 장난도 치고 그랬어요. 황신혜 누나가 개그 욕심도 있으셔서 정말 재밌었어요.
Q. 진혁 감독이 따로 연기 방향을 제시한 부분은 없었나요?
이지훈: 대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감독님과 어떻게 흘러가게 할지를 함께 고민했어요. 그러다가 대본이 나오면 제가 판단하고 생각한 부분을 적어놓고, 현장에 일찍 가서 감독님께 여쭤봤죠. 만나 뵙기 어려울 땐 문자로 여쭤봤는데, 새벽 4~5시가 되어서도 답을 보내주시고 그랬어요.
Q. 많은 배려를 받았네요.
이지훈: 정말 좋은 감독님이세요. 연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굉장히 좋으시거든요. 단역배우가 대사 NG를 내도 화를 전혀 안 내셔서 그런 모습에 정말 감동 받았어요. 다 이해해주시고, 배우들과 함께 고민해주시고 그랬거든요. 이래서 작가님들이 진혁 감독님과 함께 작품을 하고 싶어 하는구나 했어요.
Q. 여러모로 이번 작품은 전환점이 됐을 것 같아요.
이지훈: 맞아요. 제 터닝 포인트가 됐죠. 촬영장 분위기 자체가 정말 좋아서 즐겁고 재밌게 촬영했어요.
Q. 현장에서 가장 활력을 불어넣어준 배우는 누구였어요?
이지훈: 저요!(웃음) 제가 많이 웃기도 하고 장난도 많이 쳐서 이민호 형과 전지현 누나가 저보고 ‘인간 비타민’같다고 그랬어요. 제 성격이 그런 편이기도 하지만, 제 스스로가 좀 더 편해지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어려운 질문 해볼게요.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본인 연기에 점수를 매긴다면?
이지훈: 음… 5점 만점에 4점이요. 제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조금 다른 의미인데요, 사실 ‘푸른 바다의 전설’ 하면서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육룡이 나르샤’·‘마녀보감’처럼 사극만 하다가 오랜만에 현대극을 한 거였거든요. 스스로 느끼는 부분도 달랐고, 그래서 더 ‘파이팅’ 넘치게 하고 싶었어요. 책임감 갖고 준비도 많이 하고 고생도 했으니, 수고했다는 의미로 4점 주고 싶어요.
Q. 연기를 시작하게 된 최초의 계기가 뭐예요? 지금 보면 연기가 정말 천직처럼 보이는데.
이지훈: 군대가 모든 것의 시작이에요. 군대에서 뮤지컬 배우 민영기님의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뮤지컬을 봤는데, 거기서 그냥 뭔지 모를 것에 뒤집어 씌워진 기분을 받았어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죠. 그렇게 시작된 것 같아요. 저는, 뭔가에 꽂히면 그것만 보고 돌진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진’한 건 정말 잘한 것 같아요.
Q. 어떤 식으로 ‘직진’했어요?
이지훈: 다짜고짜 군대에서 연극영화과 시험을 준비했어요. 시험에 단 한 곳이라도 합격하면 가능성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합격을 했죠. 전역하고 무작정 부모님께 연기를 한다고 했더니 정말 많이 반대하셨어요. 쫓겨나기까지 해서 친구 집에서 얹혀살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프로필 사진도 찍고 미팅 다닐 때 입을 깔끔한 옷도 사고요. 아르바이트 하는 중간마다 기획사·영화사 주소를 뽑아서, 무작정 가서 비타민 음료와 함께 인사를 드렸어요.
Q. 그 자체로 드라마 같네요. 그래서 연락을 받은 곳이 있었나요?
이지훈: 아뇨. 세상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마음먹은 대로 안 되는 게 세상이었어요. 그렇게 2년 정도를 했는데 피드백이 없어서 고민하게 됐는데, 그러던 찰나에 ‘학교 2013’ 감독님께 연락을 받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제게 그동안은 눈을 돌리지도 않던 회사들에게도 연락을 받기 시작했죠. 더없이 연기하다보니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아요. 이젠, 연기를 재밌게 하기 보다는 책임감을 갖고 집중해야겠다는 마인드를 갖게 됐죠.
Q. 그동안 다양한 장르를 했어요. 원래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는 뭐예요?
이지훈: 느와르를 좋아해요. ‘대부’, ‘도니 브래스코’같은 마피아와 관련된 영화도 좋아하고요. 로맨틱 코미디도 좋고 느와르에도 큰 관심이 있어요. 공교롭게도 두 장르 다 안 해본 장르인데, 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은 욕심이 커서요. 저는 코미디도 잘 하거든요(웃음).
Q. 그렇다면 특히 해보고 싶은 장르는…
이지훈: ‘육룡이 나르샤’로 사극 처음 해보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많은 걸 배웠고, 학원물도 경험해봤으니 이제는 로코나 느와르처럼 안 해본 것들을 하고 싶어요.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도 김영광과 유리는 ‘로코’였지만 저는 ‘멜로’였잖아요. 울고, 스토커마냥 기다리면서 ‘널 위한 거였다’고 애원하고…. 혼자 절절했죠.
Q. 그러고 보니, ‘학교 2013’ 때 함께 했던 배우들의 활약이 도드라지고 있어요. 신혜선 씨와는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재회하게 됐고.
이지훈: 맞아요! 그래서 너무 뜻 깊고 뭉클했어요. 서로 어려울 때 첫 작품을 함께 했다가 이런 큰 작품에서 매력 있는 여자와 남자 역할로 만나니 정말 좋더라고요.
Q. ‘푸른 바다의 전설’로 이번해의 스타트를 잘 끊었어요. 새해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이지훈: 일단, 열심히 해서 유럽 배낭여행을 갈 수 있는 여유를 잠깐이라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품도 쉬지 않고, 불러주시면 불러주시는 대로 제가 가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 할게요.
Q. 남다른 각오가 느껴지네요.
이지훈: 책임감이 점점 더 많이 생기고 있어요. 더 좋게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니 그걸 실망시킬까봐 무섭거든요. 더 좋은 작품으로,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또 그런 연기로서 인사드리고 싶어요. 잘 돼서 인터뷰도 더 하고 싶고요.
Q. 쏟아지는 인터뷰, 힘들지 않겠어요?(웃음)
이지훈: 전혀요. 저는 제 일이 너무 좋고 재밌어요. 올해는 제가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알려지고, 더욱 발돋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업그레이드하면서 제 내공을 잘 쌓아두고, 내년엔 주연도 하고 그래야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