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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하늘 “나는 나를, 그리고 한 개인의 힘을 믿는다”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과거는 다 거짓말이고, 미래는 다 환상일 뿐이다’라는 책의 문구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강하늘은 그래서 자신의 힘이 닿을 수 있는 ‘지금’에 충실한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애써 염려하지 않고, 돌아가지 못할 과거에 매여 있지 않은 삶. 그러나 그가 ‘재심’에서 연기한 현우는 과거로 인해 미래가 저당 잡혔던 인물이다. 억울하게 살해 누명을 쓰고 10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인물. 다만 현우는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고 드디어 현재를 살아가기 시작했다. “한 개인의 힘을 믿는다”는 강하늘의 말처럼 현우의 진심을 믿는 개인과 개인의 힘이 모인 결과다.

Q. 인터뷰에 오기 전에 당신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봤다. ‘미담자판기’ ‘나 착한 사람 아니에요’ 같은 헤드라인들이 상당하더라. ‘강하늘=착한 남자’라는 시선이 신경 쓰이거나 부담스럽진 않나.
강하늘:
부담되거나 무거운 건 전혀 없다. 다른 인터뷰에서 밝혔듯 나는 착한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인간일 뿐이다. 살아가는데 있어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예의 안에서 즐기려고 하는데 그걸 좋게 봐 주신 것 같다.

Q.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강하늘:
말 그대로다. 내가 원하는 삶을 추구하며 산다. 귀찮으면 집에서 한 발자국 안 나갈 때도 있고, 갑자기 훅 차 몰고 강원도를 갈 때도 있다. 술 진탕 마시고는 친구에게 업혀서 집에 들어갈 때도 있고. 그 와중에도 변하지 않는 건, 주변 사람들이 나와 있는 동안만큼은 찌푸리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Q. ‘재심’이야기를 해 보자. ‘재심’은 원래 누명 쓴 피해자의 억울함을 달래주려 4년 전 시작된 프로젝트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할 무렵 재심 결정이 나고 피해자가 무죄 선고를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새 국면을 맞았다. 시나리오를 언제 받은 건가.
강하늘:
아마 ‘동주’가 개봉하고, 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초중반 정도에 받았을 거다.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영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사건이다. ‘재심’이 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 이거 왠지 내가 하게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나리오를 열어보니 재미있게 쭉 읽혔다.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Q. 피해자가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가 언제인가.
강하늘:
촬영 시작 무렵에 재심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촬영이 끝나고 영화 후반 작업을 하는 동안에 무죄판결이 났고.

Q. 그럼 재심의 결과를 모르고 영화를 촬영한 셈인데, 결과를 알았다면 캐릭터에 다가가는 마음이 달랐을까.
강하늘: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재심’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나는 실화를 그대로 연기하지 않았다. 그럴 생각도 아니었기에 대본에 나와 있는 조현우라는 인물에 최대한 포커스를 맞추려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은 든다. 우리영화가 뭔가 (피해자에게)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생각. 그 부분에서는 기분은 좋다.

Q. 인생의 오랜 기간을 억울함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인물이다. 연기하면서 울컥한 부분도 많았을 것 같다.
강하늘:
울컥한 부분이 분명 있기는 했지만, 그와 별개로 내가 모든 작품에서 모토로 삼는 건 웃고 즐기며 작업하자다. 어두운 캐릭터지만 재미있게 찍었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현장이다.

Q. 타이틀 롤을 맡고 있는 배우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는 중요하다. 어떤 식으로든 현장에 영향을 미치니까.
강하늘:
그런가. 그러니까 그런 거다. ‘내가 이런 마음을 먹어서 현장 분위기를 바꿔야해!’ 하는 생각 자체를 안 하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느껴지니까. 그냥 재미있게 찍으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크다.

Q. ‘쎄시봉’, 예능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를 함께 한 정우가 있어서 조금 더 편한 게 있었겠다.
강하늘:
없지 않았다. 연기 스타일인데, 어떤 배우는 극 중 싫어하는 역할의 상대배우와 일부러 인사도 안 하고 진짜 싫어하는 것처럼 생활하다가 연기에 들어간다. 이것도 굉장히 좋은 연기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사이가 좋지 않은 캐릭터일수록 친해져야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미리 친해지려고 노력하는데, 정우 형과는 워낙 오래 알고 지내서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형에게 도움 받은 게 많다.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Q. ‘동주’에서는 세상에 없는 실존인물을 연기했다. 이번 ‘재심’의 경우 픽션이 가미되긴 했지만 어쨌든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는 인물을 연기했고. 접근에 있어 어떻게 달랐나.
강하늘:
마음가짐의 문제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더 어렵고 무겁다고 느낀 건 윤동주 시인이었다.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은 어차피 세상에 없는 분이고, 그렇기에 표현하기에 더 자유롭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운동주’라는 이름 석 자가 나의 자유를 억압했다. ‘과연 윤동주에게 잘 다가가고 있는 맞을까?’ 고민이 많았다. 내가 이 영화를 통해 어떠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란 의문도 들게 한 작품이었다. 반면 ‘재심’에서의 현우라는 캐릭터는 실존 인물 그 자체를 연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의 자유가 포함돼 있었다.

Q. 현우라는 인물에는 배우의 자유가 포함돼 있다는 말은 동의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좀 다르지 않나 싶다. ‘재심’ 자체가 실화에 포커스를 맞춰서 홍보되고 있기에, 어쩌면 강하늘이 연기한 현우라는 캐릭터를 사람들은 실제의 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강하늘: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내가 실화 작품을 몇 편 하면서 느낀 게 있다. ‘쎄시봉’도 그렇고 ‘동주’도 그렇고 이번 작품도 그렇고, 실존인물이 분명히 계시지만 그 부분에 너무 치우치다보면 함정에 빠지기 싶더라. 함정에 빠지면 내 캐릭터만 생각하게 되고. 영화라는 것이 결국은 앙상블이고, 내 캐릭터는 작품 안에서 존재해야 하는 것인데, 스스로가 캐릭터를 너무 키워 버리면 결국 영화의 영역을 넘어버리고 많다. 그걸 느낀 후부터 최대한 시나리오에 집중하려고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작품 안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게 연기자의 역할이라고 봤다.

Q. 오랜 시간이 흘러 누군가가 강하늘의 인생을 연기한다고 치자. 그 배우가 어떻게 강하늘을 연기해 줬으면 좋을까.
강하늘:
하하하하. 어려운 질문이다. 음... 몰락한 모습을 연기 해 줬으면 좋겠다. 한때 ‘동주’와 ‘재심’을 찍었지만, 지금은 몰락한 강하늘이라는 사람의 일대기. 그런 느낌이면 좋겠다.

Q. 아니!! 몰락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닐 테고!(웃음)
강하늘:
아, 그건 아닌데.(웃음) 그게 영화적으로 더 흥미로운 소재니까. 사실 잘 모르겠다. 10년 후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 거기에 대한 큰 기대도 바람도 없다. 다만,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우면 나는 됐다.

Q. ‘재심’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의 담백한 연기라고 봤다. 뜨거운 영화를 배우들이 잘 눌렀다. 그게 너무 좋았다.
강하늘:
와, 감사하다. (미래에) 몰락하지 않을게요.(일동웃음)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Q. 현우는 착하기만 한 캐릭터는 아니다. 이 부분 역시 색다른 접근이었다고 본다.
강하늘:
대본을 보고 ‘이런 식으로는 그리기 싫다’가 딱 하나 있었다. 너무 착한 인물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억울해 하는 포맷,은 정말 하기 싫었다. 그건 외국 영화에서도 그렇고 너무 많이 봐 온 그림이니까. 현우라는 인물을 조금 불량스럽게 가지고 간 것도 그 이유다. ‘저런 애라면 실수(살인)를 하지 않을까’ 할 법한 그런 느낌을 더했다. 그래서 외양적으로 장발에 브릿지 염색도 넣고, 문신도 추가해서 조금 더 자유분방한 느낌을 줬다.

Q. 머리 염색. 혹시 맥주로 뺀 건가? 뭐랄까. 세련되지 못한 느낌이, 최신 염색법은 아니지 싶었다.
강하늘:
맞다, 맥주로 뺀 머리.(웃음) 염색 방법도 분장팀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2000년대 지방 풍경 이미지를 많이 검색했는데, 그 때 친구들 중에 머리에 브릿지 염색을 넣은 경우가 많더라. 너무 세련되면 시대와 안 맞을 것 같아서 맥주로 뺀 듯한 느낌을 주자고 했다. 런닝이나 바지도 그런 생각을 하며 고른 것들이다.

Q. ‘재심’이라는 단어 안에는 한 번 더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내포돼 있다. 조금 다른 의미로 강하늘에게도 뭔가를 다시 판단 받고 싶은 일이 있을까.
강하늘:
내가 그렇게 억울함을 느끼며 살지는 않아서 딱히… 요즘 그런 생각은 자주 한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혹시 누군가가 나에게 큰 상처를 받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만약 있다면, 그 친구들에게 다시 재평가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앞으로 잘 할게’ 이런 느낌으로.

Q. 왜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할까.
강하늘:
얼마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와 행복과 감동을 주고 있다”길래 “그러냐, 진짜 감사하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테고 나에게 상처받은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러면 내가 뭐가 되는 거지?’라는 생각. 순간 뭔가 위선적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부터 이런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삶의 모토가 ‘행복하게 살자’ 이지만 조심하려고 한다. 나 혼자 행복하다고 해서 다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Q. 당신이 아무리 좋은 의도였더라도, 상대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고.
강하늘:
맞다. 나는 현장에서 즐겁고 싶고 사람들 만나는 게 좋아서 웃는 건데, 어떤 사람은 그걸 굉장히 가식적으로 본다. “쟤는 가식적이야!”라고. 어릴 때도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들었다. 가면! 가식! 심지어 섹스피어 작품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일동웃음)

Q. 이아고까지…(웃음)
강하늘:
어릴 때, 그러니까 20-21살 때까지는 하나하나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이런 소리를 안 듣지 고민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굳이 변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더라. 실제로 나를 오래 알고, 깊게 보는 친구들은 알더라고. 진심이 무엇인가를. 그런 걸 보면서, 내 모습대로 살아가면 누군가는 알아봐 준다는 걸 느꼈다.

Q. 웃음의 양이 많은 사람에 대해 반감을 지니는 사람이 제법 많다. 왜 그럴까. 남의 행복과 나의 불행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걸까.
강하늘:
아,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난 굉장히 길어지는데.(웃음)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다. 나도 그렇고, 모든 사람들의 중심엔 ‘자기’가 있기 때문에 그러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렇게 웃을 일이 없는데 넌 왜 자꾸 웃어!’ 이런 식이 되면 어긋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웃는데 왜 너는 안 좋게 바라 봐?’ 하면 또 어긋나고. 그런 부분을 잘 조율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Q.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나.
강하늘:
그런 상상을 한다. 내가 이 캐릭터를 했을 때, 이 역할을 좋게 봐 주실 분들이 생각하는 모습의 나. 그런 나를 작품 준비하면서 많이 생각한다.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Q. 반대로 나를 안 좋게 볼 사람도 생각하나.
강하늘:
그건 생각까지는 안 한다. 내 연기를 보고, 좋지 않다고 얘기하는 분은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다. 가령 나는 하비에르 바르뎀을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주변에는 그 배우 뭐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니까 이건 너무나 개인적인 편차인 거다. 나를 좋아해 주는 분들을 상상할 시간도 부족한데, 나를 안 좋게 생각할 사람까지 생각하며 연기하기란!(웃음) 아직 그런 그릇은 내가 안 되는 것 같다.

Q. ‘재심’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변호사 준영(정우)이 10년을 복역하고 나온 현우를 어떻게 믿을까. 법에 대한 불신인 쌓일 대로 쌓인 현우가 또 준영의 무엇을 믿고 따를까, 하는 믿음. 당신에게도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있나.
강하늘:
일단 가까운 내 친구들. 그 친구들을 밑도 끝도 없이 믿는다. 배신해도 상관없다 싶을 정도로 믿는다. 그 다음으로 나는 나를 가장 믿는다. 그리고 한 개인의 힘을 되게 믿는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부정적인 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순간 부정적이 되는 것 같아서.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Q. 당신, 과거 지향적인 면은 없나.
강하늘:
내가 좋아하는 책에 그런 문구가 있다. ‘과거는 다 거짓말이고, 미래는 다 환상일 뿐이다’라는 문구가. 과거든 미래든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없다. 내 힘이 닿을 수 있는 곳은 지금 밖에 없기에 지금에 충실하는 게 맞는 것 같다.

Q. 그래서 지금, 강하늘은 행복한가.
강하늘:
그렇다. 행복하다, 지금!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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