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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우의 영감대] 곽부성마저…사대천왕 오빠들을 기억하며

[비즈엔터 정시우 기자]

곽부성의 결혼소식에 중학교 동창 얼굴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곽부성을 좋아해 중국어를 달달 외우고, 홍콩 가는 비행기 표 값을 모으고, 급기야 대학마저 중국어과로 진학한 친구였다. 그 친구를 보며 ‘배우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건 분명 사랑이었다. 그런 곽부성이 결혼했다. 이로써 그 시절 우리들이 사랑했던 그 오빠들, ‘사대천왕’ 모두가 한 여자의 남자가 된 셈이다. 알다시피 ‘사대천왕’은 1990년대 초반부터 10여 년간, 홍콩은 물론 아시아 지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유덕화, 여명, 장학우, 곽부성 등 네 명의 배우를 일컫는 말이다. 이영애와 함께 ‘내 사랑 투유’를 읊조리는 유덕화에 반해 ‘투유’ 초콜릿 마니아가 되고, ‘Try To Remember’ 원가수가 여명이라고 박박 우겨댔으면, 장학우의 노래를 통째로 암기하고, 곽부성의 튼실한 근육에 반해 그의 사진으로 방을 도배했던 그 시절. 그 시절을 잠시 떠올려 보기로 했다.

만인의 연인, 유덕화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오천련)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밤거리를 배회하던 ‘천장지구’(1990년)의 아화, 친구의 연인을 지키기 위해 몰래 피를 쏟아내던 ‘지존무상’(1989년)의 아해를 통해 유덕화는 아시아의 여심을 ‘후끈’ 달궈 놓았다. 전직 이발사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유덕화는 1981년 TV드라마로 데뷔, 영화계와 가요계를 종횡무진하며 홍콩 연예계 최고의 자리를 꿰찼다. 그의 나이 올해로 57세. 동료들이 은막에서 사라진 사이, 유덕화의 아성은 무너질 줄 몰랐다. 홍콩 느와르의 부흥이라고 평가받는 ‘무간도’(2002년)에서 경찰에 잠입한 조직원 유건명으로 분해 아우라를 내뿜었고, 여전히 누아르와 무협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게다가 유덕화는 1999년 설립한 포커스 필름을 통해 홍콩의 영화산업을 짊어진 제작자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 해 국내에서도 예상치 못한 신드롬을 일으켰던 ‘나의 소녀시대’의 제작을 유덕화가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유덕화 마누라가 꿈인 평범한 소녀의 첫사랑을 그린 영화에 유덕화는 카메오 출연도 감행했다. 영화는 아시아 전역 흥행 역사에 새로운 이름을 남기기도 했는데, 유덕화의 전성기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복잡미묘한 매력, 여명

평범한 듯, 외로운 듯, 복잡 미묘한 느낌을 내는 배우가 바로 여명이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풋풋한 청년의 얼굴 ‘첨밀밀’(1996)의 소군과, 평생에 걸친 사랑을 보여 준 ‘유리의 성’(1999년)의 허항생을 통해 여명은 영락없는 옆집 오빠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타락천사’(1995년)에서 담배를 ‘꼬나문’ 냉혹한 킬러나, 냉철한 모습을 보여 준 ‘무간도3’(2003)를 보면, 여명의 얼굴을 단순히 멜로적이라고 한정 짓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알 수 있다. 여명은 사대천왕 중, 한국 사랑이 유독 돋보이는 배우이기도 하다. 국내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에서 주제곡 ‘사랑한 후에’를 한국어로 불렀고, 한국영화 ‘천사몽’(2000년)에 출연해 이나영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여전히 주연 자리를 내려놓지 않고 있는 여명은 최근 송승헌의 그녀, 유역비와 ‘야공작’에 출연하기도 했다.

홍콩이 낳은 가신(歌神), 장학우

사대천왕 가운데 가장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을 꼽으라며 단연 장학우다. ‘가신’이라는 별명대로 장학우는 1984년 홍콩 18구 아마추어 노래자랑을 통해 데뷔했다. 그는 지난 해 도하 아시아 선수권대회 개막식 축하 공연으로 변함없는 노래 실력을 뽐냈다. 이 역시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 장학우의 위치를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장학우가 노래에만 빠져있었던 것은 아니다. 양가위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1998년)에서 장학우가 보여준 연기는 아직도 많은 팬들의 뇌리에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다. 허무함, 우울함의 정서가 깃든 영화에서 장학우가 그리는 불안한 영혼에 많은 팬들이 마음을 빼앗기기도. 장학우는 주연만을 고집하는 배우가 아니다. 작은 역이라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 온 편이다. 사대천왕 중 가장 먼저 가정을 꾸렸는데, 1996년 영화배우 나미미와 비밀 결혼을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최근엔 주윤발 유덕화와 함께 ‘도신’(1989년) 시리즈의 완결편인 ‘도성풍운3’(2016년)에 출연했다.

사대천왕의 후발주자, 곽부성

초기 유덕화, 장학우, 여명 ‘삼검객(三劍客)’이 있던 자리에 후발 주자로 합류하면서, 아시아 뭇 여성들의 마음에 사대천왕을 흐드러지게 피게 한 이가 바로 곽부성이다. 냉방장치 기술공을 하던 곽부성은 댄서로 연예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 ‘천장지구2’ ‘초류향’등의 액션물 주연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고, 1998년 ‘풍운’으로 최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곽부성은 연기력에서는 유덕화만큼 인정받지 못했고, 가창력에서는 장학우에 뒤졌으며, 꽃미남 이미지에 함몰돼 여명만큼 획기적으로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아이돌 스타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배우로 인정받은 것은 2006년 금마장 영화제에서 ‘아버지와 아들’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스타가 아닌 배우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곽부성의 연기 인생에 한 획을 그어지는 순간. 연기에 대한 그의 갈망은 지금도 뜨겁다. 지난 2013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사회자로 한국을 찾기도 했다. 사대천왕 중 마지막 싱글이었던 곽부성의 앞날을 축복하며.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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