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응. 아빠 지금 인터뷰 중인데. (학교 끝났어요.) 음… 그럼 집에 가 있으면 되지 않을까? 알겠어. 잘했어. 인터뷰 끝나면 전화할게. 누구한테? 기자한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네가 직접 얘기해.”
가수 겸 DJ 김성수와 인터뷰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당시 그는 힙합과 EDM이 결합된 기획 공연을 앞두고 있었는데, 덕분에 그의 휴대폰으로 관계자들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바쁘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김성수가 휴대폰을 잡아들었을 때는 오직 한 번, 딸 김혜빈 양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였다.
특별한 것 없는 대화였지만 김성수의 목소리에서는 애정이 뚝뚝 흘러 넘쳤다. 인터뷰 내내 진지하던 얼굴에는 처음으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기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달라는 딸의 부탁에 김성수는 통화 음량을 높였다. 기자와의 통화가 어색했는지 혜빈 양은 절반은 혀 짧은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허허 웃기만 하던 기자와 달리, 김성수는 딸의 말에 살뜰히 대답해줬다.
김성수는 혜빈 양이 자신의 중심이라고 했다. 혜빈 양에게도 자신이 삶의 중심이란다. 그래서 김성수는 절대 무너질 수 없다.
“어떤 가정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저의 가장 큰 원동력은 딸이에요. 훌륭하게 잘 키워내야죠. 딸과의 약속은 늘 지켜주고 싶어요. 이번에 몸무게 13kg을 감량했는데, 여기에도 애기의 힘이 컸어요. 애기가 제 뱃살을 만지곤 하거든요.(웃음) 살을 빼겠다고 약속했으니 그걸 지키기 위해 뺀 거죠.”
혜빈 양이 전화로 건넨 얘기가 무척 궁금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혜빈 양은 일면식도 없는 기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하하. 혜빈이도 저와 약속을 한 게 있어요. 예전에 수학 시험에서 0점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그 뒤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하더니, 얼마 전 시험에서 86점을 받아 왔더라고요. 아까 그 얘기한 거예요. 자기 수학 점수 잘 나온 거, 자랑 좀 해 달라고.”
딸 이야기가 나오자 김성수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그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뒤적여 어버이날 혜빈 양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 아빠에게 돈도 벌어다 주고 집안일도 다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김성수는 “마냥 아기로만 생각했는데, 이런 글을 썼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딸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아빠가 뒤에서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어야죠. 저만 바라보는 아이이고, 저 또한 삶의 중심이 애기한테 있어요. 딸이 믿을 수 있는 아빠, 딸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어린 나이에 힘들 일을 겪었던 아이라 더더욱 그래요. 지금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 있어요. 제가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슈퍼맨’ 같은 아빠가 되지는 않겠단다. 힘든 것은 힘들다고 내색하되, 힘듦을 이겨낸 뒤 다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 김성수의 교육관이다.
“딸에게 완벽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냐고요? 어휴, 아니요. 저는 아빠도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힘든 건 힘들다고 표현하되 힘든 걸 이겨내고 다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그래야 아이도 제게 자신이 힘들다는 걸 내색할 수 있는 거고, 또 힘든 걸 이겨내고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것도 알게 될 테니까요.”
‘아빠’ 김성수에게서 전에 없던 안정감이 읽혔다. 그에게 칭찬을 건네니 쑥쓰러워하면서도 “주변에서 ‘나이가 들수록 더욱 멋져보인다’는 얘기를 해주긴 한다”고 말했다. 이제 김성수는 멀리 있는 성공을 좇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행복을 보살핀다. 단단하게 내실을 다지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서.
“행복이란 게 꼭 성공을 통해 이뤄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애기랑 라면 하나를 끓여먹더라도 재밌게 웃고 지낼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성공의 기준이) 너무 높지 않은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성공하겠다는 집착이 심해지면 저 자신이 힘들어지거든요. 최선을 다하다 보면 한 계단씩 올라갈 수 있겠죠. 젊었을 땐 훅 올라갔어요. 내려올 때도 훅 내려오더라고요. 이제는 천천히 올라갈 겁니다. 다만 지금 쌓아가고 있는 것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