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이 남자, 잘생겼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트렌디한 얼굴. 날카로운 눈매가 서늘한 인상을 주다가도 미소를 지어보일 때는 선하고 착실한 얼굴이 된다. 배우 홍종현이 속내를 알 수 없는 이재규(KBS2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부터 지덕체가 고루 빼어난 고려귀족 왕린(MBC ‘왕은 사랑한다’)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선악이 공존하는 그의 외모가 한몫했다고 생각했다.이 남자, 성실하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것을 묻자 “게을러지려고 하는 나 자신”이라고 답한다.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잘생긴 외모가 복(福)이라면 성실함은 그가 쌓은 덕(德)이었다고. 그리고 배우 홍종현을 만든 것은 복이 아닌 덕이었다고.
Q.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진행하는 인터뷰입니다. 10년을 맞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홍종현: 5주년이었다면 넘어갔을 것 같은데 활동을 10년이나 했다고 하니까 나름의 기념을 하자는 의미로 하게 됐어요. 드라마(‘왕은 사랑한다’)가 끝나고 언론 인터뷰를 못해서 그 소식도 전해드릴 겸 해서요.
Q. 기분은 어때요?
홍종현: 신기해요. 관심 받고 사랑 받는 것에 대한 감사함은 늘 갖고 있었지만 이제는 팬들의 존재가 든든하게 느껴져요. 얼마 전 팬미팅을 했는데, 제가 노래를 조금 못하거나 미흡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것조차 좋아해주시고 귀엽게 봐주시는 분들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Q. 노래를 못하는 모습마저 귀여워 해주는 건 노래를 부르는 것이 홍종현의 본업이 아니기 때문일 거예요. 반면 연기에 대해서는, 팬들의 비평이 어느 누구의 것보다 날카롭지 않을까 싶습니다.
홍종현: 글쎄요. 연기를 잘 해야 하고 작품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이 직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당연한 마음가짐 같아요. 다만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을 때 팬 분들, 혹은 가족이나 친구들을 생각하면 힘이 날 때가 많죠. 스스로 다독이고 파이팅을 불어넣으면서요.
Q. 출연했던 작품은 자주 보는 편인가요.
홍종현: 가끔 생각날 때 한 번 씩 봐요. 볼 때마다 아쉬운 게 많죠. 다음 작품에서 더 잘해야겠다는 계기로 삼기도 하고. 촬영할 때 생각도 많이 나요. 힘들었던 일들 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잊어버리는데 방송을 보면 다~ 생각나요.(웃음) 제가 겨울에 쉰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그래서 겨울에 촬영할 땐 ‘내년 겨울엔 웬만하면 쉬어야지’ 생각하는데 막상 겨울이 되면 촬영을 하고 있어요.
Q. 올해 겨울엔 어떨 것 같아요?
홍종현: 아마 (작품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제일 추울 때 촬영에 들어갈 것 같아요.
Q. 활동하면서 슬럼프는 없었어요?
홍종현: 있었죠. 20대 초반에 두세 작품 정도 하고 난 뒤에 ‘내가 이 일을 행복하게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 적 있어요. 그리고 20대 중후반쯤 또 한 번 왔어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자신감이 떨어졌어요. 언젠가 더 자신 있게 저를 보여드려야 할 시점이 올 텐데 제가 그렇게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는 이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잠깐 찾아왔습니다.
Q. ‘이런 일’이라는 건 연기를 말하는 건가요, 아니면 연예계 생활을 말하는 건가요.
홍종현: 둘 다였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고, 일에서의 문제도 있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크고 작은 트러블도 있었어요. 그게 복합적으로 찾아오다보니까 어느 순간 무기력해지는 때가 오더라고요.
Q. 연기 경력이 제법 쌓인 지금이야, 무엇이 당신을 추동하는지 잘 알겠지만 20대 초반에는 달랐을 것 같아요. 어디에서 힘을 얻고 위안을 얻어야 하는지 잘 몰랐을 텐데, 그 때 왔던 슬럼프는 어떻게 견뎠어요?
홍종현: 제가 (연기를) 하고 싶어 하더라고요. 사실 연기는 20대 중반쯤부터 시작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었어요. 기회가 일찍 찾아온 편이죠. 대사도 없는 단역으로 시작했는데, 회사에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역할’이라고 하셨어요. 영화나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서 시작했고 하다 보니까 흥미가 생겼습니다.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한 번 해보자. 그 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20대 중후반쯤에 찾아왔다는 슬럼프, 혹시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할 즈음이었나요?
홍종현: 아니요. 그보다 전이에요. 그 때는 방송 카메라가 많은 상황에서 얼마나 연기를 해야 하고 얼마나 진심을 보여줘야 하는지 (조절이) 어려웠어요. 여자랑 빨리 친해지지 못하는 편이기도 했고요. 그런 생각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연기를 하고 싶은데 방송을 하는 날들이 많아지는 상황에 대한 속상함 같은 것이요.
Q. 지금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이 조금 더 생기지 않았어요?
홍종현: 조금은 더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후회하는 건, 제가 하기로 결정한 이상 어떻게든 해내서 보여드려야 했는데 그 부분에서 미흡했다는 점이에요. 정말 하기 싫었으면 끝까지 하지 않는 게 옳았겠죠. (그 때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고 있어요.
Q. 반대로 연기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을 땐 언제에요?
홍종현: 데뷔 초 연기력이 많이 미흡했을 때의 저를 기억하셨던 분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저를 보면서 ‘많이 좋아졌다’ ‘다시 봤다’ ‘감명 깊다’는 반응을 보여주실 때 가장 뿌듯해요. 누군가에게 남아있는 저에 대한 기억을 바꿀 수 있다는 게요. 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오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30대가 더 기대되기도 하고요. 무조건 ‘좋아해주세요’ ‘관심 가져 주세요’라고 말하진 않을 거예요. 앞으로 꾸준히 열심히 할 테니까, 그냥 기억에 남을 만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Q.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니에요. 쉴 땐 주로 뭘 하며 지내요?
홍종현: 예전에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했는데, 요즘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제가 변한 건지 잠깐 이러는 건지…. 영화나 드라마 보고, 운동 다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축구하러 가고. 크게 하는 건 없어요. 재미없게 사는 것 같네요. 하하.
Q. 자주 만나는 친구들은 연예계 종사자인가요?
홍종현: 아닌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나는 것 같아요. 학창시절 친구들이 더 많은데다가 (연예인 친구들은) 시간을 맞추는 게 어렵기도 하니까요.
Q. 친구들과 있을 때의 홍종현은 어때요.
홍종현: 진지해진 것 같아요. 원래는 잘 까불거리고 놀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좀 얌전해졌어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되어 버렸어요.
Q. 무엇이 홍종현을 얌전하게 만들었을까요?
홍종현: 글쎄요. 뭐가 얌전하게 만들었지?(잠시 침묵)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느꼈어요. 친구들과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놀았던 게 되게 먼 일 같아요.
Q.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건 2010년 영화 ‘정글피쉬2’부터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우 데뷔 10주년은 2020년에 맞게 될 텐데 그 땐 뭘 하고 있을 것 같아요?
홍종현: 저, 그 때 군대에 있을 걸요.(일동 폭소) 군에 있다는 가정 하에 말씀을 드리면 빨리 현장에 나가고 싶어 할 것 같아요. 일에 대한 욕구를 긍정적으로 잘 쌓아놓고 있다가 복무를 잘 마친 뒤에 열심히 펼쳤으면 좋겠어요. 슬프네.(웃음) 2020년…, 군대에 있겠죠.
Q. 지금 홍종현은 몇 점짜리 배우라고 생각해요?
홍종현: 50점? 아직 경험도 많이 부족하고 보완해야 할 점도 많은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버거울 때도 있지만, 일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들거나 싫지는 않거든요. 이제는 제가 예상하는 때까지 일을 못하게 될 거라는 불안함은 없어요.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 더 하고 싶은 욕심도 있으니까, 앞으로 더 나아질 거라고 믿고 있어요.
Q. 불안함이 없어졌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원하는 때까지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을 갖고 있던 때도 있었나요?
홍종현: 그건 지금도 있죠.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다만 나이를 먹고 경력이 2-30씩 늘어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홍종현 앞에 다른 직업이 붙어도 가끔씩 일 년에 한 작품이라도 연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조급한 마음을 많이 버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