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인피니트 출신 이호원은 직업이 많다. 가수 겸 배우, 최근에는 뮤지컬 ‘모래시계’를 통해 뮤지컬 배우 타이틀도 얻었다. 덕분에 몸은 바쁘다. ‘모래시계’를 연습하면서 구내염이 다섯 개나 생긴 적도 있다. “나름 면역력이 좋은 편인데… 진짜 무리이긴 해요.” 차분한 말투로 얘기를 이어가던 이호원이 조용히 웃었다.
불과 두 달 여 전까지만 해도 이호원은 “매일 전쟁하는 기분”이었다. ‘모래시계’ 연습과 MBC ‘투깝스’ 촬영장을 오가던 그는 “집에 들어가기 전까진 항상 긴장한 상태였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공연이 무대에 오르고 ‘투깝스’ 촬영 분이 전파를 타기 시작하면서 한 숨 돌릴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공연 전날에는 최대한 많이 자려고 해요. 드라마 촬영 때문에 잠을 못 자게 되는 날엔 말을 거의 안 하죠.” 목 관리를 위해 요즘은 화장실에 따뜻한 물을 받아 놓거나 수건을 빨아 널어놓는 등 “안 하던 행동”을 많이 하고 있단다.
이호원은 스스로 “뮤지컬 마니아는 아니”었다고 했다. “누가 봐도 한국인”인 자신이 “노란 가발을 쓰고 ‘헤이, 샘’ 하는 것”이 편치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몇 개의 작품에서 출연 제안이 왔지만 번번이 거절했다. 그가 ‘모래시계’를 뮤지컬 데뷔작으로 선택한 건 “우리나라의 이야기이고 역사가 주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호원이 맡은 역할은 원작 드라마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경호원 재희다. ‘모래시대’ 세대가 아닌 이호원은 뮤지컬 대본과 송지나 작가의 대본집을 차례로 독파했다. 드라마를 본 건 연습이 끝나고 런스루(Run Through, 실제 공연처럼 하는 연습)에 들어가기 전이다. “잔상이 남을까봐 드라마를 미리 안 봤어요. 확실히 제가 해석한 캐릭터와 다른 부분이 있더군요. 배울 건 배우면서 저만의 재희를 만들었습니다.”
‘경호원’이라는 재희의 직업 때문에 묵직하고 조용한 캐릭터를 떠올렸다는 이호원은 드라마를 보며 여유를 찾았다. 이호원은 “드라마에서 재희가 혜린(고현정 분)에게 장난을 치는 남자의 팔을 꺾고 씩 웃으면서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재희에게도 저런 여유가 있구나, 보고 놀랐다”면서 “뮤지컬에서는 재희가 웃을만한 장면은 없지만 중요한 감정신이 아니면 힘을 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 때 액션영화를 보면서 액션 배우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는 그는 ‘모래시계’ 재희를 통해 “잠깐의 꿈을 이뤘다”며 웃었다. 어린 시절 너무 마르고 왜소해 온갖 운동을 배운 덕에 액션 장면을 소화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몸을 움직이느라 숨이 차 호흡이 잘 움직이는 덕분에 노래도 편하게 나온단다. 자신에게 안성맞춤인 캐릭터를 만난 것이다.
1980년대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모래시계’를 비롯해 최근 이호원은 MBC 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 SBS ‘초인가족 2017’ 등에서 또래 청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에 연달아 출연해 왔다. 자신의 개인적인 꿈과 진로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를 지나 요즘에는 시야가 넓어진 기분이란다. 이호원은 “사회적 문제를 보면서 그것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 점점 고민하게 된다”면서 “친형제나 친구들, 나를 제외한 주변 모든 사람들이 겪는 얘기이다 보니 크게 다가왔다”고 전했다.
2012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이호원은 그러나 연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모든 동작을 계산해서 연기해야 하는지, 순간적인 움직임을 보여줘야 하는지, 늘 혼자 고민하고 결정해서 연기했어요. 처음엔 분석을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가짜처럼 느껴졌어요.” 거의 모든 연기가 상호 간의 약속 아래에서 이뤄지는 뮤지컬은 이호원의 고민을 해소해줬다. “정해진 연기를 하면서도 매번 진짜 감정을 끄집어내는 배우들을 보며 확신을 얻었어요.”
처음엔 뮤지컬에 대한 애착보다 부담이 더 컸다. 하지만 요즘 무대 예술이 가진 깊이에 푹 빠졌다. “정말 많은 분석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반성을 많이 했어요. 많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다보니 보람도 더욱 커요.” 소속사 대표에게 “음반을 낸 뒤에는 또 뮤지컬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단숨에 거절당했다는 일화를 전하면서 이호원은 즐겁게 웃었다. 요즘에는 뮤지컬은 물론, 소수의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콘서트를 하면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주로 공연을 보러 오시잖아요. 그런데 ‘모래시계’를 할 때는 저를 좋아하시는 분이나 싫어하시는 분, 저를 모르시는 분도 많이 오세요. 연령층도 다양하고요. 그 분들에게 저를 알릴 수 있는 게, 단 1초라도 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감사해요. 정말 감동이 있고 재밌는 작품이니까, 많이 보러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