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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서 BTS까지 ‘ㄱ’을 기억하다' 다시 보는 한글의 의미

▲'세종에서 BTS까지 ‘ㄱ’을 기억하다'(사진제공=TV조선)
▲'세종에서 BTS까지 ‘ㄱ’을 기억하다'(사진제공=TV조선)
장지영 선생의 ‘문자보급운동’과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조선말 큰사전', 이육사·신채호·윤동주 등 문인들의 무기였던 한글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통해 한글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만난다.

25일 방송되는 TV CHOSUN 특집 다큐 '세종에서 BTS까지 ‘ㄱ’을 기억하다'에서는 한글의 탄생부터 수난의 역사, 미래까지 한글의 가치에 대해 조망해본다.

지난 2월 28일 막을 내린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에서는 천지자연의 소리와 형태가 인간의 말과 글로 변화하는, 자연과 인간이 언어로 하나가 되는 순간을 담았다.

1443년, 세종대왕이 우리 백성들의 소리를 기록하기 위해 만든 문자, 한글. 훈민정음은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문양이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문양’에 인간의 말을 합한 것이 ‘문자’다. 인간의 발음기관을 본뜬 자음과 천지자연의 모습을 상형화한 모음처럼 ‘문양’에서 ‘문자’로 한글이 탄생하는 과정을 현대미술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세종에서 BTS까지 ‘ㄱ’을 기억하다'(사진제공=TV조선)
▲'세종에서 BTS까지 ‘ㄱ’을 기억하다'(사진제공=TV조선)
한글이 우리 삶 속에서 어떻게 희로애락을 표출하고 현대미술의 언어로 진화하고 있는지, 또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우리 말과 글이 굳건하게 지켜온 순간, 역사의 억압을 뚫고 K팝 등 한류 문화를 통해 세계적 현상으로 발전한 한글이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 예술이 되는 순간을 진행자인 배우 박상원이 조선일보 100주년 한글 특별전, 'ㄱ의 순간' 전시장 곳곳을 누비며 설명한다.

◆최초의 민간 한글신문 조선일보가 증언하는 한글의 100년 역사 공개

신문은 일제강점기와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우리 말과 글이 굳건했음을 보여주는 100년 역사의 증인이다. 3.1운동 이후 조선총독부는 언론과 출판 집회의 자유 일부를 허용하며 ‘조선일보’ 등 민간 한글신문 3종의 발행을 허가했다. 한글신문은 일제의 식민통치를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고, 총독부는 압수와 정간을 반복하다가, 결국 1940년 8월 11일, 창간 20년 만에 강제 폐간시키며 조선의 ‘입’을 틀어막았다.

일제는 신문을 억압하는 한편, 교육에서도 조선어말살정책을 치밀하게 전개하며 수업과 교과서에서 조선어를 없애고 일본어를 국어로 삼았다. 나라는 빼앗겼어도 우리 말과 글은 지켜야 한다는 주시경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국어학자들은 조선총독부에 맞서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글 교육과 신문이 완전히 사라진 1940년대, 33명의 조선어학회 회원들은 한글 사전을 만들며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감옥에 갇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게 된다. 이들에게 한글은 목숨이었고, 그 덕분에 우리 말과 글은 사라지지 않고 '조선말 큰사전'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조선일보, 일제의 조선어말살정책에 맞서 ‘문자보급운동’을 일으키다

일제강점기 우리 말과 글을 지키는 일에 앞장섰던 건 조선일보 같은 민족지들이었다. 주시경의 제자로 조선어연구회의 창설 회원이었던 장지영 선생은 1928년 조선일보 편집인에 취임한 직후 ‘문자보급운동’을 이끌었다. 문자보급운동은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남녀 학생들이 농촌 문맹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운동으로 일제강점기 최대의 민중계몽운동으로 평가된다.

그는 훗날 “이로 인해 글을 깨쳐 신문을 읽게 된 사람이 30만 명이 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라고 회고했다. 신문이 문자보급운동을 나서야 했던 이유,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신문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100년 역사 속에 담겨 있는 신문 속 한글의 역사를 공개한다.

◆이육사·신채호·윤동주 등 문인들과 독립운동가들에게 한글은 무기다

문자는 한 민족의 정신을 담아온 그릇이다. 감옥을 17번이나 오가면서도 끝내 펜을 놓지 않았던 이육사 시인의 ‘편복’, 독립운동가 신채호의 ‘새벽의 별’ 등은 엄혹한 현실에서도 독립을 향한 빛나는 신념을 읽을 수 있다.

암울한 일제 말기를 버티며 참회와 희망의 시편을 쏟아낸 문학청년 윤동주. 스물한 살 시인의 감성과 지성을 깨운 것은 조선일보 학예면이었다. 조선일보 학예면은 채만식, 백석, 홍명희 등 당대 최고의 문인과 학자들이 만들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 신입생이던 1938년 4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10개월 동안 조선일보 학예면을 매일 읽고 기사를 오려 붙이며 문학과 세상에 대한 안목을 키워갔다. 문인들과 독립운동가들에게 무기이자, 목숨이었던 한글의 의미도 다큐멘터리에 담아냈다.

홍선화 기자 cherry31@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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