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방송되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견디고 참고 기다리며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동네, 서울 수유동을 찾아간다.

1970년대, 새댁 이현숙 씨가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수유동에 왔다. 단독 주택 너른 마당에 나무를 심고 갓 돌 된 아들은 나무와 함께 자랐다. 홀로 집을 지킬 때면 남편이 직접 만들어준 수은등을 켜고 밤을 맞았다. 현숙 씨에게 집은 닿는 곳마다 추억이었다. 하지만 사람 하나를 키우듯 쉼 없이 손을 타야 하는 고택. 홀로 고택을 관리하는 일이 버거워 잠시 떠나보기도 했던 그때, 돌연 타지로 떠났던 아들이 고향 집으로 돌아왔다. 교수라는 번듯한 직업을 두고 어떻게든 이 집을 살려보고 싶었단다. 그렇게 집 구조, 스위치 하나까지 살려 카페로 재탄생시킨 아들. 가족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옛집이란 어떤 곳일까.

완연한 가을, 소나무 가로수길 아래를 걷던 김영철이 걸음을 멈춘다. 코끝을 스치는 청국장 냄새가 그윽하다. 입구와 분리된 주방 문 사이로 보이는 식당 사장님. 그 옛날 밥 짓던 어머니가 떠올라 자연스레 자리에 앉는다. 이집의 대표 음식은 청국장과 콩탕. 알고 보니 이는 20년 전 위암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사장님 한의순 씨가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음식이란다. 암을 이겨낸 후 ‘몸이 반응하지 않는’ 음식을 고민하던 의순 씨에게 떠오른 엄마의 청국장. 그 시절 그 맛을 위해 그녀는 청국장을 위한 집을 구했다. 식당 인근 산을 병풍으로, 실개천이 보이는 작은 집. 한 달에도 수어 번 청국장을 빚으며 깨달은 건 단 하나. 음식에서 더하는 거보다 덜어내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20년 째 여전히 가장 전통의 방식으로 청국장을 만드는 의순 씨. 큰 방에 이불을 덮어 삼 일 간 온도를 조절해 탄생시키는 청국장은 그녀를 살린, 그리운 어머니의 정이다.

시작은 도장 판매의 명당이라는 구청 앞이었다. 3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서 40년 간 매일 찍어내듯 도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12년 전, 손님이 찾아오지 않을 곳으로 옮겼다. 간판도 없이. 최병훈 씨는 그곳에서 대한민국 1호 인장 명장이 되었다. 이젠 삼 일에 한 개씩 도장을 만들며 때론 한 달 반 넘게 한 개의 인장만 만들 때도 있다. 그의 작업실은 도장의 신세계다. 누가 의뢰하지도 않았건만 역사책을 공부하며 1천 개가 넘는 인장을 만들고, 또 만든다.
그에게는 오랜 꿈이 있었다. 학자가 되어 실컷 글씨를 쓰는 일. 덕분에 나무 조각에 글을 쓰고 새기며 평생을 살게 됐다. 생계를 위한 도장은 이제 만들고 싶지 않았다. 40년 간 그를 버티게 한 건 바로 이 순간이다. 김영철은 명장의 혼이 담긴 도장을 선물 받는다. 길 영 밝을 철. 그의 이름은 나무 끝에서 길이길이 밝은 빛을 낼 것이다.

하늘 지붕 아래 장미원 시장 골목마다 가을바람이 머문다. 좌판에서 계절을 느낄 때면 발걸음을 늦추는 김영철. 문득,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가 멈춘다. 추석이 지난 지 어언 한 달 남짓. 한 떡집에 아직도 송편이 가득하다. 송편 맛 전국에서 알아주는 떡집은 겨울에도, 봄에도 송편을 찐단다. 그런데 유독 참 해맑아 보이는 남편. 얼마 전 아내 몰래 전원주택을 구입한, 큰 배포까지 자랑한다. 이게 다 아내를 위한 보답의 선물이라고. 아내는 25년 전 1살, 3살 난 아이들을 두고 위의 절반가량을 절제해야 했던 남편을 믿어준, 세상 유일한 내편이었다. 회복 후 부부는 무일푼으로 떡집을 차렸다. 경험이 없었지만 자신은 있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힘을 합쳐 버텨낼 거라는 자신. 그렇게 부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고 남편은 그때의 시간을 보답하기로 했다. 서서히 나빠지는 아내의 건강, 그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마음을 담은 용화산 아래 전원주택으로, 부부는 이제 주말마다 떠난다. 그곳에서 부부는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낸다.

서울 4개 구에 걸쳐 녹음이 펼쳐진 북서울 꿈의 숲이 푸르다. 서울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심 속 초대형 공원인 북서울 꿈의 숲. 광장, 분수, 연못 등 12경 풍경 명소를 품어 더 다채롭다. 배우 김영철은 북서울 꿈의 숲의 대표 명소, 49.7m의 전망대에 올라본다. 도봉산, 북한산,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 남산 등 서울 사방의 산세가 한눈에 보인다. 이 달이 지나면 완연한 가을의 정취가 빛으로 물들 것이다. 2009년 쇠락한 놀이공원 ‘드림랜드’ 부지에 공원이 들어선 건 시대에 맞는 변화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북서울 꿈의 숲을 통해 소중한 휴식처를 찾았다. 매일 하루의 대부분을 꿈의 숲에서 보내는, 심탁일 어르신도 그 중 하나다. 꿈의 숲 개장과 함께 그는 이곳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했다. 얼마 전부터는 이곳에서 독학한 피아노 연습에 열중이다. 삶의 위로가 절실했던 어르신에게 음악은 노년에 찾은 새로운 꿈이자 희망이다. 그리고 북서울 꿈의 숲은 오늘도 그 누군가의 꿈을 묵묵히 응원한다.

북서울 꿈의 숲을 떠나기 전, 좁은 골목을 지나는 김영철. 한 가게 앞, 우유팩을 정리하는 젊은 여자를 발견한다. 무엇을 하는지 물으니 지구를 위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우유팩과 지구라, 무슨 일인지 가게로 들어가 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눈에 띄는 건 비누와 빨대들. 수십 종의 물건들은 친환경 소재로 만들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결국 이 물건들의 목적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 쓰면 사라지는 고체 비누, 고체 치약은 포장 용기가 없다. 다회용 실리콘 빨대는 쓸 때마다 버려지는 일회용 빨대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흔히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라 불리는 이 생활방식은 쓰레기를 줄이고, 나아가 쓰레기를 생산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세제 대신 재활용이 가능한 빈 용기에 세제 리필을 하는 것 또한 대표적인 실천 방안. 제로 웨이스트는 미래를 위한, 더 건강한 삶의 도전이다.

동네 한 바퀴가 끝나갈 무렵, 이른 아침 우이천 징검다리 앞에서 했던 약속이 떠오른다. 김영철과 짧은 인사를 나눴던 노장의 마라토너. 어르신의 말처럼 메달이 많은 이발소를 찾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물어물어 찾아온 이발소. 올해로 79세, 61년 경력의 이발사 김경철 어르신은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애처가란다. 결혼 50주년 기념 감사패 자랑부터, ‘또순이 복덩이’ 아내의 소원이던 웨딩드레스 이야기까지. 53년 노부부의 사랑이 이렇게도 뜨거울 수 있나 싶었는데. 천 리 건너 14일 만에 결혼한 부부 사이, 어찌 처음부터 순탄했을까. 쉰 세 번 째 구간을 완주하기까지 부부는 두 손 꼭 잡고 셀 수 없이 많은 고개를 함께 넘었단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웃을 날만 남았다며, 다가올 80대가 기대된다는 부부. 53년 이발소 부부의 행복론은 숱한 세월이 쌓여 단단하고 그래서 더 소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