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방송되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희망을 꽃피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충남 아산으로 떠난다.

아산의 정중앙에 우뚝 솟아, 어디서나 보이는 타워가 있다. 높이 150m, 아파트 약 50층 높이를 자랑하는 그린타워는 쓰레기 소각장의 굴뚝이자 아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다. 타워가 세워진 환경과학공원은 쓰레기 소각장이 조성되던 시기에 함께 지어졌으며 건강문화센터, 생태곤충원, 장영실과학관 등 다양한 체험시설이 있어 가족나들이 코스로 인기이다. 덕분에 시민들의 기피 대상이었던 님비 시설을 찾아가고 싶은 명소이자,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아산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3개의 온천이 있는 명실상부 온천의 고장이다. 그중 온양 온천은 조선 시대 여러 임금이 행궁을 짓고 휴양이나 치료차 머물렀던 곳으로, 기록된 역사만 1,300여 년에 달한다. 그만큼 수질이 좋고 수량은 풍부하며, 42℃ 이상의 고온천(高溫泉)으로 물이 뜨겁다는 온양 온천. 1960~70년대는 민간인들의 온천 개발붐이 일어나면서, 금맥을 찾듯 온천공을 뚫어 대대적인 ‘물장사’가 시작됐고, 전국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효도 관광지로 ‘통행 금지’도 없는 호시절을 보냈단다. 김영철은 수돗물보다 온천수가 더 흔한 ‘물 좋은 동네’를 걷다 80여 년 세월이 고스란히 남은 오래된 목욕탕에서 동네 어머니들을 만나, 왕이 즐긴 보양 온천에서 전 국민의 대중 온천으로 명성을 날린 그 시절의 온천만큼 뜨끈한 추억을 들어본다.

김영철은 염치저수지 인근 동네에서 평상에서 갈비를 손질하고 있는 어머니를 만난다. 16년 전, 갑작스럽게 남편을 떠나보내고 모든 의욕을 잃었을 때 딸의 권유로 식당을 차린 어머니는 살아생전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묵은지갈비찌개를 내놓고 있다. 묵은지갈비찌개는 천하 한량이었던 남편이 날이면 날마다 친구들을 데려와 술안주로 끓이게 했던 음식. 오지랖 넓은 남편 덕에 매년 500포기 이상의 김장을 해야 했지만, 돌아보니 어머니는 그것마저 행복이었단다.

백암리 방화산 기슭, 겨레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 잠들어 있는 현충사를 향한다. 충남 아산은 이순신 장군의 외가가 있던 곳으로, 충무공은 이곳에서 유년기부터 혼인 후 무과에 급제하기까지 무예를 연마하여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았으며, 전사한 후 마지막에 잠든 곳이다. 12척의 배로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해전까지도 승리로 이끈 것처럼 역경 속에서도 장수의 기개와 충신의 신념으로 나라를 지킨 불멸의 영웅 이순신. 현충사는 그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장군의 숭고한 애국충정이 담긴 장검과 임진왜란 동안 친필로 기록한 난중일기 등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현충사에 올라 영정 앞에 참배를 드리며 이순신 장군의 충절과 호국정신을 되새겨본다.

지중해 마을마을은 2000년 초 포도 농사를 짓다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오면서 떠났던 원주민들이 다시 돌아와 조성한 곳으로, 고향을 지키는 동시에 지역의 새로운 명소로 만들고 싶다는 동네 분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마을을 둘러보던 김영철은 개업 축하 문구를 단 화분들이 세워진 한 가게를 발견한다.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작은 쿠키 가게. 개업한 지 6개월 된 새내기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코로나로 인해 남편이 잠시 일을 쉬게 되면서 가장의 역할을 대신 짊어지고 가게를 연 유정 씨. 하지만 낯가림이 심한 초보 사장님은 손님과 인사 나누는 것조차 긴장이 돼 말문이 막힐 때가 많다. 손님이 단 한 명도 오지 않는 날도 있지만, 잘 될 거란 용기를 잃지 않고 있다는 유정 씨. 아들에게 일하는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란다. 지중해마을, 달콤한 내일을 꿈꾸는 쿠키 가게의 꿈을 응원해본다.

서해 바닷물이 들고나던 아산만 한 모퉁이의 공세리로 걸음을 옮긴 김영철은 특별한 벽화를 발견한다. 바로 1970년대 후반까지도 모든 피부병의 만병통치약이라 불렸던 고약. 한국형 신약 1호라 불리는 고약은 약이나 병원이 변변치 않던 시절, 서민들에게 ‘빨간 약’ 다음으로 많이 쓰였던 최고의 가정상비약이었다. 그 추억 속의 고약이 시작된 곳이 바로 아산만 언덕 위 작은 성당이라는 사실. 1890년대에 세워진 공세리 성당의 2대 신부인 에밀 피에르 드비즈가 종기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프랑스에서 익힌 의술을 바탕으로 제조한 것이 바로 고약이며, 후에 신자 이명래 씨가 제조법을 배우고 발전시키면서 유명해졌단다. 기억 속 낡은 서랍 속에서 오랜만에 꺼내 보는 단어, 고약. 동네 어머니들과 고약을 붙이며 추억에 잠시 젖어본다.

온양과 더불어 온천으로 유명한 도고 시내를 걷다가, 김영철은 ‘호박국수’라고 쓰인 가게를 발견한다. 아버지와 딸이 운영하는 작은 국숫집으로, 호박국수는 아버지가 어릴 적, 외할머니께서 갓 따온 호박을 송송 썰어서 뜨끈한 육수에 말아주던 음식으로 특별할 건 없지만 한 그릇 게 눈 감추듯 먹던 별미 중의 별미였단다. 여름엔 애호박, 겨울엔 늙은 호박을 채 썰어 기름에 살짝 볶은 뒤, 사골육수를 넣어 자작하게 끓여 잘 삶은 소면 위에 올리는 호박국수.


김영철은 조선 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 초가와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로 들어선다. 실제 60여 가구가 사는 마을로 ‘살아있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500년 역사의 외암마을이다. 오래된 돌담길을 따라 걷던 김영철은 참판댁의 담장 너머로 연엽주를 만드는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만난다. 6대조부터 이어져 내려왔다는 연엽주는 쌀과 누룩을 섞은 것에 손수 재배해 말린 연잎을 층층이 번갈아 쌓아 숙성한 가양주로, 제사 때만 쓰던 제주(祭酒)이자 과거 임금께 올리던 진상품이다.
연엽주를 만드는 건 맏며느리의 역할 23년 전, 예안 이씨 종가에 맏며느리로 들어와 연엽주를 빚고 있는 은주 씨는 호랑이 시아버지로부터 하늘과 같은 종가의 규율과 법도를 배우고 있다. 대들보 밑에 상을 놓았다는 이유로 반성문까지 써야 했던 은주 씨. 서슬 퍼런 시부살이에 23년이 지난 지금도 시아버지 앞에선 긴장의 연속이란다. 하지만 귀하고 보기 좋은 음식은 따로 몰래 빼서 주실 만큼 속이 깊고 따뜻한 시아버지. 시아버지의 사랑과 가문을 지키고자 하는 신념을 알기에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그림자도 밟지 않고 그저 묵묵히 뒤를 따른단다. 호랑이 같은 시아버지와 토끼 같은 며느리가 만드는 달콤 쌉싸름한 맛의 연엽주를 한 모금 마셔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