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일 방송되는 KBS1 '동네한바퀴'에서는 열린 마음으로 자연에서 호흡하며 주어진 만큼 만족할 줄 아는 사람들의 동네 강원도 양양으로 떠난다.

해외여행도, 호캉스도 없던 시절. 설악산은 대한민국 대표 휴가 명소였다. 그중에서도 오색약수는 꼭 한 번쯤 들러봐야 할 코스 중 하나. 만병통치약이라는 소문에 참 많은 사람들이 이곳 물을 마시며 만수무강을 기원했단다. 약수터 아래로 내려가면 그 귀한 오색약수로 밥을 짓는 집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가을까지 채취한 설악산자락 산채와 함께 내놓는 오색약수 돌솥 밥은 그냥 지나가기엔 아쉬운 별미. 추위를 피해 들어간 가게엔 한 상 가득 사계절 설악산이 펼쳐진다.

꿀과 기름을 섞어 튀겨 만드는 전통 한과, 과줄. 먹을 게 많아져 손 많이 가는 한과야 안 만드는 집이 더 많다지만 양양 조산리 어머니들은 2023년 겨울에도 여전히 한과 삼매경이다. 10년 전 마을 회관에 모여 만날 화투만 치지 말고 좀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 마음먹었다는 45명의 부녀회 어머니들. 한 해 한 해 지나 이젠 최정예 요원 딱 8명뿐이지만 의리보다 진한 가족애로 똘똘 뭉쳐 양양 과줄을 만들어 내신다.

젊은이들이 죽도해수욕장 주위로 모여 산다. 8살 아들을 둔 서민정 씨는 5년째 아들과 이곳에 살며 매일 같이 바다에 나온다. 그곳에서 모래사장 속 보물을 찾는다는 모자, 유리병 속에 넣는 건 유리 조각이다. 사람이 버리고 바다가 쓸어가 파도로 깎은 유리는 좋은 작품 도구가 된다. 빛에 반사된 색색의 유리 조각들은 흡사 보석 같기 때문이다. 이런 빛나는 일상을 찾기까지 민정 씨는 서울에서 이런저런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그렇게 갈고 닦였기에 더 반짝이는 오늘을 맞게 됐다.

현남면 바닷가에 자리한 암자 휴휴암은 불심(佛心)이 없어도 좋은 절이다. 너른 바위 위에 서도 팔만사천 번뇌가 바다 너머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바위 주변으로는 해가 뜨면 이곳으로 왔다가 해질녘이면 바다로 떠난다는 물고기 떼가 있다. 탐욕과 성냄, 노여움과 질투를 푸른 파도에 실어 보낸다. 씻긴 마음이 머무는 곳엔 평화가 있다.

30년 전, 이숙자 부부가 이곳에서 가게를 차리던 시절에도 곰치는 여전히 버리지 못해 먹는 생선이었다. 하지만 동해 앞에서 육(肉)고기 집을 운영하며 말 그대로 ‘바닥까지 쳐봤던’ 부부에겐 기회의 생선이었다. 부부는 맑은 탕 대신 어부들이 먹던 방식처럼 묵은지를 넣고 끓이되 각종 노하우를 개발해 맛을 특화시켰다. 그동안 숱한 실패도, 말로 다 못할 사고들도 있었다. 그래도 부부는 이것이 내 길이다, 하고 ‘곰치만 팠다.’ 곰치김치국 30년 차, 이젠 이 계절의 별미로 큰 사랑을 받게 됐다. 그사이 귀해진 곰치는 귀족 생선이 되어 한 마리에 수십만 원을 호가한다. 시린 겨울 바다의 향을 품은 부부의 자존심, 곰치김치국을 만나본다.

양양으로 시집온 지 30년, 동네에서도 장독 많은 집으로 불리는 서성준 씨에게는 눈물 젖은 김치가 있다. 바로 이 겨울이면 한 달 새 몇 번이고 담는다는 명태김치다. 시부모님에 시동생과 함께 사는 양양 생활은 무엇 하나 쉬운 구석이 없었다. 그중 가장 어려웠던 게 바로 음식. 매일 전화기 붙들고 친정엄마에게 물어가며 만들었던 충청도식 밥상은 입맛 까다로운 시아버지 앞에서 다 퇴짜였지만 수십, 수백 번 재현해보려 애썼던 명태김치는 기어이 인정을 받고야 말았다. 그렇게 명태김치로 시작된 강원도 음식 정복하기는 어언 30년째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10년 전 암 수술을 하고 양양에 오가다 정착해버린 이원덕 씨는 3년 전부터 이곳에서 두부와 섭국을 만들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인생 2막을 함께 시작했기에 부부는 펼쳐질 앞날이 두렵지 않다. 곡절 많은 시간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 더 단단해지는 부부의 사랑을 만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