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거의 모든 뮤지션들이 갈망해 마지않는 수식어지만, ‘믿고 듣는 가수’라는 표현이 사뭇 위험하게 느껴진 적이 있다. 가수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그에 대한 호기심을 떨어뜨리고, 그리하여 그가 담은 메시지를 읽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지난 1일 발매된 자이언티의 새 음반 ‘오오(OO)’는 그에게서 ‘믿고 듣는다’는 수식을 떼어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진담과 농담을 오가는 이 음반에서 자이언티는 믿음을 배신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힙합 알앤비 장르의 뮤지션이 많아지면서 음악의 완성도가 중요해진 시대가 왔다”고 그는 말했지만, ‘완성도 싸움’의 서막을 열어젖힌 건 다름 아닌 자이언티 자신이 아닐는지.
Q. 안경을 벗으니 굉장히 순한 인상이다. 안경을 줄곧 착용하는 이유는 뭔가.
자이언티: 자이언티가 안경 쓰는 걸 좋아해서 매번 씌워주고 있다.
Q. 독특한 대답이다. 가수 자이언티와 인간 김해솔(자이언티의 본명)은 별개의 사람인가.
자이언티: 인격이 다르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자이언티’라는 브랜드는 인간 김해솔과 별개라는 생각은 한다. 자이언티를 위해 곡을 쓰고 자이언티에게 어울리는 노래를 고르는 느낌이랄까. 나 혼자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음악 프로듀서, 스태프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Q. 1년 2개월 만에 발표한 음반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타이틀곡 ‘노래’가 공개와 동시에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자이언티: 와우. 무척 기쁘다. 기쁘다 곱하기 3만 정도의 기쁨이다. ‘노래’가 사랑받고 있는데 나머지 곡들도 가사를 주의 깊게 들어주시면 좋겠다.
Q. ‘노래’의 묘미는 단연 “이 노래가 유명해지지 않았으면 해”라는 가사다.
자이언티: 진~짜 농담이다. 내가 자전적인 내용의 노래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나. 아버지의 직업, 내가 살아온 환경을 가사로 드러내는 첫 순간이 참 어려웠던 것 같다. 나 혼자 쓴 일기장을 사람들이 모두 알고 그 내용을 공유하는 상황, 나만 알고 있던 이야기로 내게 말을 거는 상황이 재밌고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노래’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내용이기도 하다. 당신이 쓴 일기장이 유명해지면 어떨 것 같냐고. ‘내 얘긴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지?’ 라는 당황스러움, 신기함, 반가움을 표현하려고 했다.
Q. 타이틀곡만큼이나 주목 받고 있는 곡이 그룹 빅뱅의 지드래곤과 함께 한 ‘콤플렉스(Complex)’다. 노래에서 이야기하는 콤플렉스는 당신 자신의 것인가.
자이언티: 누구에게나 콤플렉스는 있지 않나. 그런데 콤플렉스는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키가 큰 게 콤플렉스인 사람이 있는 반면 작은 게 콤플렉스인 사람도 있다. 보는 시야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거라 재밌게 풀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 나 콤플렉스 때문에 못 살겠어’라는 콘셉트는 절대 아니다. 위트 그 자체인 노래다. 재밌게 들어주시길 바란다.
Q. 지드래곤과 협업은 어떻게 성사됐나.
자이언티: 해줄 줄 몰랐다.(웃음) 조심스럽게 부탁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주더라. 쿨(Cool)한 느낌의 곡을 지드래곤 형이 함께 해주면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바쁜 일정이었는데 녹음을 거듭 수정해서 보내주더라. 고마웠다.
Q. ‘양화대교’를 언급한 가사가 특히 재밌다.
자이언티: ‘양화대교’는 내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계기가 된 곡이지만 동시에 내가 그동안 발표해온 수많은 노래 가운데 하나일 뿐이기도 하다. 그런데 ‘양화대교’라는 단면만 보고 내 음악 세계 전부를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그 다리’(양화대교)가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는 가사가 있다. 핵심적인 가사다. 나의 다른 음악들, 다른 표현들, 다른 활동들도 유심히 봐주길 바란다는 의미다. 어찌 보면 ‘양화대교’가 내 콤플렉스일 수도 있겠다.
Q. 가사를 주의 깊게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하기도 했고 실제로 수록곡 가사들이 모두 재밌다. 작사 과정은 어떤가.
자이언티: 의식의 흐름대로 쓴다. 이 가사 잘 되겠다 혹은 사람들이 이걸 좋아하겠다는 생각으로 쓰지는 않는다. 내가 쓰다가 혹은 흥얼거리다가 ‘우와 이거 정말 재밌다!’ 싶은 가사를 노래로 발표한다. ‘이 노래 정말 재밌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에서 계속 음악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 왜, 다들 혼자 보기 아까운 영화가 있지 않나. 비슷한 마음이다.
Q. 더블랙레이블 이적 후 발표하는 첫 음반이다. 아메바컬쳐 소속일 때와 차이가 있다면?
자이언티: 많은 분들이 소속사 이적을 큰 변화라고 생각하시는데, 음악을 만드는 스태프들은 예전과 같다. ‘양화대교’ 이전부터 같이 음악을 만들던 친구들이 전부 회사(더블랙레이블)에 있어서 나도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됐다. 쿠시 형님 역시 내 음악에 관여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해준다. 다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스스로 더욱 정리가 되고 그래서 더 자유로워진 느낌은 있다.
Q. 신변의 변화를 거친 뒤 낸 음반인 만큼 중압감이 없진 않았을 것 같은데.
자이언티: 중압감… 분명 있었다. 환경이 바뀐 것에 대한 중압감은 아니고 ‘내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라는 부담이었다. (음악적으로) 나아지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예전에 발표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은 새 음악이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매 해 다른 경험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생긴다. 지난 음반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사운드적으로 신경을 많이 썼다. 예전에 비해서 러닝타임도 길어지고 음반을 통째로 들었을 때 포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Q.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들인가.
자이언티: 이 답변이 성의 없게 들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음반 안에 잘 녹아있다’는 거다. 최근 나의 생각, 마음, 감정들, 이를 테면 ‘너 뭐하고 지내니? 무슨 생각하고 살아?’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Q. ‘색깔 있는 뮤지션’이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당신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자이언티의 색깔은 무엇인가.
자이언티: 내게는 너무나 익숙한 음악이라서 어떤 특징이 있다고 판단해 말하기가 어렵다. 우선 나는 미니멀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간결하고 절제된 사운드. 물론 쉽지는 않다. 짧은 가사 안에 의미를 담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것이 어렵다. 이를 테면 첫 트랙 ‘영화관’의 첫 소절이 ‘15분 전’이라는 가사다. 오랜만에 내는 음반의 첫 목소리인 셈인데 “15분 전”의 원형이 뭘까, ‘15분 전’은 어때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간결할수록 더 어렵다.
Q. 당신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 음악 시장의 흐름 또한 많이 달라졌다. 힙합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힙합 알앤비를 구사하는 보컬리스트들도 상당히 늘었는데, 이것이 당신에게는 어떤 영향을 주나.
자이언티: 우선 힙합이 주류 음악이 된 것은 내게 반가운 소식이다. 힙합으로 처음 음악을 시작하기도 했고 내 음악적 기반에 힙합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보컬을 풀어내는 스타일에 랩 같은 느낌이 있다고 할까. 가사를 풀어내는 것 역시 래퍼들이 쓰는 방식과 비슷하다.
내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완성도가 아니라 희소성 때문에 관심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 땐 힙합 알앤비 장르를 구사하는 뮤지션이 거의 없었다. 나와 같은 포지션에 있는 친구들, 이를 테면 크러쉬나 딘 같은 뮤지션들이 등장하면서, 이젠 완성도가 중요해진 시대가 온 것 같다. 물론 우리도 어리고 음악을 시작한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듣고 자란 친구들이 분명 있을 게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음악의 완성도는 더욱 올라갈 거고. 앞으로 훨씬 재밌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