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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리뷰] '경주기행' 웃기고 묘하고 화나는, 한국형 블랙 코미디의 새 지평

▲'경주기행' (사진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경주기행' (사진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단체 티셔츠를 맞춰 입은 가족이 경주로 떠난다. 트렁크에 사람을 싣고.

영화 '경주기행'은 8년 전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 경주의 생일을 맞아 엄마와 세 딸이 복수를 위해 경주로 향하는 이야기다. 얼핏 단란한 가족여행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치밀하게 설계된 복수 계획이다.

딸을 잃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때로는 황당할 만큼 웃기고, 때로는 웃고 있어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비극적인 사건을 웃음으로 풀어내면서도 그 사건이 가진 무게를 놓치지 않는 것. 김미조 감독은 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통해 '경주기행'만의 독특한 블랙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경주기행' (사진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경주기행' (사진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네 주인공의 앙상블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엄마 옥실 역의 이정은은 억척스럽게 살아온 세월이 그대로 느껴지는 인물이다. 딸을 잃은 허망한 눈빛 안에 복수심과 목표를 향한 단단한 의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슬픔과 강인함이 한 얼굴에 공존하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첫째 장주 역의 공효진은 가족 안에서는 영락없는 큰언니지만 동시에 자신이 꾸린 가정도 있는 인물이다. 가족의 복수에 동참하면서도 그 안에 완전히 녹아들지는 않는 듯한 미묘한 거리감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현실적인 인물이다. 가족을 위해 움직이면서도 자신의 가정을 함께 챙겨야 하는 장주의 복합적인 위치를 공효진이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둘째 영주 역의 박소담은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코인 투자에 몰두하는 백수지만 가족의 복수 계획을 치밀하게 설계한 전략가다. 똑똑하면서도 생활력 있는 둘째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캐릭터다.

셋째 동주 역의 이연은 여성 프로레슬러 출신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몸으로 살려낸다. 셋째의 서러움을 귀엽게 풀어내면서도 넘치는 에너지로 영화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경주기행' (사진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경주기행' (사진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빌런 백상현 역의 변요한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다. 특별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등장만으로 불쾌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다.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을 거듭하면서 관객의 분노를 끌어내는데 변요한은 백상현의 뻔뻔함과 비호감적인 면모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관객이 제대로 미워할 수 있는 빌런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감은 분명하다.

스릴러 같으면서 코미디고, 어두우면서 웃기고, 화나면서도 어느 순간 웃음이 터진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모순된 감정들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것이 '경주기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경주기행' (사진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경주기행' (사진출처=롯데엔터테인먼트)
특히 웃어도 되는 상황인가 싶은 순간에 웃음이 터지고 그 웃음 뒤에 다시 씁쓸함과 불편함이 남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블랙코미디는 꽤 독특하다.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만 다루지 않으면서도 그 안의 슬픔과 분노를 놓치지 않는다. 한국적인 가족 정서와 복수극, 코미디가 묘하게 뒤섞인 새로운 결의 블랙 코미디를 찾는다면 '경주기행'은 분명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8월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1분.

이민혜 기자 lmh@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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