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경주기행'은 8년 전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 경주의 생일을 맞아 엄마와 세 딸이 복수를 위해 경주로 향하는 이야기다. 얼핏 단란한 가족여행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치밀하게 설계된 복수 계획이다.
딸을 잃은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때로는 황당할 만큼 웃기고, 때로는 웃고 있어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비극적인 사건을 웃음으로 풀어내면서도 그 사건이 가진 무게를 놓치지 않는 것. 김미조 감독은 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통해 '경주기행'만의 독특한 블랙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첫째 장주 역의 공효진은 가족 안에서는 영락없는 큰언니지만 동시에 자신이 꾸린 가정도 있는 인물이다. 가족의 복수에 동참하면서도 그 안에 완전히 녹아들지는 않는 듯한 미묘한 거리감이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 현실적인 인물이다. 가족을 위해 움직이면서도 자신의 가정을 함께 챙겨야 하는 장주의 복합적인 위치를 공효진이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둘째 영주 역의 박소담은 사법고시를 포기하고 코인 투자에 몰두하는 백수지만 가족의 복수 계획을 치밀하게 설계한 전략가다. 똑똑하면서도 생활력 있는 둘째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캐릭터다.
셋째 동주 역의 이연은 여성 프로레슬러 출신이라는 독특한 설정을 몸으로 살려낸다. 셋째의 서러움을 귀엽게 풀어내면서도 넘치는 에너지로 영화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스릴러 같으면서 코미디고, 어두우면서 웃기고, 화나면서도 어느 순간 웃음이 터진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모순된 감정들이 한 편의 영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것이 '경주기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8월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1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