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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 ‘택시운전사’ 비극의 역사와 송강호에 빚진 연출

▲영화 '택시운전사' 기자간담회(출처=쇼박스)
▲영화 '택시운전사' 기자간담회(출처=쇼박스)

대개의 역사가 그렇지만, 특히나 ‘현대사’를 스크린에 옮기는 과정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시대를 통과한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영화적 상상력’은 여러모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물며 그 역사가 비극이라면. 게다가 그 비극이 아직 여물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영화는 역사 앞에서 더 크게 숨고르기 할 수밖에 없다. 5.18이라는, 여전히 괄호로 남겨진 그 날을 다뤄야 하는 ‘택시운전사’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이 딜레마를 장훈 감독은 ‘두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돌파하려한다. 한 사람은 ‘진실을 알리려는 기자 정신’이 투철한 파란 눈의 외국인. 또 한 명은 당장의 ‘먹고사니즘’이 중요한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이다. 영화는 광주와 전혀 무관한 두 사람을 그 날의 역사로 실어 나른다. 효과적인 접근이다. 캐릭터들이 지닌 상황과 성격은, 역사라는 무거운 판단에서 숨 쉴 구멍을 만들어 주는 통로가 된다. 게다가 평범한 소시민 만섭을 연기한 배우가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 송강호다. 파란 눈의 기자 피터는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2002)에서 이미 역사의 딜레마와 맞섰던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이다. 만섭은 당시 독재정권으로부터 알권리를 박탈당했던 우리를 대변한다. 피터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리려 했던 그 시대 살아있는 정신을 대표한다. 이 이야기는 무려, 실화다.

영화는 1980년, 만섭의 브리사 택시가 서울 도로를 가로지르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마침 택시 안에는 1979년 발표된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신나게 흘러나온다. 바로 그 시간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은 ‘제3의 나라’ 일처럼 은폐돼 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치미 떼고 전개되는 초반부에서, 5.18이라는 이름을 지우지 않도록 암시를 던지는 건 광주의 참상을 전해 듣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독일 공영방송 소속 기자인 피터라는 존재다. 사실 초반부는 전개가 많이 더디다. 택시라는 공간을 이용한 에피소드가 납작이 인상도 있고, 만섭과 딸의 관계 역시 전형적인 수준에서 그려진다. 신과 신 사이의 편집 리듬도 그리 찰지다 할 수 없다.

더딘 호흡의 영화는 광주까지 택시를 태워주면 10만원을 주겠다는 피터의 제안을 만섭이 받아들이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택시가 광주에 도착한 순간부터는, 역사 그 자체가 주는 파고가 극을 압도한다. 무장한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할 때에는 스크린 너머의 상상력이 끼어들며 몸을 고통스럽게 한다.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린 그 날의 광주 앞에서 휴지는 필수다.

그러나 영화가 그 이상으로 전진했는가에는 여전히 물음을 품게 된다. 그 날을 비극을 재현하는 것에는 소기의 목적을 거두지만, 그 날의 가해자들에 대해 영화는 지극히 소극적이다. 광주 시민을 탄압하는 사복조장(최귀화)을 흡사 ‘터미네이터’ T1000을 연상케 하는 ‘악의 화신’으로 그려낸 것 또한 너무 손쉬운 접근처럼 보여 아쉽다. 12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여름 상업영화라는 역할 안에서, 흥행이라는 부담에 짓눌린 흔적일 테다.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는 금남로 장면은 클로즈업과 슬로우 모션으로 길게 찍혔는데, 최루성 신파는 피하고 싶은 ‘감독의 마음’과 그럼에도 영화적 대중성을 확보하고 싶은 ‘또 다른 감독의 마음’이 충돌한 흔적을 드러낸다.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분노와 슬픔이 연출보다는 ‘역사 그 자체’에서 오는 게 아닐까란 의문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송강호라는 이름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 그 시대에 산다는 이유 하나로, 커다란 선택 앞에 놓여야 했던 만섭. 만섭이 지닌 딜레마는 송강호라는 질감을 통과하며 풍부해지는데, 여러 부분에서 배우 고유의 힘이 상황을 살려내고 있다는 느낌을 안긴다. 토마스 크레취만이 연기한 피터마저도 영화는 상당히 기능적으로 소비하는데, 이는 송강호라는 존재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 한 선택의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택시운전사’는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불러냈다는 점에서 분명 미덕이 있는 프로젝트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 ‘26년’ 등의 영화들이 이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 이상을 보여주길 바랐던 것도 사실이다. ‘택시운전사’는 5.18을 깊게 그려내는 것이 얼마나 버거운 일인가를 다시 한 번 증명한 작품인 셈이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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