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방송되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서는 실록에 관한 이야기를 전했던 오항녕 교수가 다시 출연해 조선 시대의 제도인 경연에 관해 이야기한다. 스페셜 게스트로 래퍼 래원이 참여해 이야기에 풍성함을 더한다.
‘경연’은 오늘날 자문회의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조선의 정치 시스템 중 하나다. 왕과 신하들이 한자리에 모여 유교 경전과 역사 공부를 하는 자리임과 동시에 정책에 관해 토론하는 장이기도 했다. 왕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인 경연은 왕과 관료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언관’, 왕의 언행뿐 아니라 주요 사건, 사고 등을 후대에 남기기 위해 기록을 담당했던 ‘사관’과 함께 3대 왕권 견제 장치로 꼽힌다.
실록에만 언급되는 횟수가 3만 6천여 건에 달하는 경연은 조선 시대 국정 운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종은 집현전을 경연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확장시키고 경연의 토대를 다져 신하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배움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종이 닦은 기틀 위에 단종과 성종을 거치며 하루에 아침, 점심, 저녁 세 번의 경연을 하는 삼강 제도가 확립되었다. 특히 성종은 경연에 무려 9,000회 이상 참여했다고도 한다.
오항녕 교수는 “경연의 횟수로만 따질 순 없지만, 대체로 경연을 많이 한 왕들이 좋은 정치를 폈다”라며 “성종 역시 신하들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서 국정과 민생의 안정을 이뤘기에, 후세의 우리가 그를 ‘성(成)’종이라 부른다”라고 말했다.
경연을 통한 소통은 문치주의 조선을 이어가는 데 있어 필수 과정이지만, 때론 경연의 길이 막혀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대표 ‘불통’ 왕들은 누가 있을까? 조선의 대표적인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은 갖가지의 핑계로 경연을 빠진 것으로 유명했다. 아프다는 핑계는 기본, 연산군이 시도한 황당한 경연 기피 꼼수가 본 방송에서 공개된다.
조선의 또 다른 ‘불통 왕’으로 꼽히는 광해군 역시 연산군 못지않게 아프다는 핑계로 경연에 빠지기가 일쑤였다는데, 재위 15년 동안 경연을 연 것이 단 열흘 남짓이었다고 한다. ‘불통’의 모습을 보여준 왕들은 결국 폐위로 이어지며 조선의 혼란을 야기했는데, 오항녕 교수는 경연의 부재로 혼란스러웠던 당시 조선의 상황을 설명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