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 방송되는 KBS1 '김영철의 동네한바퀴'에서는 흐드러지게 핀 봄꽃 사이로 다시 태어나는 반포, 그곳의 오늘을 만난다.

서울의 관문이 된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마주한다. 1977년 첫 운행 이래, 전국 1일 생활권의 주역이 된 곳이다. 만남과 이별, 치열한 삶의 순간들이 오가는 승강장을 지나 터미널 3층으로 올라간다. 대한민국 꽃시장 1세대 상인들이 상가 한 층을 가득 메운 채 꽃을 판매한다. 남대문에서부터 시작, 반세기 역사를 꽃과 함께 보낸 상인들은 자타공인 화훼 박사. 알록달록 수많은 꽃들 사이로 새로운 계절이 펼쳐진다.

이국적인 카페가 즐비한 거리. ‘반포의 작은 프랑스’ 서래마을을 걷는다. 1981년 이태원동에 있던 서울 프랑스 학교가 옮겨오면서 ‘서리서리 흘러내린 개울’이라는 뜻의 서래마을은 ‘서쪽 사람들의 동네’가 됐다. 현재는 대한민국에 사는 프랑스인 중 약 절반 정도가 이곳에 모여 산다. 프랑스인 호농 마얘와 한국인 김수진 파티시에의 프랑스 정통 디저트 가게는 프랑스인이 고향의 향수가 짙어질 무렵 들르는 곳이다. 마얘는 고국이 그리워질 때 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줬던 디저트를 떠올린다. 마얘 씨에게 추억은 곧 신 메뉴 개발로 이어지고 그리운 마음이 담긴 디저트는 또 다른 누군가의 새 추억이 된다.

서래마을에서 동네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작고 토속적인 가게를 발견한다.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 식당은 서래마을의 명물. 그 명성답게 양복에 넥타이 차림을 한 사장님이 앞서 반긴다. 동네 특성 상 깔끔한 이미지를 유지해야 했던 그는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오직 정장을 고수, 가게의 영업, 배달을 책임진단다. 주방에서는 ‘완도 출신’ 아내 한은주 씨가 돼지뼈를 삶는다. 남편에게 속아서 결혼했다는 그녀는 아직도 처음 서래마을에 왔던 그날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고향 완도 김 양식 일이 싫어 오직 서울, 서울. 상경의 꿈을 안고 왔던 서래마을은 웬걸. 깡촌도 이런 깡촌이 없었다. 그렇게 눈물로 지새운 나날이 어연 40년.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녀는 감자국 한 솥에 그리운 마음, 푹푹 삶아냈다. 그래도 견디고 버텨 부부는 맨손으로 일군 가게를 지켰다. 기댈 곳 없는 타지에선 결코 순탄치 않은 세월이었다. 하지만 열심히 산만큼 제법 보답 받은 인생. 지나고 보니 부부는 모든 게 고맙다. 그 마음 그대로, 손님들에게 푸짐한 감자국 한 그릇을 나눈다

강남권 지역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아파트 주거문화의 시초, 반포주공아파트. 1973년생인 반포주공1단지는 명실공히 국내 최초 대단위 아파트다. 2022년, 지금 그 대단지 아파트를 품었던 구반포는 50년 역사의 마지막 장을 지나게 된다. 때문에 공사를 앞두고 아파트, 상가의 대부분은 공가 딱지를 붙이고 비워져있다.
한신 종합 상가만 유일하게 열려있다. 작은 입구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거대 상가의 지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다. 일흔의 전 국가대표 탁구 선수 이상국 씨가 동년배 반포 주민들을 모은, 일명 탁구 사랑방이다. 한때 엘리트 선수 감독이었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이 탁구장을 인수했고 생활체육의 매력에 빠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20년 간 수상실적, 점수보다 가치 있는 것을 얻었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안정과 행복. 힘껏 땀 흘리고 문 밖을 나서는 반포 주민들의 얼굴이 밝다. 그 등 뒤로 미소 짓는 노(老)선수의 얼굴이 덩달아 밝아진다.

동작대교를 걷다보면 이름부터 감성적인 두 개의 카페를 볼 수 있다. 노을, 그리고 구름. 다리 양쪽에 위치해 마치 다리가 두 팔 벌려 환영하는 느낌이다. 올라가면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카페에서 차를 주문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확 트인 전망 아래 도시가 살아 움직이고 있다. 강도, 다리 위의 차들도 제각기 속도를 갖고 목표를 향해 간다. 바쁘지만 그래서 더 생동감 넘치는 도시. 노을 구름 카페는 그 분주한 서울에서 잠시 시간을 멈출 수 있는 곳이다. 높은 곳에서는 시야가 넓어진다. 숨을 고르며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너머의 존재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한적한 주택가, ‘서울 음식 전문점’ 간판이 보인다. 주소 상 서울 식당은 많아도 ‘서울 음식 전문’은 드물다. 진짜배기 서울 음식은 어떤 맛일까. 만두를 빚는 모자가 반긴다. 1993년부터 가게를 열었다는 이집의 대표메뉴는 만두전골과 고추장 두부찌개. 서울 토박이이자 서울 종갓집 며느리답게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고 옛 집밥을 구현해낸단다. 양념 맛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내세운, 슴슴하고도 담백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동네가 알아주는 사장 지선영 씨의 손맛은 바로 시어머니에게서 온 것.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조실부모한 그녀에게 친정 엄마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그립고 더 보고 싶은 시어머니. 그 어머니의 음식을 좋아했던 큰아들과 함께. 선영 씨는 만두를 빚는다. 누군가에게 마음 평온해질 한 상을 차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