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나영은 '박하경 여행기' 이후 약 3년 동안 서두르지 않았다. 억지로 이나영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이나영의 마음부터 움직이는 이야기가 찾아오길 묵묵히 기다렸다.
그런 이나영이 선택한 복귀작은 ENA 드라마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하 아너)'이었다. '아너'는 거대한 스캔들이 되어 돌아온 과거, 거대 악의 카르텔에 맞서는 세 여성 변호사의 뜨거운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생존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그렸다.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비즈엔터와 만난 이나영은 무거운 극 중 분위기와 달리 한결 편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작품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윤라영'처럼 신중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나영은 극중 잘나가는 변호사이자 대중의 신뢰를 받는 뉴스 메신저 '윤라영' 역을 맡았다. 이나영의 첫 장르물이자, 처음 연기하는 전문직 역할이라는 점에서 제작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나영은 '아너'의 대본을 처음 마주했을 때, 강렬한 이끌림을 느꼈다고 했다. 마치 소설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으로 뒤가 궁금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고 회상했다.
"8부까지 대본을 읽고 나니 '이거 재밌는데? 참여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짙었죠. 뉴스 신처럼 긴 대사를 소화하거나 전문직 역할을 맡아본 적은 없었거든요. 합류가 결정되고 난 다음에는 '얼른 대사 외워야겠다'라면서 도전 의식을 다졌던 것 같아요."
윤라영은 겉으로는 당당한 메신저이지만, 내면에는 깊은 트라우마를 숨긴 입체적인 인물이다. 이나영은 그런 윤라영을 완벽한 잔다르크로 그리기보다, 상처를 직면하고 하루하루 버티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에 집중했다. 밖에서는 정의를 외치지만 집에 돌아오면 현관문을 3단으로 잠가야만 겨우 잠들 수 있는 윤라영의 트라우마는 이나영의 섬세한 연기를 만나 생동감을 얻었다.
"윤라영은 밖으로 나가면 성향을 완전히 바꿔야 하는 인물이었어요. 대외적인 메신저로서 상처를 직면하고 버텨내야 했지만, 집에서는 문을 3단으로 잠그고 거실에서 자야 할 만큼 불안함을 안고 있었죠. 그런 톤과 분위기의 차이가 캐릭터로서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이나영은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 '아너'를 무미건조한 드라마로 예상했다. 흔한 눈물 신조차 대본에 없었기에 감정 소모가 적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촬영 현장에 서자 모든 순간이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이건 뭐가 잘못됐다는 느낌이었어요. 하하. 오히려 담백하게 감정을 풀어야 하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제 스스로가 윤라영에게 깊이 동화되다 보니 울컥 감정이 오르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 감정을 누르는 게 정말 어렵더라고요."
특히 극 중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로, 삶의 의지를 놓으려는 조유정(박세현)에게 "니가 왜 죽어, 죽느니 죽여라"며 버럭 화를 내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나영 또한 이 장면을 찍을 때의 울컥했던 마음을 전했다.
"감독님이 '애가 무서워하니 너무 화내지 말라'고 하실 정도로 감정이 격해졌어요. 사실 그건 윤라영이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거든요. '나도 그렇게 못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야 한다'는 그 말이, 라영이 옆에서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었던 것 같아요."
②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