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방송되는 KBS 1TV '동네한바퀴'에서는 기쁨을 전한다는 뜻을 가진 문희경서의 고장 문경으로 떠난다.
◆‘길(吉)한 옛길’ 문경새재를 걸으며
영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연결해 아랫동네 선비라면 한양을 가기 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길. 문경새재 제2~3관문 코스를 걷던 이만기는 다듬이질 소리에 발길을 멈춘다. 산속에 웬 다듬이질을 하는 여인들이라? 알고 보니 문경새재 아리랑 비 옆에서 아리랑 가락을 전하는 중이라는 문경시 보호문화유산 송옥자 보유자. 제자들과 함께 이 노래를 잇는 건 한 맺힌 조상들의 얼을 지키고 싶어서란다. 간절한 마음들을 상상하며 이만기는 한 해, 한 고비 문경새재의 길을 넘어본다.
◆아버지의 폐역을 되살린 바리톤의 꿈
불정동 옛 철길을 따라 걷다가 그림 같은 간이역 하나를 만난다. 영강에서 나온 자갈로 만들어졌다는 아담한 폐역, 불정역. 가장 기억이 선명한 유년 시절, 최상균 씨는 역장이던 아버지를 따라 불정역 관사에 살았다. 소년은 바리톤이 되어 반세기,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살며 80여 개국을 유랑하고 늘 불정역을 그리워했다. 그렇게 예순, 여행하듯 살던 남자는 연어가 회귀하듯 역으로 돌아와 결국 그곳을 작은 오페라 인형 극장으로 꾸몄다. 아직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생의 마지막 꿈을 이곳에서 펼치고 싶다는 한 폐역 역장, 그의 동화 같은 삶을 들어본다.

석탄 하면 보통 강원도 정선, 태백 등을 떠올리지만 우리나라 최초의 석탄 광산은 문경에서 시작되었다. 1960~80년대까지 문경은 지역 전체 인구가 15만 명 가까이 됐을 정도로 번성한 도시였다. 마스크 한 장 못 끼고 일하던 시절, 목숨을 걸고 했던 광산 생활로 여든이 가까워지는 오늘까지 광부들은 짧은 숨을 몰아쉬며 그날을 기억한다. 지금도 연중행사처럼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며 동료들과 까만 먼지를 털던 그때를 회상하는 문경의 광부들을 만나 옛이야기들을 나눠본다.
◆문경의 작은 인도, 청년 사장과 ‘빠니뿌리’
문경읍 구도심엔 도무지 이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한 인도 간판 하나가 걸려있다. 2년 전 청년 정착 프로그램에 참여해 문경에 와 홀로 인도 음식점을 차렸다는 주인 전찬우 씨는 28살 앞날이 창창한 청년. 11살에 처음 인도로 가족 여행을 가 인도의 매력에 빠져 유년 시절을 인도에서 보낸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힌디어 전공을 한 후 늘 인도에 대한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다. 언제까지가 될진 모르지만 할 수 있는 날까지 이 재밌는 실험을 계속해보고 싶다는 인도 사랑 청년의 빠니뿌리를 맛본다.

1955년부터 가은역과 문경역으로 가는 석탄 수송 열차들을 맞이했던 진남역. 1994년 폐광 이후로 진남역의 철로에 더는 열차가 다니지 않지만, 2004년부터 국내 최초의 철로 자전거가 대신 그 길을 지키고 있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경북 1경인 진남교반을 볼 수 있다는 것. 더불어 영강의 수려한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편도 25분의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데. 언젠가 수많은 광부들이 오갔을 진남역 탄광 길을 오가며 깊어가는 문경의 겨울을 만끽해본다.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아버지의 애끓는 부정(父情)
상주시에서 발원해 문경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물줄기, 영강. 이곳에는 한겨울에도 매일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한 아버지가 있다. 근처에 식당을 운영하며 오직 100% 생물로만 매운탕을 끓인다는 그의 철칙은 23년째 이어지고 있다는데, 삼 남매 아버지 세국 씨는 가정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 거친 강물로 뛰어들었다. 강으로 갈 수 있는 그 날까지 자식의 영원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싶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의 매운탕 한 그릇은 부녀의 마음이 담겨 유독 더 뜨겁고 깊다.

산 좋고 물 맑기로 이름난 문경엔 좋은 술도가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은 아자개 장터에 터를 잡은 한 작은 양조장이 있었으니, 이곳의 주인은 50대 부부.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귀농해 15년 농사를 짓다가 막걸리를 만들게 된 지 5년째란다. 희양산자락 아래 술 좋아하는 이웃들을 위해 술이나 만들자 싶어 그들이 생산한 쌀로 술을 만들었다가 예상치 못한 진로를 찾았단다. 이제야 비로소 이곳에 온 삶이 만족스럽다는 부부의 술 향기 그득한 발걸음을 함께 해본다.
◆98세 현역 방짜 유기장이 전하는 삶의 의미
주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닌, 일일이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방짜 유기는 수십 번의 공정을 거치는 힘의 예술이다. 문경의 한 소나무 숲 옆에는 3대가 운영하는 방짜 유기 공장이 있다. 가장 전통 방식으로, 6명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이곳엔 굉음과 불꽃이 연신 반복되는데, 그 과정을 총괄하는 이른바 원대장(방짜 유기 총괄장)은 98세 이봉주 옹. 매일 9시 출근해 퇴근까지 꼬박 작업장을 지키는 그는 누가 뭐래도 현역 자리를 놓지 않는다. 백수를 앞두는 나이에 이젠 일을 좀 놓을 법도 하지만 그에게 방짜 유기는 장수의 비결이자 인생 그 자체. 또 해를 넘겨 내년이면 99세, 이봉주 옹이 깨달은 삶의 의미와 국민들을 향한 한 어른의 지긋한 덕담을 전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