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방송된 SBS '과몰입 인생사'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퀸’ 노래를 가장 많이 튼 DJ 배철수가 텔러로 등장해 레전드 밴드 ‘퀸’의 프론트맨인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를 전했다.
배철수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꼭 가보고 싶은 순간이라는 1985년 7월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라이브 에이드' 공연 현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공연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단 한마디 '에~오" 로 관중을 사로잡고 광기 어린 공연을 펼쳤다.
그러나 데뷔 초부터 인종 문제, 이민자 출신, 성 정체성, 등으로 순탄하지 않았고 늘 비주류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생애는 화려한 무대만큼 밝지만은 않았다. 사실 퀸의 3년이 넘게 진행되었던 무명시절을 깬 첫 무대는 날씨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립싱크 TV무대였다. 비록 립싱크지만 대중에게 퀸을 각인시키겠다는 의지로 의상과 메이크업 등 철저한 무대를 준비한 퀸은 스타일과 음악성을 모두 인정받았고 영국 차트 2위까지 오르는 주류 음악인이 되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소속사의 불합리한 운영 계약을 파기하고 큰 위약금을 물게 된다. 이들이 다시 올러설 수 있는 방법은 대박 앨범을 만들어 내는 것뿐이었다. 빚더미를 안고 시골로 내려간 프레디 머큐리와 멤버들은 시골 농장에 쳐박혀 한 달 만에 곡을 만들었다.

인기를 한몸에 안고 승승장구 하던 퀸은 누드컨셉의 앨범이 발매되자 여론이 들끓었고 점점 더 안좋은 소문들이 돌기 시작하면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그러자 프레디 머큐리는 짧은 포마드 헤어 섹시한 가죽 재킷, 콧수염의 마초 상남자 스타일로 변신을 하고 로큰롤, 디스코 등 다양한 장르로 다시 군중을 장악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멤버들은 가정을 꾸려 떠나고 프레디 머큐리는 성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 등으로 외로움이 커져갔다. 이후 절절한 사랑 노래를 발표해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번아웃을 겪고 1년간의 휴지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프레디의 자존감이 떨어지던 어느 날 '라이브에이드' 공연의 뒤늦은 섭외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할당된 20분을 최고로 채우기 위해 뼈를 깍는 노력을 하고 무대에 섰다. 퀸을 떠올리면 누구나 생각하는 바로 그 '라이브 에이드'무대가 만들어졌다. 재기에 완벽히 성공한 것이다. 제작진은 이 레전드 무대 ‘라이브 에이드’ 프로듀서를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한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당시 기획자가 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퀸이 관중의 반응을 끌어올려 줄 것이라고 생각해 오랜 설득 끝에 무대가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이후 에이즈로 건강이 악화된 프레디 머큐리는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를 외치며 마지막 순간까지 음악을 놓지 않지만 결국 4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되었다. 퀸의 기타리스트이자 천문학자였던 브라이언 메이는 소행성에 '프레디 머큐리'의 이름을 붙여 그를 실존하는 영원한 별로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