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걸리가 문화가 되는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일상이고, 금기가 아니라 정서인 곳이다. 영화 '누룩'은 그런 공간에서 시작된다.
영화 '누룩'은 동네 양조장 집 딸 다슬(김승윤 분)이 어느 날 막걸리의 맛이 변한 것을 알아채고 사라진 누룩을 찾아 나서면서 시작된다. 빈 화장품 병에 막걸리를 담아 학교에서도 홀짝이는 다슬의 설정은 얼핏 파격적으로 느껴지지만 영화 안에서는 이상하게 자연스럽다. 어릴 때부터 막걸리를 마셔와 큰 사고를 친 적도 없고, 어른들도 딱히 제지하지도 않는다. 이 풍경은 시골 특유의 생활 문화로 읽힌다. 누룩과 쌀과 물만으로 빚는 전통 주조법을 고수하는 양조장처럼 다슬의 막걸리 사랑도 그 자체로 하나의 전통이자 정서다.

'누룩'은 장동윤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그는 단편 영화 '내 귀가 되어줘'로 연출을 시작했다. 배우 출신답게 인물의 감정을 읽는 눈이 예리하며 현장에서는 배우들에게 직관적으로 연기 지도를 했다고 알려졌다.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그 가능성만큼은 충분히 확인된다.
배우들의 앙상블은 탄탄하다. 김승윤은 성격도 성적도 빼어난 발랄한 열여덟 고등학생을 생생하게 구현했다. 누룩이 사라졌다며 앓아눕고, 가족들의 만류에도 홀로 누룩을 찾아 나서는 다슬의 고집스러운 순수함이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박명훈은 딸에게 관심 없어 보이지만 딸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 딱 시골 아빠의 온도를 정확하게 잡아냈다. 말보다 존재감으로 채우는 연기가 인상적이다. 송지혁은 동생을 향한 오빠의 마음을 과하지 않게 그러나 묵직하게 녹여내며 극의 감정적 중심을 잡아준다.
영화의 전개가 매끄럽지는 않다. 배우 이형주가 맡은 기자 캐릭터, 거렁뱅이 집단 등 개연성 면에서 다소 헐거운 지점들이 눈에 띈다. 개연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보기 꽤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장동윤 감독은 이 빈틈을 시골의 정취와 인물들의 감정선으로 채웠다. 완벽한 서사보다 잔잔한 분위기와 인물의 결을 따라가는 영화다. 마지막에는 막걸리처럼 천천히 스며드는 무언가를 남길 것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4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