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에서 계속
이연의 작품 선택 기준은 자신의 성장 가능성이다. '경주기행'을 선택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두 작품 중 하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배우로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쪽에 마음이 가요. 배우는 현장에 있어야 살아 있는 것이고, 연기도 계속해야 느는 것이니까요."
김미조 감독과의 인연은 작품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됐다. 전주영화제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뒤 '경주기행'의 대본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스케줄이 맞지 않아 출연을 고사했다. 그러자 김 감독은 이연의 스케줄을 직접 파악한 뒤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 그를 설득했다.
"왜 저와 '경주기행'을 함께해야 하는지를 담은 확신에 찬 메시지였어요. 다른 작품 일정이 조정되니까 안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현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주문이 정확하고 리더십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원하는 감정과 장면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했기 때문에 배우 입장에서도 연기에 집중하기 편했다. 감독의 명확한 주문은 촬영 시간을 단축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현장에서 리더십이 있고, 해야 할 것을 어떻게든 다 찍어내는 똑똑한 감독님이세요. 첫날 분량이 정말 빡빡해서 어떻게 찍지 했는데 다 찍어내셨어요. 각 배우들이 캐릭터 준비를 해서 크게 터치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감정이 잘 살면 좋겠다는 게 확실하게 전달이 되니까 연기할 때 더 편했어요. 그래서 시간이 단축됐다고 생각해요."
엄마 '옥실'을 연기한 이정은과의 만남은 작품을 넘어 배우로서도 많은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연은 배우가 그동안 보여온 모습이 캐릭터와 맞닿고, 이를 감독이 신뢰할 때 인물이 더욱 선명해진다고 봤다.
"정은 선배가 그동안 연기로 보여온 모습들이 옥실이라는 캐릭터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었어요. 선배의 연기 생활, 개인적인 삶, 현재 선택하는 것들이 좋은 영감이 되고 영향을 줬어요. 정은 선배가 존재하기에 '경주기행'이 존재했다고 생각해요."

모녀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도 자연스러웠다. 이정은은 촬영장 밖에서도 이연을 세심하게 챙겼다. 숙박 장소를 직접 신경 써주고 아침이면 먼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오는 등 일상에서 보여준 다정함이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혔다.
"처음에는 정은 선배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간지러웠어요. 이제는 엄마라고 부르는 게 편할 정도로 가까워졌어요. 선배라고 하는 게 오히려 어색해요. 하하."
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본 이연은 옥실과 장주(공효진 분)의 장면, 마지막에 엄마와 동주가 함께 애쓰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 특히 손톱이 다 들릴 정도로 버티면서도 끝까지 견디는 옥실의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가까운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아직 없거든요. 영화 속 동생 경주의 부재가 상실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됐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 죽음과 삶을 바라보는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경주기행'을 통해 이연은 자신에게 연기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일인지를 돌아봤다. 이연은 평소에는 굳이 세분화해 느끼지 않았던 감정을 캐릭터를 만나면서 발견하고 자신 안에 작게 존재하던 감정을 더 크게 키워 화면 위에 올려놓는 것,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연기하면서 뭔가 예상대로 딱 들어맞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감독님이 내 연기를 마음에 들어 했을 때의 쾌감이 있어요. 하하. 그리고 그 쾌감이 또 다른 작품을 하고 싶어지는 동력이기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