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방송되는 KBS1'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보부상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외씨버선길을 찾아가 추억이 있어 더 맛있는 여름 별미를 만난다.

산이 깊으니, 사람의 시간도 더디 흐르고, 변함없는 풍경 속에 순하게 살아온 산촌 사람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곳. 사뿐사뿐, 버선발로 걷듯, 천천히 걸으며 만나는 외씨버선길의 오래된 맛의 이야기를 만난다.

외씨버선길의 시작은 청송 주왕산 계곡.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사람들을 부르는 대표적인 피서지다. 외씨버선길을 따라 학교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낸 청송 사람들에게 여름은 약수의 계절. 여름이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달기약수터는 솟아나는 물소리가 고고고 닭의 울음소리를 닮아 붙은 이름이란다.

부처손 등 주왕산에서 채취한 귀한 약초들을 넣고 끓인 약수백숙에 약수로 지은 영양밥은 여름 보양식으로 손색이 없다. 음식뿐 아니라, 염색을 돕는 매염제로도 활용하는 약수는 청송사람들에겐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다.


청송에서 영양으로 이어지는 외씨버선길은 산간 내륙에 자리 잡은 산촌을 지난다. 육지 속 섬이라 불리던 영양은 사람의 발길을 쉽게 허락하지 않은 덕분에 깊은 산속, 천연기념물로 보호 중인 산양이 살고 있을 만큼 청정한 생태환경을 간직한 곳.
귀촌할 곳을 찾아 전국을 다니던 중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영양에 반해 자리 잡았다는 이상철, 김길숙 부부. 산과 들을 마당 삼아 살다 보니, 먹을거리부터 달라졌다.

김 대신 곰취에 밥과 채소를 넣고 만든 곰취말이밥, 삶은 감자로 감칠맛을 더한 열무김치에 말아 먹는 국수 한 그릇까지. 낯선 길을 함께 걸으며 더 깊어지고 맛있어진 부부의 자연 밥상을 만난다.

조지훈 시인의 시에서 이름을 얻은 외씨버선 길은 소설가 김주영이 소설 ‘객주’를 완성하기 위해 걸었다고 알려진 길이기도 하다. 길이 시가 되고, 소설이 되는 그 여정 속에는 험하고 고된 길을 오가며 살아온 보부상들의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소설 객주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봉화 오전리 생달마을은 실제로 11명의 보부상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가족도 없이 외롭고 고단한 삶을 살았던 보부상들은 후손도 없이 세상을 떠나며, 자신들이 살던 땅을 마을에 남겼고, 마을 사람들은 위령탑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모시며 그 마음을 기리고 있다.

제땅을 파고, 위에 돌을 올린 다음 온갖 먹을 것을 올리고, 칡넝쿨과 흙으로 덮어 찌는 일명 삼굿, 이맘때 즐겼던 삼굿의 주인공은 은어다. 낙동강 상류지역에 자리 잡은 봉화는 여름이면 은어가 가장 흔하게 잡혔다.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를 호박잎에 싸서 찌면, 그 담백함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은어가 흔하게 잡힐 때면 말려두었다 국물을 낸 다음 차갑게 식혀 국수를 말아 먹기도 했다. 보부상들의 땀내 가득한 애환을 간직하며 살아온 마을 사람들의 오래된 추억이 담긴 옛 음식들을 만나본다.

외씨버선길의 마침표를 찍는 곳은 강원도 영월 김삿갓 계곡. 조선 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이 마지막 여생을 보냈다는 곳이다. 객지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엄재헌씨 형제는 여름이면 매일 계곡에 나와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큼직한 사발에 천을 덮고 다슬기를 찧어 발라 미끼를 쓰는 옛날 보쌈잡이와 잠자리 유충을 미끼로 꺽지를 잡던 여름날의 추억이 어제처럼 생생한데, 흔하게 잡히던 민물고기들이 이젠 귀한 신세가 됐을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 그래도, 오래전 즐겨 먹던 음식만큼은 아직 그대로다. 어머니 손맛을 기억하며 두 형제가 손 걷어붙이고 만들어보는 민물고기 음식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