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런데 무섭다. 영화 '호프'에서 음문석이 연기한 양배는 그런 인물이었다.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가 나타난 고립된 마을, 그 안에서 누구보다 조용하고 누구보다 예측 불가능한 청년을 음문석이 스크린 위에 채워 넣었다.
최근 비즈엔터와 만난 음문석은 양배는 처음부터 쉽지 않은 캐릭터라고 털어놨다. 나홍진 감독은 오디션장에서 음문석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나쁜 사람들, 질이 안 좋은 그 사람들은 하수다. 그런 사람들은 잡힌다"라며 "양배는 절대 잡히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나홍진 감독의 말에 음문석은 합격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막막함을 느꼈다. 정신의학 자료까지 찾아봤지만 답이 없었다.

실마리는 우연히 발견했다. 입에 가위를 넣으려던 조카가 가위를 빼앗기고도 해맑게 웃으며 태연히 다른 걸 하는 모습, 그 아무렇지 않은 자연스러움에서 음문석은 문득 서늘함을 느꼈다.
"아이는 행동은 어떤 의도가 있기보다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그 행동이 예상치 못한 서스펜스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양배를 '아이'라고 생각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외계인 사체가 담긴 냉동고를 열며 "신선도 떨어진다. 서울에서는 80만 원에 팔린다"라고 말하는 장면도, 죽인 아기 외계인에게 '쪼꼬미'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집에 가득한 박제 동물과 마네킹도 '아이' 같은 양배에겐 모두 자연스러운 행동들이었다. 음문석은 범석(황정민 분)을 집으로 초대한 것도 위협이 아니라 자랑하고 싶어서였다고 말했다.

"양배는 자랑하고 싶어서 범석을 초대한 거예요. 그런데 집도 망가뜨리고 쪼꼬미도 가져간 거잖아요. 양배 입장에선 서운한 거죠. 그래서 울면서 나간 거고요. 성인의 도덕적 관념으로 보면 이상하지만, 아이의 시점으로 보면 장난감이 많은 거예요. '내가 꾸민 집 귀엽죠?' 그런 마음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마지막 '고양이' 장면이었다. 양배가 고양이를 실제로 봤는지 아닌지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관건이었다.
"양배도 몰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사 톤이 애매해요. 확신이 없어요. 보시는 분들이 여러 시각에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게 맞겠다 싶었고, 감독님도 그걸 원하셨어요."

현장에서 만난 황정민과 조인성, 두 선배도 음문석에게 큰 힘이 됐다. 황정민은 직설적이지만 티 나지 않게 챙겨줬고 촬영 후에는 연극 '별들의 낭독회'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조인성과는 루마니아 촬영 당시 2인실을 함께 썼다. 누나만 있는 음문석에게 조인성은 친형 같은 존재가 됐다.
"두 선배 모두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내는 모습이 프로페셔널했어요. 두 분을 보며 저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호프'의 찐 주인공, 진짜 빌런이라는 반응에는 크게 들뜨지 않으려 했다. 반면 봉준호 감독이 한 GV에서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같았다", "구강과 하관의 움직임이 기묘하고 놀라웠다"라고 했던 칭찬은 백 번도 넘게 봤다며 뿌듯해했다.
"봉준호 감독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에요. 오히려 과대평가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터뷰 막바지에 음문석은 선한 인물인지 악인인지에 대한 생각을 한참 이어갔다. 그는 "나홍진 감독님의 영화에는 절대 악도 절대 선도 없다"라며 "양배 자신한테는 선이었고, 모두에게는 악이었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음문석의 차기작은 2022년 1월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를 소재로 한 액션 영화 '칸타르'다. 음문석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호프'에서 강렬한 신스틸러로 활약했던 그의 새로운 얼굴에 기대감이 쏠리지만 정작 본인은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저는 아직도 제가 신인이라고 생각해요. 음문석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분이 훨씬 더 많거든요. 전 국민의 70~80%가 저를 알 정도로 연기를 열심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