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Q. 지난 2주 간 매일 같이 당신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기분이 어떤가.
한동근: 아직 실감이 안 난다. 그저 ‘앞으로는 어떤 음악을 들려드리면 될까’라는 생각뿐이다. 인터뷰를 하러 오는 길에도 예전에 즐겨 듣던 노래를 내내 다시 들었다.
Q. 2년 만에 다시 듣게 된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이하 이 소설)’, 어땠나.
한동근: 가수들은 원래 자기 노래를 잘 안 듣는다고 하지 않나. 나도 마찬가지다. 오랜만에 다시 들은 건데 (노래가) 괜찮더라. 으허허허. ‘위대한 탄생3’ 때부터 다양한 보컬 톤을 시도했는데, 사람들이 나의 어떤 목소리를 좋아하는지 찾기 위해 천천히 공부 중이다.
Q. 1위를 한 번 해보니 어떤가. 계속 1위를 하고 싶은 욕심이 드나, 아니면 ‘이젠 여한이 없다’ 쪽인가.
한동근: 그런데 정말 내가 1위를 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그저 감사하고 앞으로도 내가 내놓는 음악을 사람들이 한 번 씩이라도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순위는… 글쎄. 순위를 신경 쓰면서 음악을 만들면 사람들이 좋아해준 모습과 달라지지 않을까? 말이 정리가 안 돼 죄송하다. 아까 오면서 들었던 노래가 계속 머리에 남아서….
Q. 무슨 노래를 들었기에?
한동근: 셰어의 ‘유 해븐트 신 더 라스트 오브 미(you haven't seen the last of me)’라는 노래다. 여자 가수인데 남자 키로 노래를 부른다. 멜로디도 아주 괜찮고, 이런 식의 음악도 해보고 싶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새로운 구상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다.
Q. 생각지 못한 1위지만 당신의 시야와 앞날에 큰 영향력을 미칠 만한 사건이다.
한동근: MBC ‘듀엣가요제’ 편곡을 통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할 때마다 많이 들어주셔서 굉장히 들 떠 있다. 대중이 무엇을 좋아할지 당연히 고려해야겠지만, 지금은 ‘저 이것도 할 줄 알아요’, ‘이것도 좋아해요’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Q. 매번 새로운 걸 하는데 심지어 매번 반응이 좋다. 엄청나게 고무적인 상황이다.
한동근: 맞다. 감개무량하고 이러다 일찍 죽겠다 싶다. 으허허허허.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잇는 것처럼, 언젠간 관심이 떨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다. 그 때가 왔을 때 스스로를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Q. 이제 막 올라왔는데 벌써 내리막길이라니. 너무 이른 걱정 아닌가.
한동근: 생각은 하고 있어야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싶은데 그게 언제나 사람들 마음에 들 수는 없지 않나.
Q. 당신의 시도를 사람들이 반기지 않는 순간이 온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당신은 대중이 좋아할만한 방향으로 돌아갈 건가, 아니면 당신의 도전을 계속 이어갈 건가.
한동근: 지금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 같다. 반응이 안 좋아도 나는 내 길을 갈 거고 내가 좋다고 믿는 걸 이어갈 거다. 그런 모습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 테고.
Q. ‘위대한 탄생3’ 우승 이후 데뷔곡 발매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한동근: 우승 직후엔 모든 일이 잘 될 줄 알았다. 철이 없었다. 생각보다 삶이 쉽게 이어지지 않더라. 많이 방황했는데 감사하게도 계속 천운이 따라준 것 같다. 물 흐르듯이 흘러왔는데 좋은 곳에 다다른 느낌이라 얼떨떨하고 감격스럽다.
Q. 흘러온 것 같다고?
한동근: 과거를 회상하면 별 생각이 안 든다. 분명 힘든 적도 있었고 좌절하고 우울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때가 오히려 그립다. 좀 더 힘들어봤어야 하는데, 좀 더 좌절해볼걸. 혹은 반대로 좀 더 희열에 차볼걸. 그런 생각이 든다.
Q. 아니, 왜 그런 무모한 생각을.(웃음)
한동근: 더 힘들어봤다면 지금 내 음악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스스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시간이 있다. 새벽에 뮤지션들의 라이브 영상을 마구 찾아보던. 희열과 열정에 가득차서 새벽을 보냈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내 원동력이었다.
Q. 어떤 뮤지션의 영상이 당신에게 영감을 주던가.
한동근: 너무 많다. 나를 유튜브의 세계로 이끈 피아노가이즈라는 연주팀이다. 메탈리카가 풀 오케스트라를 무대에 올린 라이브 영상이나 데이빗 포스터의 ‘프렌즈’ 콘서트도 정말 많이 봤다. 엄청난 희열이었다.
Q. 애틋한 시절이겠다.
한동근: 맞다. 당시엔 수익이 없으니 ‘음악을 그만 둘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가 내게 거름이 된 거 같다. 음악에 대한 굶주림과 새로 일어나는 열정, 계속 새로운 걸 보여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것도 과거의 경험 덕분이다. 지금 목이 굉장히 안 좋은데, 빨리 정규 음반을 내고 싶다.
Q. 상상해보자. 메탈리카가 풀 오케스트라를 무대에 올리고 데이빗 포스터가 거장 뮤지션들을 공연에 세운 것처럼, 당신이 먼 훗날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
한동근: 햐아~ 언젠가 술 취해서 툭 뱉었던 말인데 계속 머리에 남는다. 아시아의 조쉬 그로반이 되고 싶다. 팝페라를 재해석해서 부르는 뮤지션인데 K팝에서도 이런 장르의 음악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Q. 뇌전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굉장히 멋져 보이는데…
한동근: 아, 이게 멋있어 보이나.
Q. 물론이다. 당신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니까.
한동근: 그냥 음악이 좋다. 하고 싶은 것도, 들려드리고 싶은 것도 많다. 게다가 지금은 많은 분들이 내 노래를 들어주고 있다는 감사함에, 머리가 앞으로 나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힘든 것도 모르고 부딪히고 있다.
Q. 인터뷰를 보니 “내가 아프기 때문에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1/100이라도 알 수 있지 않을까”란 말을 하더라.
한동근: 내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많지 않아서 내 노래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면 어떤 노래든 불러드리고 싶다. 내가 뭔 대단한 위로를 하려고 ‘이 소설’을 불렀겠나.(웃음) 그저 좋아서 불렀는데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신 것 아닌가. 앞으로도 부담 없이 들으시고 각자의 의미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란다.
Q. 얘기를 들어보니 뮤지션에게 시련은 어떤 의미에선 축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근: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푸념 섞인 생각이었지만 이런 삶이 싫지 않은 거다. 힘든 일을 겪고 나서 만든 음악에 많은 분들이 애정을 보여 주시면 힘든 것 곱절의 기쁨이 온다. 의연한 것과는 다르다. 다만 힘들 일이 와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이제 점점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