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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後②]‘부산행’은 그저 그런 좀비물이 아니다.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신파적이다. 혹자는 클리셰 범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영화의 흥행 요소를 너무 모범생처럼 따라가는 것도 같다.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부산행’이 가지고 있는 힘은 이런 문장들이 한정지을 수 없는 다른 면에 있다. ‘부산행’은 한국 사회의 다양하고도 보편적인 인간 군상들을 그려내고 있으며,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고 있고, 이기심이 불러올 추악한 결론을 고하고 있다. 그러니까 ‘부산행’은 좀비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라는 것이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은 원인 모를 좀비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하는 상황을 그린 재난 스릴러다. 펀드매니저 석우(공유 분)는 일 때문에 자주 놀아주지 못했던 딸 수안(김수안 분)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내가 있는 부산행 KTX열차에 오른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덮친 전대미문의 좀비 바이러스가 KTX 역시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놓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과 좀비들의 피할 수 없는 대결이 펼쳐진다. 살아남은 자들의 목표는 단 하나, 초기 대응 방어에 성공한 부산까지 안전하게 가는 것이다.

연상호 감독은 ‘부산행’을 그저 오락성이 짙은 블록버스터로만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좀비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정부와 시민들의 행동 양식을 우리의 현대 사회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도록 조율했다. 컨트롤 타워 하나 없이 좀비가 된 시민들의 행동을 ‘과격 시위’, ‘무차별 폭격’이라는 단어로 정의하며 “발 빠른 대응으로 사태를 수습 중이다”라고 말하는 정부의 모습은 필연적으로 한국 사회의 사건 대응 방식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이를테면 우리 모두를 세월호 앞바다에 데리고 가거나, 메르스 사태의 길목에 세워둔다.

▲영화 ‘부산행’(출처=영화 '부산행' 칸 영화제 해외 스틸 이미지)
▲영화 ‘부산행’(출처=영화 '부산행' 칸 영화제 해외 스틸 이미지)

‘부산행’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성격은 꽤 평범하고 단편적이어서 마치 대한민국의 인간 군상을 함축적으로 집약시킨 느낌을 들게 한다. 여기서 개인이 지니고 있는 직업적 계급이 현대 사회의 실태를 보여주는 대목을 찾을 수 있는데, 고속버스 회사 상무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용석은 행색이 허름한 사람을 보고 있는 수안에게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라고 말한다. 이는 학벌이 물질적 풍요에 필수조건이라 여기는 한국 사회의 학벌만능주의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용석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미끼로 삼고, 사람들을 선동하며 권력을 장악한다. 연상호 감독은 이러한 권위주의의 결말을 폭력적이고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힘을 합칠 때 비로소 희망이라는 출구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그려내는 그는 ‘캐릭터들은 곧 우리’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부산행’을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산행’은 오락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가족애에서 오는 감동,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 시원한 액션, 심장을 죄여오는 스릴 등 재난 영화의 흥행 요소들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흥행가도를 달리는 속도가 KTX처럼 거침이 없을 것임을 온몸으로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연상호 감독은 전작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을 통해 세상을 향한 칼날을 예리하게 곤두세웠다. 다시 말해, ‘부산행’은 그의 첫 실사영화이자 상업영화로서 사회를 바라보는 그만의 날카로운 시선이 과연 얼마나 담길 수 있을까 기대와 우려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연상호 감독은 그만의 세계를 이미 구축한 듯싶다. KTX의 엄청난 속도 안에서도 사회적 함의를 계속해 꺼내놓으며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지는 ‘부산행’은 그저 그런 좀비물이 아니다.

김지혜 기자 jidorii@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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