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물오른 제철 먹거리들을 색다르게 더해 서해의 봄날을 만끽하는 섬사람들을 만나본다.
◆여우섬의 마님과 보디가드
여우를 닮은 섬 호도는 섬 안에 차도 다니지 않을 만큼 작은 섬이다. 그럼에도 한 번 다녀간 이들이 또다시 호도를 찾는 이유는 호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민박집 주인마님 강경자 씨의 손맛. 식당이 없는 섬에서 손님들의 식사를 대접하다 보니 이제는 이름난 맛집이 되었다는 경자 씨네. 손님상에 올릴 반찬들은 모두 섬 곳곳에서 직접 채취해온 것들이라는데. 부지런한 마님을 따라 호도를 종횡무진하는 경자 씨의 남편 최종섭 씨다. 아내의 고생을 덜어주려 보디가드를 자청하고 나선 종섭 씨는 경자 씨가 가는 곳마다 함께하며 작은 짐이라도 본인 손으로 가져오는 애처가다.

붕장어무국 역시 호도 토박이 경자 씨가 먹고 자란 호도의 향토 음식. 봄이면 섬 지천에 자라나는 쑥은 생선국의 풍미를 살려주는 특급 향신료다. 더덕을 우려낸 국물에 굴과 김을 넣고 끓인 후 시원하게 식혀 먹는 독특한 조합의 더덕나물 역시 친정엄마에게 전수받은 음식이다. 호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궁합의 음식들로 고향을 알리는 경자 씨를 만나 본다.

호도의 이웃 섬 녹도의 산꼭대기에는 두 손을 꼭 맞잡은 동백나무 연리지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녹도에는 유난히 금슬 좋은 부부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원조 잉꼬부부로 소문난 주인공은 바로 전옥진 (95세) 할아버지와 이종향 (89세) 할머니다. 긴 세월을 지나 한 몸으로 이어진 연리지 나무처럼 이십대 초반에 만나 평생을 함께해온 노부부는 말다툼 한번 없이 7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무슨 일이든 함께하면서도 말끝에 장난을 건네는 모습은 아직도 영락없는 신혼부부 그 자체이다.
꽃 같은 임에, 귀향한 두 딸까지 함께하니 노년의 섬 생활이 젊은 날 못지않게 행복하다는 두 사람.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만드는 재미도 빠질 수 없다. 봄나물처럼 향긋한 내음 자랑하는 지충이에 데친 쪽파를 함께 무쳐낸 지충이쪽파무침은 배고프던 시절, 주린 배를 달래주던 그 맛. 갯바위에 사이로 후다닥 달아나는 납작게는 녹도 사람들에게는 ‘똘쟁이’로 더 익숙한 녀석이다.
봄나물의 대명사 달래와 찰떡궁합이라 함께 먹으면 비린내는 가시고 알싸한 향만 남아 봄철 피로마저 풀리는 맛이란다. 빠듯한 살림에 7남매를 키워내느라 부지런히 살아온 서로를 알기에 언제나 위해주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전옥진, 이종향 부부. 녹도의 연리지 부부에게 다툼 없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배워 본다.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진 녹도는 비탈을 따라 오밀조밀 집들이 모여앉아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항구를 마당처럼 마주한 세 집은 유난히도 가까워 보인다는데. 바로 서로의 집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세 사람, 복남점, 김혜란, 정분점 할머니 덕분이다. 녹도에서 나고 자란 세 토박이는 40여 년을 담벼락 건너 지척에 살며 젊은 나날을 보냈다. 바닷일과 농사일 거기에 살림까지 도맡은 섬 아낙들의 삶은 녹록지 않았다. 그때마다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매처럼, 엄마처럼 곁을 지켜주는 이웃 친구들이었다.
봄을 맞이한 세 할머니가 나들이 삼아 오르는 곳은 마을 뒤편, 온갖 나물로 뒤덮인 언덕배기다. 따사로운 봄볕을 받고 고개를 내민 봄나물들 가운데도 울릉도 특산품으로 알려진 전호나물이 녹도 세 친구의 봄의 전령사이다. ‘사시랭이’라고도 불리는 전호나물이 솜씨 좋은 섬 할매들의 손에 들어가자 향긋한 사시랭이바지락된장찌개가 탄생했다. 갯바위를 뒤덮은 자연산 홍합도 녹도 사람들의 훌륭한 찬거리다. 제사상에도 빠지지 않고 오르는 홍합계란전은 한입 크기의 계란지단에 삶은 홍합을 통째로 얹고 돌돌 말아 완성하는 녹도만의 별미. 세 사람의 손맛이 오가며 차려진 밥상 위로 너,나 할 것 없는 칭찬까지 오가자 식사 자리는 여느 때보다 화기애애 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