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엔터 이은호 기자]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가수 제시카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연예계에서 보냈다. 12세에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19세에 걸그룹 소녀시대로 데뷔했고 26세에 팀을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맨몸으로 맞이한 세상은 그녀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넓었다. 하지만 제시카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재밌어요. 제가 모르는 게 많아서.” 꽃 같은 고운 얼굴로 누구도 가르쳐준 적 없는 험한 길을 그녀는 지금 씩씩하게 걷고 있다.
Q. 데뷔 10주년 기념일과 솔로 음반 발매를 동시에 앞두고 있어요. 기분이 어때요?
제시카: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를 줄은 몰랐네요. 팬 분들이 소중하게 소장할 수 있는 음반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들 뜬 마음으로 만들었고 제게는 의미 있는 음반이에요.
Q. 지난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제시카의 색깔’에 대해 ‘밝은 분위기’라고 설명한 적 있어요. 하지만 신곡 ‘서머 스톰’은 전작과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제시카: 그동안 밝고 희망적인 노래를 했으니 이번엔 다른 걸 해보고 싶었어요. 10주년이니까 그것을 기념해야만 한다거나 여름이니까 신나는 음악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여름에는 장마도 있고 태풍도 불어요. 저도 태풍을 경험해본 사람이니, 휘몰아치는 상황 복잡한 심경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Q. ‘태풍’이라는 테마를 먼저 정한 거예요?
제시카: 처음 음반 작업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썼던 노래는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였어요. 그 곡은 제목을 먼저 정해두고 작업을 시작했고요. 저는 사람은 누구나 어느 한 구석에 예쁘고 착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가사에 그 내용을 담았어요. 하지만 타이틀곡은 다른 분위기의 노래를 해보고 싶어서 ‘태풍’을 선택했죠.
Q. 당신은 ‘그냥’ 혹은 ‘다른 걸 해보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지만 사람들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제시카: 어떻게 다르게요?
Q.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서, 좀 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죠.
제시카: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라는 걱정을 하지는 않았는데, 걱정을 했어도 뭐…(선택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떤 노래든 사람들마다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으니까요.
Q.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걱정이 당신의 결심을 바꾸지는 못하나 봐요.
제시카: 사실 가사를 한 번 엎고 다시 썼어요. 처음에 쓴 가사에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별 후에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담아내는 쪽으로, 내용이 아예 달라졌어요.
Q. 앞서 밝고 희망찬 분위기의 노래를 연달아 발표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팬들에게 위로가 필요했다고 느꼈거나 혹은 당신의 취향이 반영됐을 수도 있고요.
제시카: 복합적이에요. 제가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했고요, 상황이 좋지 않을 때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를 선물해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제 성격도 긍정적인 쪽을 지향하려는 편이고요. 듣고 기분이 나빠지는 노래보다는 기분 좋아지는 노래가 더 듣고 싶어지잖아요. 하하.
Q. ‘서머 스톰’이 이별 후 감정에 대한 노래라면 당신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할 수 있을만한 노래는 무엇인가요?
제시카: ‘스태리 나잇(Starry Night)’이요. 대만 팬미팅에서 앙코르곡으로 불렀던 노랜데 반응이 좋았어요. 타이틀곡으로 할까 생각한 적도 있었고요. 팬들과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함께 했던 시간 동안의 이야기와 제 마음을 많이 담아뒀어요.
“기대 않았던 10년, 훨씬 행복해요”
Q. 10년 전의 제시카와 비교하면 지금의 제시카는 어때요? 많이 달라졌나요?
제시카: 10년이란 시간이 짧지도 않고 길지도 않은데… 아니, 조금 긴 것 같아요. 긴 편이죠.(웃음) 제 10대와 20대를 (연예계에서) 보낸 거예요.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지금 내가 바쁜 건지 힘든 건지도 몰랐는데 지금은 한결 편해요. 온화하고 안정적이에요.
Q. 확실히 뭔가를 내려놓은 것 같은 인상이에요.
제시카: 네, 맞아요. 음반을 만들 때도 여유를 갖고 작업하고 준비가 다 끝났을 때 내요. 이번에는 1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어서 그 시간을 맞추자고 생각했지만 특별한 데드라인은 없었어요. 여유가 있으니 작업이 더욱 즐거워요. 앞으로도 꾸준히 음악 작업을 할 생각이고요.
Q. 변화를 가져온 결정적인 사건은 무엇인가요.
제시카: 4-5년 차 쯤에 슬럼프가 왔어요. 그런데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으니 오히려 자연스럽게 극복이 되더라고요. 결정적인 사건 하나를 꼽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조금씩 배운 것 같아요.
Q. 10년 전에 기대했던 것들은 얼마나 이뤄졌어요?
제시카: 처음엔 기대를 크게 안 했어요. 10년 뒤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요. 멀리 보지 못했고 늘 다음 날이 목표였어요. 코앞에 닥친 일부터 해치워나가는 식이었어요. 지금은 10년 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 행복해요. 함께 해주신 분들과 팬 여러분들에게 모두 감사해요.
Q. 뭐가 가장 좋았는데요?
제시카: ‘처음’이 늘 기억에 남아요. 처음 데뷔했을 때, 처음 콘서트를 했을 때, 처음 상을 받았을 때, 처음 솔로 음반이 나왔을 때…. 처음의 느낌과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Q. 지금 처음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제시카: 아직 솔로 정규 음반을 안 내봤어요. 우선 첫 정규 음반을 내고 싶고요. 그리고 제가 운영 중인 브랜드(블랑 앤 에클레어)가 있는데 아직 신발 라인을 론칭하지 않았거든요. 워낙 신발을 좋아해서 해보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데뷔 초에 큰 기대를 안 했다는 말이 신기하게 들려요. 누구나 시작 단계에서 가장 큰 꿈을 갖기 마련이잖아요.
제시카: 제가 되게 현실적인 사람이거든요.(웃음) 기대를 안 했다기보다는 걱정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연습생 생활을 꽤 오래 한데다가 당시에는 남자그룹이 많을 때였거든요. 데뷔를 꿈꾸면서도, ‘여자 가수가 얼마나 갈 수 있을까’ 혹은 ‘내가 남자였으면 더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죠.
Q. 기대가 걱정을 앞지른 건, 팬들에 대한 믿음 덕분인가요 아니면 제시카 스스로에 대한 믿음 덕분인가요.
제시카: 첫 솔로 음반이 나올 때까지는 팬들이 저에게 용기를 많이 불어넣어줬어요. 팬 분들이 아니었다면 작업을 못 했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 뒤로도 노래를 내면 계속 좋아해주시니까 그거에 힘입어서 꾸준히 할 수 있었어요. 음악은 앞으로도 오래 할 것 같아요. 이젠 더 많은 걸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아직 안 해본 게 많으니까요.
Q. 요즘 걸그룹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제시카: 우리 때보다 더 치열한 것 같아요. 그룹 대 그룹으로의 경쟁이나 경쟁이 있을 수 있고 서로 간의 경쟁도 있을 텐데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싶어요. ‘프로듀스101’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숨이 턱 막혀요. 하지만 치열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친구들이라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돼요. 대단한 친구들이에요.
Q. 지금 당신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경쟁에서 한발 물러선 느낌인데, 그렇다면 지금 당신을 움직이는 힘은 뭐예요?
제시카: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요. 녹음할 때, 노래할 때, 음반을 준비할 때, 공연할 때…. 그리고 그 행복을 팬 분들과 나눌 수 있는 것도 너무 좋고요. 그냥 도전하는 게 재밌어요. 목표를 설정하고 이뤄나가는 게 큰 희열이에요. 블랑 앤 에클레어를 예로 들자면 입버릇처럼 ‘뉴욕에 스토어 낼래’라는 말을 하고 다녔거든요. 막연한 꿈이었는데 지금은 정말 뉴욕에 플래그쉽 스토어가 생겼어요.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려고요.
Q. 결과보다 과정에서 얻는 기쁨이 크다는 말인가요.
제시카: 네. 하지만… 결과도 좋으면 좋죠.(웃음)
Q. 지금 막연하게 꾸는 꿈은 뭐예요?
제시카: (스토어를) 한국에도 내야지? 하하. 파리도 도전해보고 싶은 곳이에요. 뉴욕은 패션 중심지잖아요, 특히나 소호가. 파리는 전통이 있는 패션의 중심지니까요.
Q. 연예인 혹은 아티스트로서의 꿈은요?
제시카: 좀 더 많은 분들과 작업해보고 싶어요. 그동안은 제 색깔을 많이 입히기 위해서 직접 작사, 작곡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다른 작곡가 분들의 작품에 내 목소리가 얹어지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요. 재즈 뮤지션들과 작업도 재밌을 것 같아요.
Q. 10년 뒤의 제시카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길 바라요?
제시카: 되게 유치해요. 멋진 여자. 호호호. 동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생이 있으니, 그리고 저를 보면서 힘을 얻으시는 팬 분들이 있으니 제가 더 잘 해야죠. 10년 후면 마흔 살이 다 됐겠네요. 일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나도 저 언니처럼 될래’라고 마음먹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당신은 어렸을 때 어떤 사람을 동경했어요?
제시카: 주위에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언니들이 많았어요. 연예인으로서보다는 사람으로서의 지표를 제시해준 사람들이에요. 치열한 환경 속에 있으면 마음이 좁아질 수 있거든요. 그럴수록 시야를 넓히고 많은 걸 접하면서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려고 했어요.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었어요.
Q. 지금 활동하고 있는 걸그룹 가운데, 훗날 당신처럼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멤버도 있겠죠. 그들에게 무슨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제시카: 무서워하지 마세요. 저는 항상 뭔가를 시작할 때 무서워요. 겁이 많은 편이고요. 그런데 막상 닥치고 보면 그게 끝이 아니더라고요. 다 길이 있어요. 어딘가에 갇혀 있으면 그곳이 전부인 줄 알 수밖에 없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세상이 넓더라고요. 제가 모르는 것들도 많고요. 그래서 재밌어요.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