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로서의 이방원의 삶을 살펴본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시작으로 군주가 되기까지의 권력욕과 잔혹함 때문에 현재까지 ‘킬방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단적인 모습만을 상상하게 하는 태종. 그런 그에게 우리가 알지 못했던 반전 매력들이 있었다? 여러 드라마 속, 실제 태종의 모습과 외적으로 가장 비슷한 배우를 찾아본다. 또 태종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문무를 모두 겸비한 완벽한 인재였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태종에 대한 모든 것을 살펴본다.

‘양녕을 안아 주고 업어 주고 하여 일찍이 무릎 위를 떠난 적이 없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자애하는 마음이 가장 두터워 다른 자식과 달랐다.’ 자식 셋을 잃은 후 얻은 첫 번째 아들 양녕. 그를 향한 태종의 사랑은 남달랐다. 아들이 기생을 궁에 들이는 것마저 용서할 만큼 아들 바보였던 태종. 그런 그가 양녕을 세자에서 폐위시킬 만큼 큰 사건이 있었다. 아들 바보 태종마저 등을 돌리게 했던 양녕의 용서받을 수 없었던 선택을 파헤쳐본다.

아들 바보인 태종은 정작 본인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태조가 왕이 되는 것에 큰 기여를 하며 너무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지만, 1392년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죽음으로부터 두 부자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세자 책봉에서 이방석에게 밀려나고, 개국공신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아들을 사랑해줄 수 없었던 부자의 안타까운 이야기와 태종이 아들 바보가 됐던 이유를 '역사저널 그날'에서 실펴본다.
◆태종, 조선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을 만들다
태종의 아들이자 한글의 창시자인 세종대왕. 세종대왕이 왕권을 확립하기까지 그의 뒤에는 태종이 있었다! 태종이 왕위에 오른 후 실시했던 6조 직계제, 전국 8도 개편 등은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강력한 왕권을 확립할 수 있게 해 세종대왕이 안정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