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방송되는 JTBC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이하 ‘차이나는 클라스’)에서는 광복절을 맞아 ‘외교전쟁의 시대 8.15 다시보기’를 주제로 한국 현대사의 권위자 박태균 교수의 강의가 펼쳐진다. ‘해방 정국의 잊혀진 영웅들’의 이야기로 좌우 합작 운동의 의미를 되새겼던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장 박태균 교수가 ‘차이나는 클라스’를 다시 찾았다.
한국인에게 8.15는 승리와 독립의 날이었지만, 과연 다른 나라들도 그랬을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지 않았을 무렵 전 세계의 80%가 식민 피지배 국가였으나 카이로 회담에서 유일하게 독립을 보장한 나라는 한국이었다. 세계열강들은 왜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독립에 주목한 걸까? 박태균 교수는 “한국 독립을 둘러싼 세계열강들의 이해관계를 바로 알려면 1943년 미국, 영국, 중국 세 나라 정상이 모여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선언한 ‘카이로 회담’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태균 교수는 카이로 회담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많은 일본의 식민지 중 한국만이 유일하게 자유와 독립을 보장받은 이유를 3.1운동에서 찾았다. “항일 투쟁으로 한국인이 끝까지 독립을 위해 투쟁했음을 세계에 알린 덕분”이라고 언급한 것. 하지만 카이로 회담 당시 중국의 장제스가 한국 독립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것에 비해 영국은 한국의 독립이 자신들의 식민지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이를 가장 반대했다. 미국 또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의 독립에 대한 ‘조건 문구’를 적었는데, 한국 독립의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한국 독립을 둘러싼 세계열강들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함께 회담 당시의 흥미로운 뒷이야기가 공개된다.
박태균 교수는 “우리가 한국 독립을 둘러싼 세계열강의 이해관계를 몰랐기에 결국 분열과 분단이라는 비극까지 맞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제 패망 이후 한반도를 관리하던 미국, 소련과 세계열강들에게 한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한국의 독립을 최초로 선언한 카이로 회담과 그 배경의 세계열강의 이해관계를 박태균 교수가 풀어낸다.
박태균 교수는 한미관계를 두고 “끈끈한 동맹으로 시작됐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불신 속에서 맺어진 관계”라고 밝혔다. 그 불신은 이승만 정권의 ‘반공 포로 석방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6·25전쟁 당시 반공포로 처리 문제를 두고 협상 중이었던 유엔군과 북한 사이의 판을 이승만 정권이 깨버린 것. 이에 당시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모종의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친서를 보내고, 이승만 대통령 제거 계획까지 세웠다고 언급해 놀라움을 안겼다.
반면 일본은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과 어떻게 친밀한 관계가 되었을까? 그 관계는 60여 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로 인해 한·미·일의 모든 관계가 얽혀버리게 된 것. ‘카이로 회담’부터 ‘샌프란시스코 강화 회의’까지 해방 전후 사건들을 통해 한미-한일 관계와 앞으로의 외교가 나아가야 할 길 또한 짚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