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방송되는 KBS1 '한국인의 밥상'에 이 겨울, 뜨겁게 피어오르는 김의 마법,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찜의 향연이 펼쳐진다.
◆첩첩산중, 영월 유전마을의 겨울–삼굿과 시루, 찜의 원형을 만나다
강원도 영월의 유전마을은 옛날에 삼베 옷을 많이 짜던 마을이었다. 삼베의 원료가 되는 대마(大麻)가 날 때면 줄기를 익히기 위해 삼굿이 필수였다. 먼저 흙구덩이를 파고 불을 피워 돌을 달군다. 그 위에 잣나무 가지를 얹고 흙으로 덮은 뒤 물을 부어 수증기를 만드는데, 이 증기로 대마를 찌는 것이다. 구덩이가 천연 찜기가 되는 셈이다. 이제는 대마를 찌지 않는 대신 먹을거리를 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긴긴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게 전통이 됐다.

◆고조리서를 통해 본 조선 시대 반가의 찜–윤옥희 요리연구가
찜은 국이나 탕과 달리 재료의 형태가 유지되면서 맛과 영양분을 그대로 살리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주로 반가와 왕실의 상에 오르며 발전했고 수라간에는 찜에 필요한 물을 끓이는 ‘탕수증색’이라는 직책도 있을 정도였다. 그야말로 명절이나 잔치의 상차림에 오르던 고급음식이자 최고의 맛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 찜 요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조선 시대 반가 음식을 연구하는 윤옥희 조리기능장을 만나봤다.
보통 수증기를 이용해 찌는 것을 찜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는 예부터 국물을 자작하게 넣고 물 반, 증기 반으로 조리하는 것도 찜이라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 ‘찜’이라는 한글이 처음 등장한 “규합총서” 등 고 조리서에서 찾을 수 있는 찜 요리를 소개한다.

◆영덕 바다를 가득 담은 해물찜–아버지를 이어 어민후계자가 된 막내딸
영덕 축산항의 작은 마을에는 3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초보 어부 임청화 씨가 있다. 바닷바람 맞는 날이 길어질수록 옛날 엄마처럼 생선 냄새 풍기는 아줌마로 변할 거라며 호탕하게 웃는 청화 씨.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온 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사고로 치아를 잃은 아버지는 수경을 물고 작살로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집에서 유일한 딸이자 막내였던 청화 씨를 가장 아끼셨다고 하는데, 10년 전 돌아가신 뒤로 찜을 먹을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난단다. 찜은 혼자가 아닌 다 같이 먹으려고 만들기 때문. 오늘 청화 씨는 아버지의 바다에서 잡힌 해산물로 찜 음식을 차린다.

◆가평에서 만난 100년 된 아궁이–만능 찜기 가마솥에서 쪄낸 세월의 맛
가평의 청평호 자락, 설악면에는 100년 된 고택과 아궁이를 지키는 이가 있다. 도시에 살다가 시골이 좋아 8년 전 귀촌한 고희정 씨다. 집 구석구석 살기 편하도록 수리를 했어도 그대로 사용하는 건 아궁이! 집의 중심에 있는 터줏대감 같아 든든하고 위로가 된단다.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고 있노라면, 아랫목이 새카맣게 타도록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불 때는 재미에 가마솥에 요리를 해 먹다보니 가마솥 마니아가 다 됐다는 고희정 씨! 가마솥은 뚜껑이 무거워 압력과 증기가 빠져나오지 않기 때문에 솥 안에서 음식이 고온고압으로 조리된다. 때문에, 재료의 맛과 영양을 그대로 품은 요리들이 완성된다. 그녀의 단골 메뉴는 ‘보리굴비찜’. 항아리에 겉보리에 넣어 1년 이상 숙성한 보리굴비는 황금빛이 도는데, 하루 정도 불렸다 채반에 올려 가마솥에 찌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특별한 찜 요리도 준비했다는데, 그녀의 취미는 빵 만들기! 가마솥은 발효 빵을 만들기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발효한 반죽에 흑설탕과 계핏가루를 뿌리고 돌돌 말아 찌면 촉촉한 ‘계피말이찐빵’이 완성된다. 이 겨울을 따듯하게 품어 줄 가마솥 찜 요리를 만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