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자락 인근 산골 마을, 전신의 근육이 굳어가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아빠 석근 씨와 인혁이(10)와 현아(9) 남매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있다. 10년 전 처음 발병 후 점점 악화 되가는 병세 때문에 여느 가족의 아빠들처럼 아이들을 챙겨줄 수 없는 형태이지만, 다행히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 속에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준 남매. 아빠의 역할을 다 해주고 싶은 석근 씨는 학교 가기 전 준비물을 세심하게 챙겨주고, 매일 저녁 숙제 검사를 하는 등 하루하루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인혁이도 학교에 가기 전, 챙겨야 할 일이 있다. 집안 식구들 중 유일하게 아빠의 호흡기를 잘 다룰 줄 아는 인혁이는, 호흡기 등의 의료기기부터 아빠의 양치질까지, 아빠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아빠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씩씩한 아이들 덕분에 하루라도 더 웃는 아빠와 아빠가 웃는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는 아이들. 집에 들어온 아이들이 아빠 옆에서 재잘거리며 수다를 떠는 것은 이 가족들만의 조금 특별한 사랑법이다.
점점 몸이 굳어가는 아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어 속이 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굽은 허리 때문에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야 겨우 걸을 수 있는 할머니는 아들 석근 씨의 매 끼니를 손수 떠먹여 주고 집안일까지 도맡아 한다. 어린 손자들을 학교에 보내려면 낮에는 작은 밭에 나가 감자와 고구마라도 캐야 하지만, 얼마 전 초기 뇌출혈을 앓으며 몸이 더 안 좋아진 할머니는 그마저도 쉽지 않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연로한 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한때 아들의 병을 고쳐보겠다고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몸에 좋다는 약은 다 먹여봤지만 몇 년 사이에 아들은 앉아있을 수도, 혼자서는 몸을 뒤척일 수도 없게 되었다. 이 모든 게 더 비싸고 좋은 약을 쓰지 못한 당신 탓인 것만 같아 한없이 미안하다는 할아버지. 답답하고 아픈 마음을 달래려 더욱 밭일에 매진하는 할아버지는 여생 동안 최선을 다해 아들과 손자들을 돌보고 싶다.
10년 전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병을 받아들이기까지 아빠, 석근 씨는 외롭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절망의 순간마다 석근 씨가 힘을 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아빠만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밖에서 한참 뛰어노는 것이 더 좋을법한 나이지만, 바깥 외출보다 아빠 곁이 늘 더 좋다고 얘기하는 아이들. 매일 밤 잠들기 전, 꿈속 놀이공원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석근 씨는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아빠’의 자리를 조금이라도 더 채워주고 싶은 석근 씨와 항상 붙어 지내면서도 아빠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아이들. 이제 아빠에게 남은 건 목소리 하나뿐이지만, 한 번이라도 더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아빠, 석근 씨는 오늘도 힘을 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