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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습격' 이재명 의사, 22세 청년의 독립운동 "난 의행을 한 것"

▲이완용(우측) 이재명(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이완용(우측) 이재명(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서프라이즈'에서 이완용을 습격한 이재명 의사의 이야기를 전했다.

13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서 조선을 일본에 넘긴 '을사오적' 이완용을 처단하려 했던 독립운동가 이재명 의사를 소개했다.

이재명 의사는 1909년 명동성당에서 이완용에게 단도로 치명상을 입혀 순사들에게 체포됐다. 평안북도 선천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에서 을사조약 강제 체결 소식을 듣고, 안창호 선생을 찾아가 독립운동을 위해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후 귀국한 이재명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 했으나 안창호의 만류로 기회를 놓쳤다.

시간이 흘러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재명은 이완용을 처단하기로 했다. 동지들과 거사를 위해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했고, 이완용이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과 동지들은 학생으로 변장하고 이날 새벽부터 성당 부근에 대기했다. 마침내 이완용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재명은 감춰뒀던 단도를 뽑아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완용은 폐와 어깨 등에 깊은 상처를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당시 그의 나이 22세였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판단한 이재명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재명은 곧바로 이완용을 경호하던 한국인과 일본인 순사에게 체포됐다. 이완용을 처단했다고 생각했으나, 이완용은 한국의 흉부외과 첫 번째 수술을 받으면서 대수술 끝에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죽는 날까지 폐렴으로 고통 받다 1926년 세상을 떠났다.

이재명은 체포된 이후 자신과 같이 흉행한 사람들이 몇 명이냐 묻는 일본인에게 "너는 흉자만 알고 의를 모른다. 난 의행을 행한 것"이라며 패기 넘치는 말을 했고, 사형을 앞두고선 "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라고 경고했다.

그의 죽음 이후 김구는 아내와 싸우다 오발 사고를 냈다는 이유로 이재명의 권총을 빼앗을 것을 후회했다고 전해진다.

홍지훈 기자 hjh@bizent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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