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일 방송되는 KBS1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경기도 최남단, 서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평택을 찾았다. 평택 평야처럼 윤택하고 넉넉한 인심이 돋보이는 동네와, 그곳에서 열심히 살아온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평택은 ‘골고루 (平) 윤택하다 (澤)’ 라는 지명답게 드넓게 펼쳐진 비옥한 평야는 해마다 수많은 생명을 품고 길러내 곡창지대로써의 역할을 해낸다. 열심히 일한 뒤 쉬고 있는 겨울의 들녘처럼 역경을 딛고 저마다의 행복을 찾은 이웃들이 살고 있는 동네다.

여정의 설렘을 안고 첫걸음을 뗀 배우 김영철은 평택의 북동부 송탄의 산동네에서 특별한 골목을 발견한다. 오래된 집들이 올망졸망 모여 있는 마을의 담장 곳곳에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와 같은 거장들의 그림들이 걸려있다. 고즈넉한 동네의 풍경과 함께해 더 빛나는 명화를 감상하는 배우 김영철. 산동네 미술관처럼 경기도에는 구석구석 골목마다 숨은 보물들이 있어 여행의 재미를 더해준다.


산동네 미술관을 내려와 향한 곳은 경기도의 이태원이라고 불리는 평택 국제시장. 이곳은 1951년에 미 공군기지가 들어서면서 형성된 미군 문화 골목으로 곳곳에 영어로 된 간판을 건 상점들과 군복을 입은 미군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이색적인 미군 골목을 구경하던 배우 김영철, 쇼윈도를 꾸미고 있던 맞춤 양복점의 사장님을 만난다. 45년 동안 국제시장을 지켜온 양복점에는 미군 장성들의 사진이 즐비하다. 국제시장의 맞춤 양복점은 한국인의 손기술과 질 좋은 원단으로 고품질의 양복을 맞출 수 있어 미군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한때 이곳에는 양복 기술자들만 800여 명이 상주했을 정도. 국제시장 맞춤 양복점은 미군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린다는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도심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 마을을 걷는 배우 김영철은 어느 집 앞에 널린 삼베를 발견한다. 대문으로 들어가니 큰 가마솥에 삼베를 삶고 있는 노모가 반겨 준다. 올해로 96세인 어머니는 14살에 시작해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통 수의를 만드는 수의 장인. 어머니는 구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씨아를 이용해 목화씨를 빼고 물레에 돌려 실을 뽑는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그뿐만 아니라 돋보기 없이 단번에 바늘구멍을 찾아 실을 꿸 정도로 정정하다. 정성으로 한 땀, 마음으로 한 땀 지은 수의는 어머니의 삶 그 자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마지막 인사가 수의라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헤아릴 수 없는 깊고 곧은 마음에 배우 김영철은 감탄한다.

경기 남부권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통복시장으로 향한 배우 김영철은 상인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다 특이한 광경을 발견한다. 여럿이 앉아 공장에서 찍어내듯 꼬마김밥을 말고 있는데. 꼬마김밥 속 재료는 시금치, 당근, 달걀부침, 단무지 딱 4가지. 단출해 보이지만 진도에서 가져온 김, 질 좋은 부안 쌀로 만들어 그 맛이 일품이다. 47년 전, 김밥이 대중화되기 전부터 시작한 어머니는 평택 꼬마김밥의 원조로 꿋꿋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시장을 둘러보던 중 수제 편육을 만드는 모녀를 만난 배우 김영철. 보자기에 삶은 돼지머리를 넣고 압축기로 꾹 눌러 편육을 만드는 광경이 신기하다. 그런데 이 가게는 딸만 여섯을 둔 소문난 딸 부잣집. 딸 여섯 명에 엄마까지, 우먼파워를 보여주는 가게는 365일 왁자지껄, 조용할 날이 없단다. 그러나 유쾌한 모습 이면엔 눈물로 지새웠던 세월이 있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지낼 정도로 가난했던 시절, 어떻게든 살아 보고자 무일푼으로 시장에 들어와 편육을 만들었던 어머니.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여섯 명의 딸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게를 나와 엄마를 도우며 곁을 지킨다.

가을의 대명사 억새는 겨울엔 어떤 모습일까. 우연히 작은 천 옆에 드넓게 억새밭을 발견한 배우 김영철. 은빛 가루를 뿌려 놓은 듯 일렁이는 억새 물결에 마음을 빼앗긴다. 가을이 스쳐 지나간 겨울 억새의 매력에 빠진 이들이 또 있었으니, 승마 트래킹 동호회 사람들. 억새밭 사이로 말을 타고 달리는 기분은 또 어떨까.

억새밭을 조금만 벗어나면 또 다른 풍류를 즐기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겨울 낚시를 즐기고 있는 한 부부. 부부 곁에는 화물 트럭 한 대가 서 있는데 다름 아닌 이들의 캠핑카. 남편이 손수 개조한 이 화물트럭에는 침대, 싱크대, 냉장고 등 웬만한 세간살이는 다 있을 정도다. 특히 냉장고에는 캠핑 유랑을 하며 제철에 잡아 말려 놓은 생선이 가득하다. 고기잡이에서 공사장 막일까지 그간 안 해 본 일 없이 앞만 보며 질주했던 부부는 60세가 된 그 날, 파업을 선포하며 인생 유랑을 시작했고 캠핑카를 타고 전국 팔도를 유랑하며 자급자족 생활을 즐기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논길을 걷다가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한 오래된 정미소를 발견한 배우 김영철. 무려 100년이 됐다는 이 정미소는 헌 옷을 꿰듯 덧댄 함석지붕이 그 세월을 말해 준다. 정미소는 버스 엔진을 동력으로 삼아 기계를 돌려 쌀을 도정하는 옛날 정미소 방식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갓 도정한 매끈한 쌀을 만져보는 배우 김영철. 비옥하기로 소문난 농부의 땅에서 자란 쌀이라 그런지 더 윤기가 흐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