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방송되는 KBS 1TV '동네 한 바퀴'에서는 호남의 젖줄 만경강을 품은 동네, 전북 완주로 떠나본다.
◆잘 늙은 절, 화암사에서 시작하는 동네 한 바퀴
불명산 시루봉 남쪽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고찰, 화암사. 그 흔한 일주문과 화려한 단청 없이 우화루, 극락전, 요사로만 구성된 아담한 절이지만 천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을 견딘 멋과 위엄에 절로 압도된다. 크고 요란한 소문은 없어도 잔잔한 기운으로 역사를 증명하는, 또다시 봄을 맞이한 화암사를 거닐며 오늘의 여정을 시작한다.

길을 걷다 오순도순 모여서 정월에 담근 어육장을 가르는 자매들을 만난다. 어육장은 소고기, 도미, 꿩고기 등 육해공 진미를 메주와 함께 1년 이상 숙성시키는 전통 발효 장으로 조선시대 궁궐이나 양반가에서만 먹은 명품 장이란다. 이와 함께 ‘천 리 길을 들고 가도 상하지 않는다’는 천리장은 파평 윤씨 가문에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내림장으로 이 집안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별미 장이라는데. 자매들에게 어육장은 어머니와의 기억이자 언니의 버팀목, 우애를 다져주는 집안의 보물이다.
◆전라북도 추억의 양초 공장
삼례 마천마을로 들어선 이만기. 활짝 열린 대문 안에 가득 쌓인 양초를 발견한다.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양초 공장을 운영 중인 정삼용 부부. 30여 년 전통의 전라북도에서 재래방식 그대로 양초를 만들고 있는 얼마 남지 않은 양초 공장이란다. 양초가 생활필수품이었던 시절에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품귀현상도 빚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값싼 수입 제품이 들어오면서 전국에 300여 곳 있던 양초 공장도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자부심을 가지고 양초를 만들어가겠다는 심지처럼 굳건한 양초 공장의 모자를 만나본다.

배수가 잘되며 일조량이 좋은 봉동읍에서 나는 지역 특산물, 생강을 비롯해 다양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봉동생강골시장. 노점상 사이, 완주가 좋아 귀촌한 세 명의 청년이 합심해 디저트와 꽃을 파는 가게를 차렸다. 이들이 야심 차게 내놓은 메뉴는 완주 특산물 딸기, 생강, 곶감으로 만든 꾸덕꾸덕하고 쫀득한 3종 버터바와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생강 슈페너. 판로가 적은 지역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메뉴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플로리스트였던 둘째의 직업을 살려 꽃을 함께 판매할 방법을 고민했단다.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았을 거라는 당찬 봉동 아가씨들. 달달한 봄날을 만들어가는 귀촌 청춘들의 미래를 응원해본다.
◆엄마가 그랬듯 딸의 밥상, 맥적구이 한 상
봄물이 한껏 오른 시골길을 걷는 이만기. 제철을 맞은 완주 딸기로 딸기 고추장을 담고 있는 95세 친정어머니와 딸 김충경 씨를 만난다. 기본 12찬, 육해공 밸런스는 필수. 그중에서도 된장 양념에 숙성한 맥적구이는 달콤하면서 짭조름한 맛이 일품이다. 딸기 고추장으로 무친 홍어회 무침은 매콤달콤해 입맛을 돋운다. 김충경 씨가 식당을 열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어머니를 위해서다. 자식들에게 해 먹였던 어머니처럼, 이젠 고령이 된 어머니에게 맛있는 밥을 해드리고 싶단다. 어머니에게 몇 번의 봄이 더 오길 바라며, 어머니의 사랑으로 배운 딸의 밥상을 맛본다.
◆집 뒷동산으로 돌아온 완주 편백 숲지기
숲이 많은 상관면은 예부터 철쭉 등 다양한 조경수를 키우는 ‘나무 농사’를 많이 짓던 곳이다. 특히 동네 골짜기에는 1970년대 산림녹화사업으로 조성된 편백숲이 다문다문 펼쳐져 있다. 계월마을 편백숲에서 나뭇가지를 잘라 편백 오일과 에센스를 추출하는 중년 부부. 집 뒷동산이던 지금의 편백숲을 사고, 13년 전쯤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김수영 씨. 무력한 인생에 비빌 언덕이 되어준 편백숲. 김수영 씨에게 편백숲은 추억이 뿌리내린 곳이자 인생을 함께할 든든한 버팀목이란다.

천년 고찰, 송광사에서 송광천을 따라 꽃 대궐을 이룬 길을 걸으며 봄 향기를 물씬 느껴본다. 6년 전, 완주로 내려와 주꾸미 밥상을 팔고 있는 부부. 지금은 식당을 운영하는 어엿한 사장님이 됐지만, 두 사람이 만날 당시 남편은 뚜렷한 직업이 없었고, 아내 또한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시기라 자리를 못 잡은, 사실상 ‘백수’였다. 식당을 운영하던 시부모님의 도움 요청에 완주로 내려와 조금씩 일을 돕다, 직접 식당을 운영하기로 결심했다. 식당을 처음 운영하는 부부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몸으로 깨닫고, 수백 번의 테스트를 거친 끝에 소스를 개발하며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단다. 귀촌으로 인생 역전을 이룬 한때 ‘백수’였던 부부의 맛깔난 주꾸미볶음을 맛본다.
◆그리움을 심은 어머니의 꽃밭
13년 전, 꽃을 좋아해 양옆으로 산을 담처럼 두른 완주의 최북단 운주면으로 이사 왔다는 양덕녀 어머니. 어머니는 연고 없는 완주에서 정원을 가꾸다, 심심할 때면 남편을 생각하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단다. 고생만 하던 수십 년을 뒤로한 채 남편과 아무도 없는 곳에 서로 오순도순 사랑하고 살자며 약속하고 완주로 내려올 준비를 했지만 집을 다 짓기도 전에 급성 폐암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이곳을 지키고 있다.

